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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무기력하게 느껴진다면 철학
양현길 지음 / 초록북스 / 2024년 11월
평점 :

사는 게 무기력하게 느껴진다면 철학, 양현길 지음, 초록북스
우리는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살고 있다. 때론 다이나믹하고 심장이 쫄릴 만큼 엄청난 일을 경험하기도 하고, 매일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 분명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허무한 생각이 들고 삶이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양현길 님은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10년 넘게 심리, 철학 등 다양한 주제로 독서와 글쓰기를 하고 있는 분이다.
저자는 현대사회는 재미있는 것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재미의 시대'가 아니고, 반복적인 자극으로 무감각함과 비참함이 이어지고 불안감과 불쾌함을 느끼게 되는 '무의미와 무기력의 시대'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공허함과 무기력함은 인생의 방향을 재설정하고,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은 내가 진정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지 생각해 보기를 바라며, 인생의 의미를 고민해온 역사 속의 위인이자 철학자들인 알베르 카뮈, 윌리엄 제임스, 아르투어 쇼펜하우서, 임마누엘 칸트, 루트비히 브트겐슈타인,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각자의 시대에서 삶의 무의미를 자신의 관점으로 해석한 통찰력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인간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렸을 때 나타나는 삶이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무기력함이 깊어지는 것을 '실존적 공허'라고 한다고 한다. 나는 약 50년을 살면서, 사는 게 허무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진 경험이 딱 세 번 있었다. 첫 번째는 2009년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고 제본된 박사논문을 들고 심사를 해 주신 교수님들을 찾아 뵈었을 때였다. 코스 워크를 하는 동안에 임신을 해서 불룩한 배로 졸음을 참아가며 수업을 듣고 실험을 하던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신 부심 교수님의 위로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두 번째는 2015년 워킹맘으로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매일 야근을 하던 시절, 암에 걸렸을 때였다. 너무너무 억울해서 한 달 내내 밤마다 울었던 것 같다. 실컷 울고, 수술을 받았고, 10년동안 재발되지 않도록 건강관리 하며 지내고 있다. 세 번째는 2024년 아빠 소천 후 8개월 후에 교통사고로 엄마가 갑자기 소천하신 사건이었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 나와 통화를 했고, 내일 우리집에 오신다며 신나하셨고, 바로 코앞에 있는 동생 집에 저녁식사를 하러 가시던 길에 아파트 단지내에서 뺑소니 교통사로를 당하셨다. 범인은 지목되었고, 국과수 부검과 수사 진행 중이다. 내 인생의 버팀목이었고, 신앙의 선배이고, 세상 그 누구보다 내 편으로 나를 이해해 주시던 두 분이 갑자기 이 세상에 없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이리도 가볍고 허무한 것일까? 이 책에 표현처럼 내 인생에 구멍이 난 듯이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중세 유럽인들은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모두 신에게 달려 있다고 굳게 믿었다. 부유한 귀족들은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헌신을 표현하기 위해 예루살렘, 로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등의 성지순례 길에 올랐다. 내가 부자가 된 것도 신의 은총이고, 전쟁, 기아를 비롯한 대재앙이 벌어졌을 때에는 신이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한 상황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이러한 신앙으로 인해 사람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현대사회는 서로를 평가하고, 견제하고,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생겨도 누군가 책임을 져야한다. 이렇게 개인주의, 능력주의가 팽배해지면 내 책임이고, 내 잘못이라 여기게 되면 극복하고 이겨내기가 힘들다. 우리 인간이 할 일은 어떤 일이 벌어져도 신에게 도움을 구하거나 감사하면 그만이다. 죽음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죽음이 삶의 끝이라고 생각하면 삶의 무의미함을 부축이는 도구가 될 수 밖에 없다. 최근에 읽었던 99세가 된 나이에도 활발히 자기 삶을 살고 있는 일본 의사분이 한 말이 떠 올랐다. 내가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것도 내가 살아 있기 때문이니 이 또한 감사하단다.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다는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언젠가 죽을 존재이니, 오늘 하루를 후회없이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까뮈의 소설 <이방인>에 나오는 뫼르소는 돈, 결혼, 승진, 심지어 자신이 사형을 당할지도 모르는 재판에서 조차도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무관심하다. 저자는 누군가 나를 괴롭힌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에서 나에 대한 우선순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나의 한마디 말이 그 사람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나를 괴롭힌다는 것이다. 그랬구나. 내 인생에서 없는 사람이라고 치부하기로 했는데, 그 사람은 나의 말과 행동이 그 사람의 인생을 지배하기 때문에 계속 나를 괴롭히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고소하면서도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나에게 더 집중하고 나의 인생에 집중하며 살아야 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바람대로, 수많은 철학자들이 던진 질문과 답을 읽으며 무의미하고 무기력해지려고 하는 나의 삶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었고, 나를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나는 막내딸을 마음 아프게 바라보던 부모님에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왔다. 내가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낀 이유는 더이상 내 모습을 보여줄 부모님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인들에게 돈이 삶의 목적이고, 우상이 되는 것처럼 어쩌면 나는 부모님의 기대가 우선순위였을지도모른다. 나를 상담하던 의사가 말했던 것처럼 내 인생에서 내가 없었던 것 같다. 윌리엄 제임스는 '삶의 의미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했다. 저자는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맛 보는 것, 이모든 것들에 삶의 가치가 구석구석 숨어 있다고 했다. 나의 삶에 대한 믿음과 가치각 굳건해 져서, 중세 사람들처럼 나의 삶의 목적과 의미가 신에 대한 감사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