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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건축 이야기 - 구마 겐고가 들려주는 일본 건축의 본질과 미래
구마 겐고 지음, 서동천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6년 1월
평점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건축물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땅 위에 솟은 구조물입니다. 하지만 문화재 같은 것만 보아도 건축물들이 당시의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도 있고, 살았던 사람들의 인생 희로애락이 응축되어 있는 결정체임을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평소에도 일본에 관심이 많았던 제가, #북유럽카페 에서 서평이벤트를 진행하던 #일본건축이야기 책 서평단을 신청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지은이 #구마겐고 는 경력을 보았을 때 까마득한 전문가라고 생각합니다. 긴 시간동안 건축 현장에서 업무를 해왔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책을 펴내면서 건축에 대한 심도 있는 해석을 해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어본 바로는 저자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일본 건축을 박제된 역사가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로 바라보려는 시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솔직하게 이야기 합니다. 일본 건축이라는 대상이 너무나 크고 애매하여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고요. 평생을 건축일에 힘써왔던 저자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았을 때 건축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는 작가의 겸손함도 느껴졌습니다.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축적된 목조 건축의 전통과, 20세기 폭발적으로 유입된 서구 모더니즘이 혼재된 일본 건축을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저자는 2020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 설계를 계기로, 일본 건축에 대한 어떤 깨달음을 얻어냅니다. 그것은 바로 강함과 약함이었습니다.
서구의 압도적인 석조 문명과 모더니즘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나무와 종이로 지어진 약한 집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며 현대화에 성공했는지를 추적하는 일본 건축에 대해서 저자가 이 책에서 풀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책의 시작은 좀 특이합니다. 일본인이 아닌 서양인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일본으로 망명한 독일의 브루노 타우트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타우트는 교토의 가쓰라리큐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이것이야말로 모더니즘의 원류라고 극찬했습니다. 장식이 배제된 단순한 선, 자연과 어우러지는 공간 구성에서 그는 서구 모더니즘이 지향해야 할 이상향을 발견했던 것이죠. 위의 사진에 나오는 구 히나타 별저 역시 타우트가 일본에 남긴 흔적 중 하나로, 대나무와 같은 소재를 활용하여 일본적인 미학을 표현하려 했던 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마 겐고는 타우트의 이러한 찬사가 일본 건축에 대한 오해 혹은 일방적인 해석일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타우트는 가쓰라리큐의 간결함(야요이적인 것)은 찬양했지만, 닛코 도쇼구의 화려한 장식은 '키치'라며 폄하했거든요. 저자는 이러한 이분법적 시각이 전후 일본 건축가들에게 콤플렉스와 지향점을 동시에 안겨주었다고 분석합니다. 즉, 일본 건축은 스스로의 눈이 아닌 서구라는 타자의 거울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재단해야 했던 모순적인 출발점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1장의 '모순'에 대한 해석이 끝납니다.
이어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르 코르뷔지에 같은 서구 거장들이 일본 건축에 미친 영향을 다룹니다.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일본의 전통 양식인 수키야(다실 건축)가 어떻게 근대 건축과 만나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3장, 수키야와 민중에서 저자는 요시다 이소야, 무라노 토고 같은 건축가들을 호명합니다. 이들은 서구의 모더니즘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철과 유리, 콘크리트라는 차가운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그 속에 일본 특유의 섬세함과 비례를 녹여내려 애썼습니다. 단순한 절충이라고 보기에는 좀 더 깊은 내용이 있습니다. 서구의 구축성에 맞서, 일본의 환경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엿보입니다.

사진 속의 송풍장 같은 작품들은 이러한 노력의 산물입니다. 뉴욕 MoMA 정원에 일본 가옥을 전시하며 일본 건축의 미학을 세계에 알린 사건은, 건축이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문화 정치의 도구로 작동했음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이 과정을 통해 일본 건축이 서구의 아류가 아닌, 독자적인 미학을 가진 대등한 파트너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실 아직도 일본 건축에 대해서는 무엇인가 '미학'으로 찬양하는 서양의 눈길도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4장에서는 일본 건축의 영웅이자 거인인 단게 겐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단게 겐조는 전후 일본의 부흥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일본 전통의 목조 가구 구조를 콘크리트라는 현대적 재료로 치환하여, 강하고 거대한 일본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패전의 아픔을 딛고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려는 일본 사회의 욕망과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저자는 이 시기를 조몬 - 토착적이고 강한 에너지와 야요이-귀족적이고 섬세한 미학의 대립 구도로 설명합니다. 단게 겐조가 이끌었던 메타볼리즘 그룹은 강한 콘크리트 건축을 통해 세계 무대에 일본의 존재감을 각인시켰습니다. 하지만 구마 겐고는 이 "강한 건축"의 시대가 버블 경제의 붕괴와 함께 종말을 고했음을 냉정하게 지적합니다. "잃어버린 10년"은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크고 강한 것만을 추구해온 일본 건축이 마주한 정신적 공황기였다는 것이죠. 버블 경제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 업계에 미친 영향도 파멸적이었지요.

일본 건축의 역사는 "약함과 작음을 무기로 하는 일본 건축의 미래와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목재라는 약한 재료는 불에 타고 썩기 쉽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고쳐 짓기가 쉽고 자연으로 되돌아가기도 쉽습니다. 이러한 순환과 "지속 가능성"이야말로 21세기가 요구하는 건축의 덕목이라는 것입니다. 친환경적 이미지도 존재하는 것이 목재이지요.
저자는 자신의 건축 철학인 "지는 건축"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님을 이 책을 통해 증명합니다. 그것은 타우트가 감탄했던 가쓰라리큐에서부터, 전후의 혼란 속에서 수키야의 정신을 지키려 했던 무라노 토고, 그리고 좁은 땅에서 얇은 기둥으로 공간을 만들어낸 무명의 집 장사들에 이르기까지, 일본 건축의 저변에 면면히 흐르고 있던 일본의 혼과 같은 것입니다.
이 책은 건축가 구마 겐고가 선배 건축가들과 나누는 가상의 대화이자,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한 인문학적 보고서입니다. 그는 건축물이라는 결과 뒤에 숨겨진 건축가들의 고뇌와 시대정신을 끄집어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 책을 덮으며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훌륭한 건축이란 압도적인 형태나 값비싼 재료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그 시대가 안고 있는 모순을 직시하고, 그 땅의 환경과 사람을 배려하며, 기꺼이 자연 앞에 "작아질 수 있는 용기"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입니다.
또한 이 책은 훌륭한 성장 드라마로 읽힐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서구라는 강력한 타자와 비교당하며 열등감을 느꼈던 한 소년(일본 건축)이, 맹목적인 모방과 반항의 시기를 거쳐, 마침내 자신의 타고난 기질(약함과 섬세함)을 인정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장점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과정. 그것이 바로 구마 겐고가 들려주는 일본 건축의 진짜 이야기입니다.
최근 일본 여행을 다녀온 분이라면, 후쿠오카의 다자이후 스타벅스나 도쿄의 네즈 미술관에서 느꼈던 그 편안함과 따뜻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명확히 이해하게 되실 겁니다. 그것은 단순히 나무를 많이 써서가 아니라,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오래된 지혜가 건축적으로 구현되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던지, 건축에 영감을 얻고 싶은 분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서평은 #네이버북유럽카페 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