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맞을 용기 - 세상이 당신의 선을 넘으려 할 때, 기꺼이 ‘지랄맞을’ 용기를 내십시오
조영훈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직접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지랄 맞을 용기, 조영훈 지음, 모티브


"세상이 당신의 선을 넘으려 할때, 기꺼이 (세상과 당당히 맞설) 지랄맞을 용기를 내십시오."


책 제목도 제목이지만, 책에 써 있는 카피 문구가 너무 강렬하게 다가왔다. "지랄맞다"는 말은 성질이 사납고 괴팍하다는 의미의 비속어이다. 간질을 뜻하는 말에서 나왔다고도 한다. 둥글게 살고, 순응하며 살면 가늘고 길게 살 수 있다. 하지만 내 속에도 이 지랄맞음이 꿈틀대어서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이 책에는 타인의 시선, 사회의 억압, 세상의 편견에 지랄맞은 용기를 가지고 당당히 맞섰던 24명의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에는 지랄맞은 이단아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세계 위인전에 당당히 나오는 인물들이다.


개처럼 사는 철학자인 견유학파(Cynicism)의 창시자인 디오게네스는 광장에서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아고라(광장) 구석에 버려진 커다란 와인용 점토 통에서 살았던 그는 사회의 통념을 완전히 묵살하며 살았던 사람이다. 그가 알렉산더 대왕에게 했던 유명한 말이 '내 햇빛을 가리지 말라고 비켜 달라'이다. 이 책에 거듭 나오는 내용이 나의 자존감을 지키는 것에 관한 것이다. 비록 나보다 상대가 높은 자리에 있고, 나 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더라도 나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할 수는 없다. 상대의 무례함에는 정색하고 선을 분명히 그어야 하며, 부담함에는 명확하게 아니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진정 지랄맞은 용기를 지닌 사람이다.


콜로레도 대주교는 자신이 고용한 모차르트가 자신보다 돋보이는 걸 원치 않아 모차르트를 하인과 밥먹게 하고, 본인 허락이 있을 때에만 다른 귀족들이 여는 연주회에 참석하도록 갑질을 했다. 결국 모차르트는 대주교의 하수인 백작에게 엉덩이를 발로 걷어차 쫓겨났지만, 그는 굴욕을 분명히 받아들이고 오히려 궁정이나 교회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음악가로 작곡하고, 연주활동을 했다.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바니> 같은 오페라로 그 이후에 작곡되었다고 한다. 설령 그 사람이 내 월급을 주는 사람일지라도 나의 존엄과 영혼까지 통제할 수는 없음을 모차르트의 삶이 증명해 보였다.


사람들은 잘난 사람을 질투하고, 어떻게든 흠집을 내서 끌어내리려 한다. 업적보다는 말이나 행동, 과거의 실수, 심지어 다른 사람과의 관계 등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는 가십거리로 입방아를 찧는다. 엄청난 업적으로 당당히 맞선 사람이 두 번이나 노벨상을 수상한 마리 퀴리이다. 세상의 시선에 갇혀 눈치보느라 전전긍긍하며 해명하는 대신, 마리퀴리는 업적으로 정면 승부햇다. 사람들의 도덕성을 심판대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할 때, 해명하고 대응하는 대신 거기 쏟아부을 에너지를 오로지 일과 성과에 쏟아 부은 것이다. 진흙탕 싸움에 말려드면 나도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될 뿐이다. '억까'를 시전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본질을 잃어버리기를 바란다. 그게 그들이 바라는 결말이니 우리는 지랄맞은 용기로 상대가 반박할 수 없는 결과로 증명하는 수 밖에 없다.


코난 도일은 안정이 주는 달콤함을 과함히 뿌리친 사람이다. '셜록 홈즈'를 통해 영국 최고의 스타 작가가 되었고, 천문학적인 원고료를 받았지만, 코난 도일은 흥미 위주의 추리소설 보다는 묵직한 역사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셜록 홈즈의 회상록>에서 홈즈를 절벽아래로 떨어뜨려 죽이고, 그날 일기장에 두 단어를 썼다고 한다. "Killed Holmes." 돈이나 타인의 기대에 묶여 내 본질을 훼손한다면, 코난 도일처럼 과감하게 떨쳐버릴 지랄맞을 용기가 필요하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의 엄마가 그랬다. 자기 딸은 밥상을 차리는 사람이 아니라 엎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안정'이 주는 달콤함에 속아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지 않아야겠다 생각해 본다.


이 책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것은 흔히 니체를 신이 없다, 무신론자다라고 알고 있었는데, 니체가 "신이 없다"는 말 보다 그 뒤에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신이 없으니 정해진 정답대로 기계적으로 따라갈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우리의 삶을 꾸려 나가야 된다는 의미이다. 니체가 살았던 시대처럼 지금도 잘못된 신앙관이 있었다. 마치 목사가 하는 말은 하나님이 하는 말인냥 그저 아멘을 외치며 절대순종한다. 과연 하나님이 인간을 그렇게 창조하셨을까? 제대로 사리분별 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래 모습 그대로의 나 자신을 지켜가며 살아가길 바라지 않으실까? 그것이 니체가 말하는 아모르 파티(Amor fati)가 아닐까?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지랄맞다는 꼰대들이 자기들 입맛대로 통제되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다는 저자의 말에 왠지 모를 통쾌함이 느껴졌다. 그래, 나는 너희들의 신념과 잣대로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이야. 나에게 둥글게 살라고 강요하지 마!


마지막으로, 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역사에 남을 정도로 제대로 지랄맞게 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