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테이프 - 관계의 무게
문재웅 지음 / 부크크(bookk)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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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회색빛으로 물들어버린 것 같다. 거의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으로 들끓는 지금 이순간에 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서늘해지는 것 같은 이런 느낌은 왜일까.


불행이란 존재는 인간의 빈틈을 기가 막히게 알고 한꺼번에 몰려와 인간을 쓰러뜨리는 것일까.

27년을 성실하게 근무했던 은행에서 조용히 퇴사를 권했다. 대출심사의 부당함을 알렸던 것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아내인 경희는 지금 암투병중이다. 난소암 4기.

통증이 시작되었지만 경희는 가족들 앞에서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아들은 아직 열 여덟이었고 대학도 가야한다. 하지만 경희는 자신이 아들의 삶을 많이 지켜보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진료를 갔을 때 의사에게 더 이상 항암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의사로서는 권하지 않지만 인간으로서는 이해한다..고 의사는 말했다.

죽음으로 향하면서 경희는 '안락사'에 대해 검색을 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조금이라도 더 살아있어달라고 치료를 중단하지 말아달라고..그렇게 보낼 수 없다고 아버지와 아들은 말렸지만 오히려 경희가 간절하게 부탁했다. 아직 내 모습으로 남아있을 때, 떠나고 싶다고. 의식도 없어지고 인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는 그런 기억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고.


남편인 재웅은 이해했다. 오래 같이 살아봐서 잘 안다. 경희의 마음을.

그렇게 같이 스위스로 떠나 경희의 마지막을 지켰다. 그리고 아들 성현에게 아내의 유골을 들려 보내고 자신은 남는다. 성현에게는 곧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재웅은 그러지 못했다.

경희가 너무 그리웠다. 그녀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힘이 없었다.


재웅의 어머니 옥자는 여든 다섯에 치매가 왔다. 가끔 정신이 돌아올 때도 있지만 옥자를 돌볼 사람들이 다 사라졌다. 아들도, 며느리도..

성현이 할머니를 집으로 데려와 돌봤지만 옥자는 손자가 잠든 어느 날밤 아파트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떠났다.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산 사람은 오래 붙잡지 못한다'.

맞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도 다시 살아간다. 잊혀져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니까 사는 거다.

상현은 엄마의 마지막 편지를 보고 울었다.

'살아, 그냥 살아'.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목숨이 붙어있는 것이 산다는 걸까.

홀로 남은 상현의 삶은 살아있는 것보다 죽음에 가까웠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자전적 고백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위적으로 꾸민 스토리가 아닌 절절하게 겪어낸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가버린 사람도 그렇게 가기는 싫었을 것이다. 남은 사람도 그렇게 홀로 남겨질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슬프다는 표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감정이 밀려왔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살다보면 '다행이었다' 싶은 순간이 올거라고 등을 두드려 주고 싶었다. 홀로 남은 아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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