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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척학전집 : 훔친 부 편 - 있어 보이는 척하기 좋은 돈의 문법 ㅣ 세계척학전집 3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3월
평점 :
이 서평은 #북유럽카페 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부자가 되는 법, 부를 다루는 책은 서점에 정말 차고 넘칩니다. 몇 권 읽어봤는데, 대부분 비슷합니다. 아끼고, 투자하고, 복리를 믿어라. 맞는 말이지만 그게 전부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다른 곳에서 출발합니다. '어떻게 벌 것인가' 이전에 '돈이란 무엇인가', '이 시스템은 누가 설계한 것인가'를 먼저 묻습니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마르크스, 아렌트, 베버, 피케티, 케인스, 소로스, 프리드먼 같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철학자와 경제학자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오는데도 읽는 속도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게, 책의 큰 장점입니다. 2.500년간 인류 최고의 천재들이 도달한 결론을 가져와서 우리가 몇 시간 정도만에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 가 이 책의 콘셉트라고 생각합니다.

뒷표지부터 보는 이유가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와 토마 피케티가 한 말이 상당히 자극적이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긁는다는 표현입니다. 이렇게 노이즈 마케팅처럼 쓴 글이 책을 다 읽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마케팅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실제 책 내용이 이 사람들이 말한 것에 대한 설명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책 전체의 방향을 그냥 '표현'하는 것입니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잠든 사이에 돈이 벌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 책에서 파악하게 됩니다.

책 읽는 방법도 이렇게 이야기해줍니다. 순차적으로 독서하는 것을 추천하지만, 문제중심 독서로 가도 됩니다. 챕터가 여럿 있는데 그 중에 신경 쓰이는 제목을 선택하여 읽으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겠더군요. '가격은 가치가 아니라 기대다', '당신의 돈은 매일 녹고 있다', '경쟁은 패자들의 게임이다', '행복은 소득이 아니라 욕망의 크기다.' 이 중 어떤 문장에 눈이 먼저 가는지가 지금 자신의 상태를 보여준다는 말이기도 해요. 저는 매일 돈이 녹는다는 것이 걸렸습니다. 어딘가에서 제 돈이 새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으니까요. 그러면 그 챕터로 가서 읽으면 됩니다. 월급은 오르는데 생활이 나아진 느낌이 없는 이유를 오랫동안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거든요. 프리드먼의 인플레이션 챕터가 그 부분에 있었습니다. 이 책은 어디서 시작해도 되지만, 저는 결국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나갔습니다.

파트별 제목이 다 자극적입니다. 돈의 본질과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는 게 파트 1인데, 결국 돈이라는 건 실체를 가진 것이라기 보다는 합의에 의해 가치를 가지는 종이 쪼가리라는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파트 1에서는 하라리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자연물이 아닌 합의된 이야기, 종이에 숫자를 썼는데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 어떻게 보면 논리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파트 1에서 파트 5까지의 내용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책을 처음부터 조금 읽다가 보면 우리나라 지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수 잉크로 인쇄된 15.6 × 6.8센티미터짜리 면섬유 종이. 세종대왕 초상화. 홀로그램. 일련번호. 그게 전부입니다. 이 종이 한 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많습니다. 왜 이 종이쪼가리가 가치를 갖는 것일까요? 그저 믿기 때문에 서로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근거를 끝까지 추적하면 '다른 사람'이 믿으니까, 나도 믿는다가 됩니다. 우리의 저축과 월급, 노후 설계도 이런 믿음에 근거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 어떤 점에서는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누군가 믿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초인플레이션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밥 먹는 사이에 식사의 가격이 바뀐다는 말도 안되는 것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었다고 하지요. 짐바브웨만 해도 다들 아실 거 같습니다. 초인플레이션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종이는 그냥 종이로 돌아갑니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나면, 통장에 찍혀 있는 숫자가 잠깐 다르게 보입니다. 통장에 있는 원화, 달러화의 숫자는 어떤 역할인 것일까요? 책을 읽으면서 좀 철학적(?)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파트 2에서는 마르크스가 나오니 거기서는 이미 이야기가 끝난 것 같습니다. 유물론과 자본론에 대해 조금의 지식이 있다면 아, 그런 의미였구나 하고 이해가 될 것입니다.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도 파헤쳐보는 책입니다. 러시아 농부 파흠의 이야기입니다. 조금만 더 넓은 땅이 있으면 악마도 두렵지 않겠다고 말할 만큼 땅을 원했던 파흠은, 해가 지기 전에 자기 발로 돌아온 만큼의 땅을 가질 수 있다는 조건을 만납니다. 더 넓은 땅을 가지려고 더 멀리, 더 빠르게 달렸고, 결국 출발점으로 돌아온 순간 쓰러져 죽었습니다. 파흠에게 결국 필요했던 땅은 묻힐 자리,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경제철학 책에 갑자기 왜 나오지, 하고 생각을 했는데, 다 읽고 나면 여기서 책의 주요 주제가 드러난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시스템을 이해하고 구조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머니게임 안에서 얼마나 달릴 것인지를 결정하는 건 결국 자기 자신입니다. '더 많이'가 아니라 '얼마면 충분한가'라는 질문으로 방향을 전환하지 않으면, 달리기만 하다가 얻는 것 없이 끝날 수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책의 파트 4가 바로 이 지점입니다. 목차에서 '어떻게 더 벌지?'에서 '얼마면 충분한가?'로 전환된다고 나와 있는데, 이 전환이 앞의 파트들을 읽은 사람에게만 진짜 무게로 다가온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알아야 무서운 줄 알고, 대비할 줄 알고 하기 때문이죠.
이 책은 서점에서 보면 철학 카테고리에 있습니다. 철학적인 이야기이지만 경제적 부분에 대한 마음가짐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경제관련 지식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결론을 내려주는 책은 분명히 아닙니다. 어디에 투자하라던지 그런 이야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 대신에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상식 수준의 것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 화폐의 가치, 임금의 구조, 인플레이션, 부채의 의미, 시장이 작동하는 방식 — 등이 어떤 사람들의 어떤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그걸 알고 나면 우리의 이 게임판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아는 게 이긴다기보다, 적어도 속지는 않겠다는 느낌이랄까요. 그냥 당하지만은 않게 될 그런 교양과 지식이 쌓였다는 걸 느꼈습니다. 철학 카테고리의 책이라 어렵지 않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각 챕터가 짧고 본문 중간중간에 인사이트 박스가 핵심 문장을 따로 정리해줘서 생각보다 술술 읽힙니다. 한 챕터가 10~15분 분량이라 끊어읽기가 쉽습니다. 출퇴근길이나 점심시간에 한 편씩 읽기에 딱 맞는 구조라 부담이 덜합니다. 저는 한 번에 다 읽기는 했습니다. 그만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철학을 몰라도, 경제학을 몰라도 읽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쪽을 너무 많이 아는 사람보다,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나는 여기일까, 하는 분들이 읽으면 딱 좋겠습니다. 제가 딱 그런 쪽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철학적이면서도 경제에 대한 교양을 쌓고, 어떻게 보면 위험한 세상에 대한 이해도를 넓혀 그냥 당하기(?)보다는 대비하면서 헤쳐나가셨으면 하는 바람에서, 책을 추천합니다.
이 서평은 #북유럽 카페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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