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시 문을 열자 썰렁한 바람이 들이쳤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밉살스러워 보였던 베란다의 뜨거운 양지로 걸음을 옮기고 싶을 만큼 썰렁한 가을바람이었다. 안으로 들이친바람이 바닥에 펼쳐놓은 스포츠 신문을 버스럭거리며 팔랑인다. 아직 침대에서 자고 있는 나오즈미의 얼굴에도 가을바람이 가 닿았는지 담요 속에서 꿈지럭꿈지럭 몸을 움츠린다.
나는 맨발로 베란다로 나왔다. 바닥에서 양지의 온기가 발바닥으로 전해져왔다. 잠결에 흐트러진 파자마에 따사로운가을 햇살이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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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좋은 것, 예를 들면 정말 좋은 셔츠라거나, 스카프라거나, 구두라거나, 안경 따위는 어느 한 순간을, 그것을 몸에 걸치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사람을 극적으로 바꿔준다.
는 것이다. 물론 브랜드를 숭배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예를들어 거리에서 갑자기 스카프가 바람에 휙 날아갔다고 한다.
면, 그것이 에르메스 스카프인지 아니면 근처에서 산 싸구려스카프인지에 따라 인상은 크게 달라진다. 패션이라는 것은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게 아니라 우선 자기 자신에게 보이기위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잘보고 있을 자신에게 정말 좋은 것을 입혀주는 것이 결코 쓸데없는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며 회사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는데 펌프스뒤축이 배수구 뚜껑 홈에 빠져버렸다. 엉겁결에 "꺄악!" 하고소리를 내지르며 옆에 있는 가드레일을 붙잡았는데, 다행히주위에 사람은 없었다. 나는 얼른 자세를 고치고 시치미를 뗀얼굴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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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 자리를 견뎌내기 힘들었다. 부모님의 이야기가진행됨에 따라 더 이상 케이크에 손을 뻗지 않게 된 나오즈미가 도움이라도 요청하듯 힐끔힐끔 나를 쳐다봤다. 나오즈미가 도중에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 버리는 건 아닐까, 몇 번이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오즈미는 꼼짝 않고 그자리에 앉아 부모님의 이야기를 끝까지 조용히 들었다.
충격적인 이야기가 다 끝나자 나오즈미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의 눈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는가 싶더니 "....…알았어." 라고만 중얼거리고 그대로 2층으로 모습을 감췄다. 이제까지 아무런 의심 없이 아버지, 어머니, 형이라 믿어왔던 사람들을 남겨두고 홀로2층으로 올라가 버린 것이다.
어머니가 2층으로 올라가는 나오즈미를 불러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내버려둬, 저 녀석은 괜찮을 거야." 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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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리도 불쾌한 느낌이 들 정도로, 다나베는 유쾌하게 웃어대는 걸까. 둘 다 별로 흥미가 없어서 진구(神宮) 구장에서하는 자이언트와 야쿠르트 게임은 미적지근한 맥주도 진력이날 무렵인 8회 초에 자리를 떴다. 기분을 바꿔 한잔 더 하려고 구장을 나왔는데, 출구를 잘못 찾아 미술관 쪽으로 나와버리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잎을 떨어뜨리기 시작한 은행나무가로수 길을 나란히 걸어 아오야마(靑山) 거리 쪽으로 돌아갔다. 다나베는 그동안 줄곧 스탠드에서 본 술주정뱅이, 맥주를팔던 아가씨의 넓적다리에 관한 농담 같은 걸 해대며 끊임없이 웃어댔다. 다나베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거면 됐지‘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든다. 뭐가 이거면 된 건지, 그리고이것이 대체 무엇인지도 모른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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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이 났다. 그날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모두 친척 결혼식에 갔었다. 외삼촌은 출근한 뒤니까 아침부터 외숙모와 친척 형과 나, 셋만 집에 있었다. 그런 참에 비가 개자 나는 밖으로 뛰쳐나갔었다. 할아버지가 집에 온 것은 오시로의 집에서 연락을 받기 조금 전이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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