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isa는 처음부터 그리 달가운 상대가 아니었다. 너무나 대중적인 대상 또는 장소에 대한 편협적인 거부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할 수 없다. 서울에 살면서 남산 타워에 가지 않는다든가 뉴욕에 있으면서 굳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전망대를 외면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영화 <러브 어페어〉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본 후, 다음에는 꼭 102층 전망대에 올라가 극적인 낭만의 주인공이 돼 보겠노라고 마음을 고쳐먹은 것도, 나이 들면서 오는 보편성과의 타협‘이었다. 프라토에서 상미의 남편 레오나르도와 토스카나 일정을 검토하고 있을 때, 그는 지도 위의 서북쪽 지역을 손가락으로 훑어가다가 피사가 나오자 빠르게 한마디 하고지나갔다. "피사? 글쎄, 벤딩 타워 Bending Tower: 그 유명한 피사의 사탑, 공식영어 명칭은 ‘Leaning Tower‘지만 레오나르도가 자기식의 영어 표현을 한 것으로 보인다. 두단어 모두 ‘기울어진‘의 뜻, 이탈리아 말로는 ‘토레 펜덴테 디 피사(Torre Pendente di Pisa)‘이다만 휙 보고 떠나세요. 남들 다 가는 데니까 뺄 수는 없겠죠." 나는웃으며 그의 말에 동감하듯 냉소적인 표정을 지었지만 ‘도대체 어떻기에…‘ 하며 내심 궁금했던 것도 사실이다. 토스카나에서 피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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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55미터의 길이와 90미터의 넓이의 홀과 만난 나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처럼, 들어서자마자 왼쪽 벽면을 크게 장식한 두 전사의 그림 앞에서 발을 멈췄다. 14세기 말, 타 지역에서 피렌체 군대로 투입된 용병 대장, 존 호크우드와 니콜로 다 토렌티노가 그 주인공들이다. 15세기의 피렌체를 대표하던 화가인 우첼로uccello와카스타뇨Castagno가 그린 2개의 프레스코는 거의 모노크롬에 가깝지만 청동 빛깔의 배경과 대리석 같은 질감이 주는 풍부함이 더해져 순한 평면 그림을 역동적으로 만든다. 사람을 압도하는 데에는크기도 한몫한다. 초대형 그림의 전체를 제대로 보기 위해 계속 뒷걸음질치던 나는 그 밑에 놓인 2개의 나무 벤치와 그곳에 피곤한몸을 눕힌 여행자들에게 시선이 멈추면서, 앞으로 다가올 성당 여정이 결코 녹록지 않음을 느끼고 있다. 저들도 나처럼 오전에 한판돌고 왔겠지. 1시간 휴식의 시효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피렌체가 사랑한 르네상스의 선구자이자 시인, 단테의 차례다. 논리학, 수사학, 철학, 천문학까지 꿰뚫으며 호기심과 지적 한계를 넘어선 위대한 시인은 피렌체에서 벌어진 정치적 혼란 속에서 자신의 길을 가다가 결국 추방당한다. 수십 년 간 외지에서 방랑자가 되어 떠돌아다니던 단테, 그 고독과 혼란 속에서 태어난 작품 『신곡』은 라틴어 대신 토스카나 방언으로 쓰였다. 1465년, 화가 도메니코 디 미켈리노Domenico di Michelino가 단테를 기리며 제작한 프레스코, 일명 〈단테와 그의 세계>는 붉은 긴 가운을 입고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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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치 않다. 경험으로 봤을 때 감기라는 것은 순식간에 이마의 열을 높이고 손가락의 힘을 빼버리며 목구멍을 붓게 만드는, 속도 면에서 최강을 자랑하는 질병이다. 나는 아침부터 1시간 간격으로내 몸이 서서히 정상 궤도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감기세균 인자가 적당한 인물을 찾아낸 것이다. 알약 두 알을 삼키는것 외에 아무런 예방 조치도 병원 치료도 할 수 없는 여행자보다.
더 만만한 대상이 있겠는가. 나는 부드러운 전복죽을 상상하며 크로와상과 반숙 달걀을 겨우 배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대단한독립운동이라도 하러 나가는 사람처럼 무장을 하고 이미 짜인(그래봐야 나 하나만을 위한 것이지만) 일정에 따라, 토스카나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한 코르토나로 출발했다. 밤새 얼어붙은 자동차 안은 미처 집안에 들여놓지 못한 네버로스트의 가동력을 저하시켰는지 화면에서 비가 내린다. 다행히 그녀의 목소리는 얼어붙지 않았다. 가다 보면 나아지겠지. 코르토나 성 밖의 공용주차장과가장 가까운 거리 이름을 입력했다. 성 안으로 자동차가 들어갈 수없으니 다음과 같이 미리 요령을 숙지하는 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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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장 짧은 거리‘와 ‘가장 짧은 시간‘이라는, 내비게이션의 두가지 옵션 중 ‘거리‘를 선택했다. 짧은 거리는 곧 긴 운전 시간으로이어진다는 토스카나식 논리를 생각한 것이다. 짧은 거리가 곧 짧은 시간이라는 보편타당한 논리가 늘 통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아마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운전대를 잡고 졸음과 싸워 본 사람은다 알 것이다. 그러나 토스카나에서의 짧은 거리는 교통 체증으로인한 긴 시간을 뜻하는 게 아니다. 그것의 원인은 바로 ‘산길‘이다.
시속 60킬로미터 이상 달릴 수 없는 길, 추월이 거의 불가능한 1차선의 좁은 길, 너무나 굽이져 핸들의 움직임이 멈추지 않는 길. 지도를 한참 들여다본 후, 아레초와 시에나를 거의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73번 도로의 노란색 줄을 손가락으로 따라가며 나는 이미 상상으로 그 길을 그리고 있었다.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서북쪽으로 올라가는 검정색과 빨간색의 고속도로 줄 표시를 무시하고이 짧고도 긴 산길 여정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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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손택은 그녀의 책 《우울한 열정》(우울과 열정이란 단어를 같이 써줬다는 점에서 그녀는 심리 치료사 그 자체다)에서 토성의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주장한 슬픈 학자를 우리에게 소개한다. 바로 발터 벤야민(Watter Benjamin, 1892~1940)이다. 발터 벤야민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토성의 영향 아래 태어났다. 가장 느리게 공전하는 별,
우회와 지연의 행성’자신의 우울을 토성적 기질 때문이라고 설명한 발터 벤야민은,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본질적인 외로움, 인생에서의 성공에 대한 공포,
우유부단, 둔감, 느림, 실수를 잘하는 것, 고집, 서투르고 멍청해 보이는 것, 눈에 들어오는 것의 3분의 1밖에 보지 못하는 시선, 사람에 대해선 신의가 없지만 사물에 대해선 신의가 있어 열광적인 수집가가되는 것, 내성적 성향을 의지박약 탓으로 돌리는 것, 사물적인 지배에항상 위협을 받는 것,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데서 무언가를 발견하길좋아하는 것, 그래서 결정적인 일격은 항상 왼손으로 날린 주먹이라생각하는 것, 사소한 것에서 의미를 끌어내기 등등으로 정의한다. 수잔 손택은 특히 ‘사소한 것에서 의미를 끌어내기‘란 표현에 대해 아주 멋진 해석을 붙였는데 이런 행위야말로 바로 우울함을 쾌활함으로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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