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묘한 이야기를 계속해보자. 하숙인에서 애인으로 변신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내가 느낀 것은 과연 거부감과 혐오감뿐이었을까? 아니다. 험버트 씨는 허영심에 약간의 자극을 받았고, 어렴풋하게나마 애정을 느꼈으며, 심지어 강철처럼 냉혹한 음모의 칼날에도 한 가닥 양심의 가책이 섬세한 무늬를 아로새겼음을 고백한다. 제법 그럴싸하게 생겼지만 적잖이 허무맹랑한 여자라고 생각했던 헤이즈 부인이,
교회와 독서클럽의 가르침을 맹신하던 그녀가, 틀에 박힌 표현을 남발하며 수다를 늘어놓던 그녀가, 두 팔에 솜털이 보송보송하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열두 살 먹은 딸에게 그토록 모질고 냉정하고 경멸적인태도를 보이던 그녀가 순식간에 그토록 연약하고 가여운 여자로 탈바꿈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그날 롤리타의 방 앞에서 내가 샬럿의몸에 손을 대자마자 그녀는 와들와들 떨기 시작했고 방 안으로 뒷걸음질을 치면서 몇 번이나 말했다. "아니, 아니, 이러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