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 -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글을 씁니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차영지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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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이제서야 사회가 정해준 역할과 책임의 무게를 제법 능숙하게 견디며 살아갑니다. 경험이 쌓이게 되니 이제는 걱정보다는 귀찮음이 좀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아침을 깨우는 것은 알람 소리가 아닌 스마트폰의 업무 알림이고, 밤에 눈을 감기 전 확인하는 것 역시 내일의 일정입니다. 저의 시간과 생각은 직장에서의 일과 계획조직의 규율과 주어진 의무, 효율과 성과라는 잣대 아래 정렬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정해진 틀 안에서 밥벌이하면서, 글을 써봐야지, 하는 꿈은 먼지 쌓인 서랍 속 낡은 노트처럼 까맣게 잊혔습니다. 꺼내서 먼지를 털어보고 다시 '음, 깨끗해졌네, 언젠가 다시 꺼내서 써야지'하고는 집어 넣기만 했습니다.



‘나만의 이야기’를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지, 현실의 무게 앞에서 자조하곤 했습니다. 늦은 밤에 집에 돌아오면 그저 잠을 청하기에 급급했으니까. 그런 제게 『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는 단순히 조언을 위한 작법서가 아니었습니다.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위대한 작가가 건네는 공감 어린 위로이자, 잠자던 세포를 깨우는 날카롭고 절실한 격려였습니다.

이 책을 처음 집어 들었을 때, 저는 어쩌면 또 다른 성공 신화나 천재의 손쉬운 비법을 기대했는지도 모릅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잘 알고 있었고, 열심히 읽었었기에, 이렇게 멋진 글을 쓴 작가라면 분명 우리 같은 범인(凡人)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영감의 번개를 맞으며 글을 썼을 것이라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제가 했던 생각이 그저 편견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책 속에서 만난 피츠제럴드는 빛나는 천재가 아니라, 단 하나의 완벽한 문장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남김없이 소진시킬 각오가 된 ‘고독한 노동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전적으로 만족스러운 단 한 페이지를 쓰기 위해 아흔아홉 페이지의 원고를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장은 제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는 단지 퇴고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글쓰기가 본질적으로 ‘버리는 행위’임을, 수많은 실패의 잔해 위에서만이 결실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었지요. 매일 아침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기계적으로 주어진 일을 처리하며 ‘완성’에만 급급했던 제 모습 위로, 더 나은 표현, 더 정확한 리듬을 찾기 위해 밤새 원고를 붙들고 씨름했을 그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소리 내어 읽었을 때 문장이 삐걱거리지는 않는지, 이 형용사가 인물의 감정을 정확히 드러내는지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의 장인 정신 앞에서, ‘재능이 없어서’, ' 시간이 부족해서'라는 제 생각은 정말 부끄럽기까지 했습니다.



특히 예술가로서의 자의식과 상품으로서의 글을 써야 하는 직업인으로서의 분열은, 100년 후의 제게도 너무나 익숙한 고뇌였습니다. 그는 명작을 집필할 시간을 벌기 위해, 때로는 스스로 ‘쓰레기’라 부르는 상업적인 단편들을 대중 잡지에 팔아야 했습니다. 그의 편지 곳곳에 묻어나는, 예술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자에 대한 경멸과 그럼에도 살아남아야 하는 가장의 책임감 사이의 갈등은, ‘자아실현’과 ‘밥벌이’의 양극단에서 서성이는 오늘날 우리 모두의 자화상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 지독한 동질감은, 그 어떤 자기계발서도 주지 못했던 깊고 현실적인 위로를 제게 안겨주었습니다.


인생의 중반에 접어든 직장인의 글쓰기가 유독 어려운 이유, 시간이나 재능의 부재보다 ‘이야깃거리의 부재’에 대한 깊은 불안감 때문일 것입니다. 파티와 스캔들,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피츠제럴드의 삶과 달리, 집과 일터를 오가는 예측 가능한 저의 삶에 무슨 특별한 서사가 있겠냐는 자조. 바로 그 가장 연약한 지점을, 이 책은 가장 날카롭게 파고들며 가장 현실적인 조언을 건넵니다.

피츠제럴드는 끈질기게 ‘관찰’하고 ‘경험’에서 길어 올리라고 강조합니다. “작가의 가장 큰 자산은 감성”이라 말하며, 스쳐 지나가는 모든 감정과 생각의 조각들을 소중히 그러모으라고 충고합니다. 그의 조언을 곱씹다 보니, 제가 무가치하다고 외면했던 일상의 풍경이 보물 창고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 만원 대중교통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과 그 뒤에 숨겨진 각자의 사연, 조직 생활 속에서 오가는 미묘한 관계의 역학과 뼈 없는 농담들, 윗사람의 말에 의미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저와 동료들의 모습까지.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생생하고 입체적인 캐릭터와 플롯의 원석인가. 피츠제럴드는 제게 가르쳐주었습니다. 비범한 삶을 살아야만 비범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삶을 비범한 시선으로 관찰하고 정직한 감성으로 기록할 때, 비로소 위대한 이야기가 탄생한다는 눈부신 진실을 말입니다.

이 책은 친절하고 상냥한 교사가 전달해주는 작법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지독히 예민하고 까다롭지만, 누구보다 이 길의 고통과 환희를 잘 아는 엄격한 선배에 가깝습니다. 그는 “소설 쓰기는 끔찍하게 어렵고 고독한 작업”이라며 달콤한 환상을 가차 없이 깨뜨립니다. 하지만 그 차가운 엄포 뒤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가슴이 시키는 일이라면 기꺼이 그 고통을 감수하라”는 뜨거운 응원이 용암처럼 흐릅니다. 책의 곳곳에 담긴 그의 편지글과 메모들은, 마치 늦은 밤 바에 홀로 앉아있는 제게 다가와, 자신의 영광과 실패담, 그리고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들을 두서없이 털어놓는 늙은 거장의 목소리처럼 들립니다. 그는 실패가 끝이 아니라 과정의 일부임을, 질투와 불안은 작가의 숙명과도 같지만 그것을 외면하는 대신 창작의 연료로 써야 함을 온몸으로 웅변하고 있었습니다.

책을 덮고 다시 제 책상을 봅니다. 여전히 눈앞에는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세상은 어제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상을 보는 저의 ‘눈’이 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들 속에서 이야기의 씨앗을 찾아내려는 새로운 감각이 깨어났습니다. 피츠제럴드의 ‘분투’는 제게 완벽한 글쓰기 비법이나 성공의 지름길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대신, 불완전하고 서툴지언정, 기꺼이 실패할 각오로 저의 첫 문장을 시작할 용기를 주었습니다.

『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는 단순히 작가지망생만을 위한 책이 아닙니다. 반복되는 일상에 매몰되어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이 시대 모든 ‘어른들’을 위한 책입니다. 마흔의 책상 앞에 앉아, 다시 한번 나만의 서사를 꿈꾸게 해준 이 위대한 분투가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이제, 새로운 글을 다시 써보려 합니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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