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들 속에 깊이 침잠했다. 런던에서 인편으로 책을 사오기도 했고 뉴욕의 친구와 부모님으로부터 책을 보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시인이나 소설가를 한 명씩 연구하면서 그들의 작품을 반복해서 읽고그들이 어떻게 한 작품에서 또 다른 작품으로 변화해갔는지 연구했다. 여러 작가의 스타일을 몇 달 동안 모방해보기도 했다. 그동안 두려움에 휩싸였고 나 자신을 완전한실패작으로 여겼다. 열여덟 살 때 나는 서른 살이 아주 많은 나이라고 생각했다. 스물다섯 살까지 첫 시집을 출판하지 못하면 자살하겠노라고, 그런데 나는 벌써 스물다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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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바로 그해 겨울부터였다. 글쓰기가 내 삶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듯, 유일한 탈출구라는 듯 나는 글을 썼다. 어떻게 보면 나는 늘 어떤 식으로든 글을 쓰며 살았다. 늘 작가들을 숭배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지막 페이지 작가 사진에 키스하곤 했다. 나는활자화된 모든 것을 성지로 여겼고 작가들은 초인간적인지식과 지혜를 가진 존재로 여겼다. 펄 벅, 톨스토이, 그리고 낸시 드루》를 쓴 캐럴린 킨. 성장한 뒤에도 그들의 작품들을 통속적으로 구분하지 않았다. 나는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서 공포만화로, 《위대한 유산》나 《비밀의 화원》에서 풍자만화잡지 <매드Mad)로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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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주고 마음도 주는 섹스를 하고 싶다. 몸도 주고 마음도 주고,
영혼까지 탈탈 털어 온전히 그 사람에게 넘겨주는 섹스를 죽기 전에한 번은 꼭 해보고 싶다. 세상이 홀딱 뒤집히고, 세상 무서울 것이 없어지게 만드는 그런 섹스를 해보고 싶다. 내가 누구였는지, 지금 내가부둥켜 안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 순간적으로 잊어버릴 것만 같은 그런 섹스를 해보고 싶어 미칠 것만 같다. 도파민 러버, 이제 와서 이야기지만 사실 난 당신을 비난할 자격이 없어. 어차피 맹숭맹숭하고 나를 안 놓쳐보겠다고 안간힘 쓰며 섹스해왔다는 점에 있어서는 당신이나 나나 거의 다를 게 없으니까. 나도 그리고 당신도 그런 섹스, 언젠가는 하게 되겠지? 행운을 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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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올 때에는 후쿠오카 서핑숍에서 산 서프보드를 짊어지고 있었죠. 부산까지는 배를 타고 와서 문제가 없었는데, 기차와 지하철을 타는 게 문제였어요. 코레일에 전화해서 서프보드라고 하는(그 당시만해도 사람들이 서핑을 잘 몰랐어요) 2미터가 넘는 물건을 기차에 싣는게 가능하냐고 문의했더니 전화 받는 분도 잘 모르겠다고, 알아서 실으라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웃음) 서울에서 다시 지하철을 탔는데, 교육을 받느라 시커멓게 탄 사람이 커다란 물건을 들고 들어서니사람들이 부랑자를 본 듯 놀라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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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지금 하려는 일은 일기를 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것은불법은 아니었지만(법이란 게 없으니 불법이란 것도 일절 없다) 발각만 되면 사형, 아니면 적어도 강제노동 25년형을 받을 것이 틀림없었다. 윈스턴은 펜촉을 펜대에 꽂고 펜 끝의 기름기를 닦아냈다.
펜이란 건 서명에도 거의 사용되지 않는 옛날식 필기도구지만 이멋진 크림색 노트에는 볼펜으로 끄적거리는 것보다 진짜 펜촉으로써야 합당할 것 같아서 남몰래 겨우 구해 둔 것이었다. 실상 그는손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 아주 짧은 글 외에는 모든 걸 구술기록기(口述記錄器)에 불러 주는 것이 상례인데, 물론 지금 그걸 써먹을수는 없었다. 그는 펜을 잉크에 찍고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의 뱃속으로부터 전율이 일었다. 종이에 글을 쓴다는 건 중대행위다. 그는 작고 서투른 글씨로 썼다.



1984년 4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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