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후의 일이었다. 따라서 이 수기를 쓴 사내와는나는 이 수기를 쓴 광인을 직접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이 수기에 나오는 교바시 스탠드바의 마담이라고 짐작되는인물은 알고 있다. 그녀는 작은 키에 안색은 좋지 않으며,
눈은 가늘 치켜 올라가 있고 코는 높은, 미인이라기보다.
미청년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 딱딱한 느낌의 사람이었다.
짐작건대 이 수기는 쇼와(昭和) 5~7년경 무렵의 도쿄 풍경을 주로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친구의 손에 이끌려 그 교바시의 스탠드바에 두세 번 들러 하이볼등을 마신 것은, 일본 군부가 점차로 날뛰기 시작한 쇼와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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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묘한 이야기를 계속해보자. 하숙인에서 애인으로 변신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내가 느낀 것은 과연 거부감과 혐오감뿐이었을까? 아니다. 험버트 씨는 허영심에 약간의 자극을 받았고, 어렴풋하게나마 애정을 느꼈으며, 심지어 강철처럼 냉혹한 음모의 칼날에도 한 가닥 양심의 가책이 섬세한 무늬를 아로새겼음을 고백한다. 제법 그럴싸하게 생겼지만 적잖이 허무맹랑한 여자라고 생각했던 헤이즈 부인이,
교회와 독서클럽의 가르침을 맹신하던 그녀가, 틀에 박힌 표현을 남발하며 수다를 늘어놓던 그녀가, 두 팔에 솜털이 보송보송하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열두 살 먹은 딸에게 그토록 모질고 냉정하고 경멸적인태도를 보이던 그녀가 순식간에 그토록 연약하고 가여운 여자로 탈바꿈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그날 롤리타의 방 앞에서 내가 샬럿의몸에 손을 대자마자 그녀는 와들와들 떨기 시작했고 방 안으로 뒷걸음질을 치면서 몇 번이나 말했다. "아니, 아니, 이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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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사나흘 예정으로 동북 지방으로 떠난다. 여행 준비도다 마쳤고 부탁받은 짧은 원고도 봉투에 넣어 우표를 붙였다. 이제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시계를 보니 아직 10시 전이다. 아무리 그래도 잠자리에 들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서재에서 아래로 내려오다가 거실을 들여다보니 어머니가 멍하니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젊은 유부녀의 불륜을 다룬 드라마였다. 머지않아 예순이 되는 나이에도 왜 이런 프로그램을 보고싶어 할까. 어머니는 내가 장지문 옆에 서 있는 걸 알아채고는 리모컨으로 스위치를 껐다.
"차 마시고 싶으면 갖다 줄게."
허둥지둥 일어서려는 어머니를 제지하면서 나는 말했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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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 지방 민가에 대해 텔레비전에서 대담을 했다. 상대 남자는이와테의 박물관에 근무하는 젊은 연구원이었다. 나는 특별히 건축에 대해 해박하지는 않았지만 소설 중에서 민화를 다루는 일이많았기 때문에 이야기의 진행자로 뽑혔던 것이다.
프로그램이 무사히 끝나고 젊은 연구원과 술을 마셨다. 그 자리에서 어떤 화집을 보게 되었는데 프로그램에서 두세 장 뽑아서 쓴화가의 작품집이었다. 동북 지방 민가가 세밀한 필체로 그려져 있었다. 화가는 중앙에서는 무명에 가깝지만 상당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10년 전에 죽었다고 한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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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이제 나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존재였습니다.
내가 이곳으로 온 것은 초여름 무렵이었는데, 쇠로 만든창살이 드리워진 창문 너머로 병원의 조그마한 연못에 붉은 수련 꽃이 핀 것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세 달이 지나 병원 마당에 코스모스가 피기 시작했을 무렵에 뜻밖에도 고향의 큰형이 넘치를 데리고 나를 인수하러 와서는 아버지가 지난달 말에 위궤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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