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는 언제나 만남을 이야기했지
가와이 도시오 지음, 이지수 옮김 / 바다출판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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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연휴 중에 읽은 하루키 팬(?)의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하루키 소설을 “만남”이라는 한 가지 키워드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만남은 그냥 우연히 스치는 일이 아닙니다. 두 사람 사이에 음악, 책, 기억, 같은 질문처럼 함께 나눌 수 있는 매개가 생길 때 비로소 진짜 만남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하루키 소설 속 외로움과 상실도 끝이 아니라, 다시 만나기 위한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상실의 시대부터 이미 고유한 하루키의 특징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키는 이렇게 분석해주는 학자까지 있다는 게 대단한 작가임을 느끼게 합니다. 융 심리학과 관련지어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해석하는 책이 나올 정도니까요. 저도 팬이긴 하지만 팬 중의 팬이 아닐까 싶습니다. 분석해서 논문이 나올 정도의 문학적 성취를 이룬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경외심이 더 강해졌습니다.





책의 전개 방식은 어렵지 않습니다. 우연, 공유, 수수께끼, 첫사랑, 가면, 부끄러움 같은 분명한 단어를 중심으로 여러 작품을 묶습니다. 덕분에 작품 하나하나의 줄거리를 외우지 않아도, “하루키식 관계가 어떻게 시작되고 흔들리고 회복되는지” 흐름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내용으로는 관계는 정답을 빨리 찾는 경쟁이 아니라, 풀리지 않는 질문을 함께 붙들고 있는 시간에서 자란다. 여깁니다. 우리는 흔히 “문제를 풀면 가까워진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은 “풀리지 않더라도 같이 고민하면 가까워진다”고 말합니다. 공부로 바꾸면, 성적표만 보여주는 팀플보다, 같은 난제를 붙들고 토론한 팀플이 더 깊은 신뢰를 만든다는 뜻이죠. 여기서 깊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가면’과 ‘부끄러움’에 대한 해석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상황에 따라 가면을 씁니다. 말수가 적거나 거리를 두는 태도도 무조건 회피가 아니라, 관계를 오래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일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되면서 그런 가면이 더욱 두꺼워졌고, 나이를 먹어가며 더 크고, 두꺼워지지요... 학교 생활로 옮겨 보면, 말이 적은 친구를 서둘러 “비협조적”이라고 단정하기보다, 안전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오면 자연스럽게 열릴 수 있다는 시선을 갖게 됩니다. 또 책은 ‘우연’을 마법처럼 보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리듬과 습관이 우연을 불러오기 쉽다고 말하죠. 같은 시간에 같은 카페를 다니면,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날 확률이 올라갑니다. 리듬이 우연을 만든다는 관찰은 일상에도 바로 적용됩니다.


저는 하루키 책을 거의 다 읽어봤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이 책만을 읽으신 분들에게는 아쉬울만한 부분도 있습니다. 분석이 촘촘해서 좋은데, 하루키 작품을 거의 안 읽어 본 사람은 진입 장벽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각 작품의 핵심 장면을 조금 더 친절하게 요약해 주거나, 장 끝마다 작품-개념 연결표가 있었다면 초심자에게 더 쉬웠을 겁니다. 또 심리학 용어가 깔끔하지만, 현실을 볼 때 모든 행동을 상징으로만 읽는 과해석은 조심해야 합니다. 해석만 깔끔하게 해준다고 해도 흥미를 끌지 못한다면 결국 읽히지 못하고 버려질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책의 장점을 꼽자면 몇 가지 있네요. 하루키 소설을 감상문으로 소비하지 않고 관계의 구조로 보여 주는 것이 '분석'으로 접근하기에 참 좋습니다. 그리고 “공유의 매개”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가 왜 어떤 사람과는 빨리 가까워지고 어떤 사람과는 오래 엇갈리는지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하루키의 소설을 기반으로 이런 내용까지 뽑아 낸다는 것이 참 멋집니다. 읽고 나면 당장 실천해 볼만한 실험이 생각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친구와 한 곡을 같이 듣고 느낌 한 문장 적기, 같은 책의 한 단락을 소리 내어 읽고 인상 단어 나누기, 정답 없는 질문을 정해 5분만 같이 붙들기 같은 것들입니다. 성과를 내기 위한 활동이 아니라, 공유의 순간을 늘리는 습관이고, 이렇게 하면서 더욱 가까워지며 감정이 섞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루키 팬에게는 해석의 지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관계 읽기의 입문서가 될 수 있습니다. 만남을 사건이 아니라 공유의 구조로 보게 만들고, 단절을 실패가 아니라 다시 엮을 기회로 보게 합니다.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 법을 하루키의 소설을 통해 가르친다는 느낌이 드는 책입니다. 하루키의 팬이신 분들은 이 책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겠네요.


이 서평은 리뷰어스클럽으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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