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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철학자가 되는 밤 - 인생은 왜 동화처럼 될 수 없을까? 문득 든 기묘하고 우아한 어떤 생각들
김한승 지음, 김지현 그림 / 추수밭(청림출판) / 2020년 4월
평점 :
재미있고 따뜻한 철학서 한 권을 읽었다.
말이 넘치는 이 세상에서, 들으려는 이들보단, 말하고 싶은 이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대부분의 철학서들은, 대부분의 실용서들과 마찬가지로 서둘러 단정짓 듯 정답을 내리고, 우리의 뇌를 마비시킨다. 우리 사회는 이미 특정 생각을 강요하는 자기계발서에 중독된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아 보일 때도 종종 있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요, 단기적인 욕망은 참는 것이 옳은 것이다. 이 마법 같은 얘기를 수 천 년 늘어놓지만 약간의 센스 있는 카피로 바꾸면 박수 받는 시대. 그 속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영혼을 팔아왔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팔아야만 하는가.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영혼은 얼마나 더 핍박 받고 고달파야 하는가. 때로 정답 없는 삶을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이해 받지 못한 채로 죽어가는 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이 책이 철학에 접근하는 방식은 조금 색다르다. 어떤 면에서는 저자가 철학보다 먼저 미학을 공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의 글은 완전한 미학에도 심취한 것도 아니요, 또 완전한 철학과 논리에 치우친 건 더더욱 아니지만, 두 가지 모두를 공부했기에 비로소 말 할 수 있는 교집합의 지점들을 묘하게 건드리면서 카타르시스를 주기 때문이다.
감성적이고 문학적인 잔혹 동화 같은 이야기들과 사색에 젖은 무게 있는 화법은 독자에게 정답을 말하려고 시도하는 게 아니라, 자꾸만 깊게 가라앉아 물음표를 짓게 만든다. 옹알이에 그쳐버린 생각들을 자꾸 언어로 끌어 올려준다. 마치 실어증에 걸린 어린 아이의 내면을 읽어내고 그 아이가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언제까지고 저 깊은 산꼴짜기에서 기다려주는 듯한 기분. 그러한 방식으로 깊은 이해와 용기, 통찰력도 함께 준다.
몽환적인 문장들을 접하고 있음에도,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헷갈리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의 의도는 명확하고, 읽다보면 그저 더불어 내 삶에 그 물음표들이 가슴 속에 더욱 선명하게 새겨진다.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던지는 그 질문들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예리해진다.
가령 욕망과 현실 사이, 그 선택의 기로에서,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에 대한 고찰 같은 것. 선택하지 않는다고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닐 수도 있으며, 또한 어떤 선택을 한다고 그것이 최선일 뿐, 최고는 아닐 수 있음을. 그런 삶 또한 어엿한 삶이란 것을.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간만에 뇌 근육이 몸 좀 풀었단 말이 나오게 만드는 책이다. 이런 철학서가 또 있을까? 적어도 나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연애와 일상이라는 주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알랭 드 보통의 철학서들도 이처럼 서정적이진 않다. 그의 글이 오히려 이성적이라면, 이 책은 꿈결 속에서 자신과 나누는 대화 같은 책이다. 무의식의 언어 같은 문체의 연속이다. 현실에서 파악하기란 의외로 어려운 욕망의 진실 같은 것도 무의식 세계에 오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때문에 그의 뜬구름 잡는 듯한 이야기는 오히려 진실에 가까워지게 되는 원리다.
뇌가 하나라고 한 가지 생각이 드는 건 아니다. 문득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살이 붙고, 확장되는 것은 물론, 모순되는 생각이 드는 건 기본이요, 급기야 답이 없는 결말에 이르기도 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런 내면의 복잡한 심리를 자유롭게 풀어줬다가 통일된 결말을 만들어내며 쪼였다가 하며 밀당하는 기분이 든다. 그런 사색의 과정을 밀도 있게 담아냈다는 생각이 든다.
천 년이고 만 년이고 소장하고 싶어질 만큼 예쁜 표지는 덤이요, 생각하는 일, 나아가 어떻게 하면 좀더 나은 삶,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고 매일같이 철학하기를 변태같을 정도로 집착하는 나 같은 분들께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 한 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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