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지기
조창인 지음 / 밝은세상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등대지기. 제목만 들어도 왠지 외로움이 느껴졌다. 어린시절 흥얼거린 노래속의
등대지기도 외로워 보였다. 나는 실제로 등대에 두세번 가본적이 있다.
하얀색 높은 기둥처럼 만들어진 그곳을 안면이 있는 사람의 배려로 들어가 본적이
있었는데 층층 계단을 따라가면서 호기심으로 즐거웠었다. 높은 꼭대기까지
올라가보면 확 트인 바다가 보이고 큰 유리창 안에는 회전하는 타원형의 전구가
들어있었다. 맑은 날 등대에서 본 바다는 햇살에 반사된 은빛 수면으로 눈이 부시고
파란 하늘과 맞닿은 바다는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나는 매일매일 이 좋은 풍경을
보고 사신다니 좋으시겠어요 라며 부러운듯 말했지만 담배를 피우시던 아저씨는 허허
웃으시며 암만 풍경이 좋아도 집에서 사는것만 못해.. 하셨다. 나는 그때 앞에 펼쳐진
멋진 풍경의 잔상속에서 아저씨의 담배연기 같은 매캐한 외로움을 보았다. 등대지기를
읽으면서 그때 생각이 났다. 나는 풍경좋은 등대의 앞만 바라보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등대 자체가 감내해야할 일터이고 긴장해야 할 대상이였을 것이다.

등대지기는 외딴섬에서 등대지기로 살아가는 재우라는 인물의 삶을 담고 있다.
어릴때부터 차별과 무심함에 길들여진 생활을 참지 못하고 집을 나온 재우는 남도의
외딴섬 구명도의 등대원이 된다. 그렇게 8년의 세월을 보낼무렵 달갑지 않은 형의 전화를
받게 되고 애지중지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던 형은 한달만 맡아 달라는 거짓약속으로
치매걸린 어머니를 재우에게 떠넘기고 이민을 가버린다. 반갑지 않은 어머니. 남보다 더
불편한 어머니를 본 재우는 형에게 버림받고 자신에게 남겨진 어머니를 짐스러워 하며
예전의 미움과 원망이 다시금 비수로 돌아와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을 괴로워한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의 치매로 인한 여러 사건들은 조용하던 구명도를 시끄럽게 만들며
어머니를 더욱더 환영받지 못한 존재로 만들어 가고, 갑자기 전해진 등대원의 구조조정
소식은 긴세월 등대와 함께 한 재우에게 또다른 근심을 안겨주게 된다.

처음에 책을 읽을때는 모진 어머니와 형의 이기심에 화가나고 재우의 처지가 가여워
한숨이 나기도 했다. 재우와 어머니의 동거를 보면서 재우가 너무하단 생각보다는
나라도 이렇게 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심정은
특히나 그것이 부모님이라 생각하면 너무 큰 슬픔이다. 세월이 지나도 잊지 못할
생각날때마다 아릿한 아픔을 주는 기억일 것이다. 나는 재우의 심정을 백분의 일정도는
이해할 것도 같았다. 어머니의 사랑을 원했지만 늘 냉정해서 미웠던 어머니. 하지만
늘 그립고 보고 싶었던 존재였다. 불편한 존재에서 차츰 잊었던 사랑을 다시 되찾으며
어머니의 마음과 삶을 이해하게 되는 재우는 어느새 미움과 원망을 거쳐 자신의 사랑으로
어머니를 안아줄 수 있는 큰 마음을 가지게 된다.
처음에 어머니는 여리고 약한 마음을 가진 재우를 위해 모질고 엄한 역할을 하며
재우를 위한 삶의 등대지기가 되었다. 희생과 거친 삶으로 불을 밝혔던 어머니의
등대 불빛을 늦게나마 깨닫게 된 재우는 그제야 이해와 사랑을 아는 마음 따뜻한
진정한 등대지기로 거듭나게 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감동적인
이야기긴 했지만 재우에게 어머니는 처음부터 끝까지 힘겨운 존재로 보였기때문이다.
하지만 그 의미와 마음만은 십분 이해한다.

재우는 뼈저린 자책을 통해 비로소 어머니와 마주한 느낌이었다.
어머니를 사랑할 수 없다면 세상 그 무엇도 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당신은 익히
알고 있었겠지. 그래서 어리석은 자식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 위해 머나먼
외딴섬까지 찾아온 것이리라. p250

재우는 외딴섬에서 비로소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어두운 밤바다의 길잡이인 등댓불을 바라보며, 아무도 주목하는 이 없어도
고요한 빛을 던지는 등대의 의미를 가슴 깊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등대를 통해 인연의 끈을 다시 잡았다. 등대지기로서 어머니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p262


항로표지원이라는 말보다 등대지기가 익숙하고 친근하게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등대지기는 희생으로 사는 삶이다. 그 희생으로 등대는 매일밤 불을 밝히고 밤바다는
길을 내준다. 많은 삶의 등대들은 오늘도 불을 밝힌다. 그리고 그 안에는 울지 않고
기꺼이 희생을 감내하는 많은 등대지기들이 사랑과 정성으로 등대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등대지기는 울지 않는다 행여 울고 싶거든 갯바위에 부딪혀 울부짖는 파도를
바라보라. 그러면 된 거고, 그게 등대지기의 삶이다. p10

아직은 등대지기다. 등대지기가 존재하는 이유는 오직 등댓불을 밝히기 위해서다.
내일 당장 죽음이 찾아와도 나에겐 여전히 오늘이 남아 있고, 오늘의 몫으로 등대를
사랑하는 거다.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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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9-12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로표지원이라는 이름은 확실히 멋이 없네요.
등대지기, 잘 읽고갑니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