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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순례
헤르만 헤세 지음, 육혜원 옮김 / 이화북스 / 2026년 1월
평점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직접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동방순례, 헤르만 헤세, 이화북스
오래간만에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읽었다. <동방순례>는 <유리알유희>의 모태가 된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며, 헤르만 헤세의 작품 중 가장 사적인 고백을 담은 책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설처럼 가볍게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오히려 긴 명상과 순례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은 화자가가 속한 동방으로 향하는 순례단의 여정을 회고하는 형식이다. 인도, 중국 같은 동방을 순례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인간 정신의 근원이나 자기 존재의 본향을 향한 순례를 담고 있다. 이 책을 다 읽을 때 즈음에는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나는 혼자 걷고 있는지에 대해 자문하게 되었다.
동방순례는 실패를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보여 준다. 하지만 길을 잃고, 믿음을 잃고, 순례단마저 잃어버린 상황에서도 실패를 좌절로 묘사하지 않고, 참된 순례를 해체에서 시작됨을 조용히 말한다. 어떤 일을 할 때 꾸준하고 성실함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고,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기도 한다. 특히 사회에서는 결과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길을 잃고 헤매는 경험 자체가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잘못된 방향으로 꾸준히 간다면 오히려 잘못된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헤르만 헤세는 화려하지 않은 문장을 구사하면서 우리 마음 속 깊이 남아 계속 울림을 준다. 이 책은 오래된 수도원을 조용히 명상하며 산책하는 느낌이 든다. 조용하게 사색할 수 있는 느낌이다. 젊을 때는 꾸준함과 성실함을 통해 드디어 이루어 낸 결과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그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들여다보며, 그 과정에서 내가 행복했었는지, 길 위에 혼자 서 있다는 불안감에 힘들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본다. 우리 인생도 순례길과 같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이 길에 서서, 제대로 방향을 잡고 가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