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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 (양장) - 살아 있음의 슬픔, 고독을 건너는 문장들 ㅣ Memory of Sentences Series 4
다자이 오사무 원작, 박예진 편역 / 리텍콘텐츠 / 2026년 1월
평점 :

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 리텍콘텐츠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실격>이라는 작품을 통해 알게 된 작가이다. 소설을 읽으면 전체적인 줄거리나 내용이 기억에 남는데, 다자시 오사무의 작품은 강렬했던 그의 삶처럼 문장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가질 것이다. 이야기 보다 문장이 먼저 남는 작품, 줄거리를 다 말하지 못하더라도 문장이 이상하게 오래 머물고, 시간이 지나 가끔씩 떠 올릴 때마다 감정의 결이 그래도 느껴지는 작품. 그런 그의 작품 때문에, <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이라는 이 책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은 다자이 오사무가 쓴 작품이나 작가로 설명하기 보다는 어떤 문장을 남긴 작가라는 관점으로 보면 좋을 것이다.
작가의 작품을 논할 때, 일반적으로 작가의 생애, 작품의 해설 등에 대해 연대기적 정리가 먼저 나온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다자이 오사무의 문장들이 등장하고, 그 문장에 대한 해석이나 맥락 이해는 매우 절제되어 있다. 처음에는 갑자기 튀어나온 듯한 문장앞에 이게 뭐지 싶었지만, 읽다보니 오히려 이런 구성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독자가 문장을 읽고 충분히 느낀 후에,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는 내 느낌대로 읽으면서 오롯이 문장에만 집중하면 된다. 누군가의 해설이 오히려 글을 읽는 내 느낌을 방해할 수 있다. 전체적인 내용을 알고 싶다면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들을 읽으면 그만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비극적인 인생을 살다 간 불운한 천재 작가이다. 그는 고리대금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집안을 부끄러워했고, 대학시절에는 공산주의에 영향을 받아 좌익운동을 했고, 21세에 연인과 분신자살을 기도했으나 혼자 살아 남아 자살방조죄로 기소되기도 하였고, <인간실격>을 탈고 한 후 <굿바이>를 집필 하던 중 39에 연인과 강물에 뛰어 들어 생을 마감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좌절, 허무함, 자기혐오, 도망치고 싶은 마음들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그래서 다자이 오사무의 문장은 솔직하면서도 때론 비겁하다고 느꼈었다. 처음 <인간실격>을 접했을 때 그런 모습들이 많이 불편했었지만, 인간 내면 깊은 곳을 잘 묘사했던 문장들을 읽으며 오히려 솔직함이 마음에 들었었다. 겉으로는 다들 웃고 있지만 다들 마음 한켠에는 차마 드러내지 못하는 아픔과 좌절을 품고 산다는 것에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이 책은 다자이 오사무나 그의 작품을 분석하고 파헤치기 보다는 독자들의 기억 속에 그를 어떻게 다시 살려내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자이 오사무처럼 이 책 역시 차분하고 차분하다. 그의 비극적인 삶을 구태여 재조명하지도 않고, 그저 담담히 그의 작품 속 문장들을 펼칠 뿐이다. 그가 남긴 문장을 조심스럽게 따라 쓰며 오랫동안 내 머리 속 한 켠에 자리잡고 있던 다자이 오사무의 문장을 마음에 새겼다. 그의 소설이 다시 읽고 싶어 진다.
"행복감이라는 것은, 슬픔의 강바닥에 가라앉아 희미하게 빛나는 사금의 알갱이 같은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