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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워진 세계
아사쿠라 히로카게 지음, 이구름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9월
평점 :
이 서평은 #북유럽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지금의 세상은 이른바 '정'이 좀 부족한 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과 십수년 전에는 이웃과의 벽이 없다시피 했던 것 같아요. 옆집 아줌마네 집에 가서 부모님이 돌아오실 때가지 기다린다던지,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던지 하는 말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지금의 세계는 좀 많이 다릅니다. 이게 정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저에겐 꽤나 섭섭한(?)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좀 그런 마음이 드는 상황에서, 꽤 마음에 드는 책이 나타났습니다. 뒷표지의 부제가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너를 몇 번이고 다시 주울 테니까, 하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 보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세계를 이해하고, 버려진 삶을 다시 세상으로 데려온다는 이야기가 참 좋았습니다. 책 표지도 정직했습니다. 쓰레기로 갇힌, 쓰레기와 관련된 사람들과 그것을 치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아사히는 집 안의 먼지나 머리카락 하나도 견디기 어렵지만, 정작 일터에서는 매일 쓰레기봉투를 처리해야 하는 청소부입니다. 반면 도모에는 남들이 내놓은 물건까지 집으로 가져옵니다. 호더라고 하나요? 한 사람은 버리고, 다른 사람은 주워오니 처음부터 잘 맞기는 어렵겠지요. 옆에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쓰레기 수거 장면은 생각보다 구체적입니다. 비와 추위 속에서도 청소차는 움직이고, 무거운 봉투를 옮기는 손에는 통증이 옵니다. 뒤에서 기다리는 차의 눈치까지 봐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봉투를 내놓으면 끝나는 일이지만, 아사히에게는 그때부터 시작되는 노동입니다. 쓰레기 수거란 이렇게 힘든 일이었던 것일까요.

비웠던 자리에 다음 날 또 쓰레기가 쌓이는 생활도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아사히와 함께 일하는 민토와의 대화에는 집안 걱정까지 섞입니다. 일이 힘들다고 다른 문제가 기다려주지는 않지요. 이런 대목 덕분에 인물들이 소설 속에만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사히와 어머니의 이야기에 관심이 갔습니다. 아버지가 정한 청결의 기준 때문에 두 사람은 쉬는 순간에도 주변부터 살핍니다. 어머니는 적당히 하라는 말을 들어도 몸이 먼저 움직인다고 합니다. 깨끗한 집을 유지하는 일과 그 안에서 편하게 사는 일이 꼭 같지는 않더군요. 또 다른 등장 인물인 민토도 두 사람 옆에서 이야기를 거드는 역할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와 나누는 대화를 통해 아사히가 혼자 생각할 때는 보지 못했던 사정이 드러납니다. 3자의 눈이라고 해야 할까요? 청소 일을 바라보는 시선, 남들이 말하는 번듯한 삶과 실제로 자신에게 맞는 삶의 차이도 함께 나타납니다. 이웃 이야기인 동시에 일하며 살아가는 청년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변의 소소한 서민의 이야기입니다.

아사히는 어머니가 좀 편해지기를 바라면서도, 가족의 관계가 달라지는 일은 선뜻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따라가지 않는 겁니다. 이 모순을 보고 나면 아사히의 결벽을 단순히 깔끔한 성격이라고만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가족의 일에서 시작된 것이지요.
도모에가 물건을 쌓는 행동에도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사정이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사연은 직접 읽는 편이 좋겠습니다. 다만 버리면 된다는 말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점, 겉으로 보이는 생활과 실제 마음의 상태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누구나 어떤 계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되는 순간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도모에가 겪는 어려움에는 지켜보는 쪽도 쉽게 손댈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돕겠다는 마음과 실제로 그 사람 곁을 지키는 일 사이에는 꽤 많은 수고가 필요하겠구나 싶었습니다.

청소를 잘하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바꿔주는 이야기로 끝나는 일반적인 해피엔딩(?)은 아닙니다. 아사히 역시 자신의 생활이 편안하기만 한 것은 아니니까요. 두 사람 중 누구의 방식이 맞는지 따지던 관심이,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듣는 쪽으로 옮겨갑니다.
이런 류의 소설 특성상 빠른 사건 전개가 이루어지진 않습니다. 생활의 묘사가 우선이고, 인물의 성격이 드러나는 몇 가지 에피소드로 진행이 되니까요. 그런데 점점 읽다가 보면 처음에 답답했던 행동들의 이유나 개연성이 나타나게됩니다. 두 사람의 사이는 점점 가까워집니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말이죠. 그리고 그 주변 가족과의 일, 외로움 등이 책에서 잘 드러납니다.
정 많은 이웃 이야기,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그 '정'을 위한 많은 수고와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방이 꺠끗한지 아닌지는 방문을 여는 순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방을 그렇게 만든 사람이 편안한지 아닌지는,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해 봐야합니다. 단순한 치유 이야기로 책을 결론 짓기에는 좀 다른 것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사정을 알았다고 금방 이해하게 되지는 않고, 좋은 말을 건넸다고 생활이 바로 바뀌지도 않습니다. 돕겠다는 의욕보다 상대의 속도를 기다리는 일이 더 어려울 수도 있겠지요. 우리는 그 기다림을 이 책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좋은 이웃을 만나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결론적으로는 서로에게 좋은 이웃이 되어가는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그리워했던 ‘정’도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누군가 먼저 말을 걸고 다시 안부를 물어온 덕분에 이어졌겠지요. 좋은 이웃이 없다고 아쉬워하기 전에, 저부터 주변에 안부 한 번 물어봐야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잘지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