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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을 위한 쇼펜하우어 ㅣ 열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우르줄라 미헬스 벤츠 엮음, 홍성광 옮김 / 열림원 / 2025년 9월
평점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직접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을 위한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 열림원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종종 핸드폰에서 이것저것 보다가 시간을 보낸다. 다른 사람들이 올린 피드나 뉴스 기사를 보고 나도 모르게 비교하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내가 알지 않아도 되는 정보까지 쏟아지니 그야말로 정보 과잉의 시대이다. 이 책을 읽으며 놀란 이유는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19세기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가 쓴 글이 위로가 된다는 것이었다.
쇼펜하우어는 비관주의 철학자라고만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윤리 시간에 배운 쇼펜하우어는 그랬다. 그런데, 어렵고 난해할 수 있는 철학자의 글이 현대인의 스트레스 해소에 적용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본질이 겨핍이고, 삶의 고통이라고 말했다. 나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쇼펜하우어의 이 말 때문에 그를 비관주의 철학자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삶의 고통에서 도망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라고 한다. 스트레스를 이겨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대상으로 보는 인식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약 10년 전 암에 걸렸을 때 먼저 암에 걸렸던 선배언니가 그랬다. 우리는 암에 잘 거리는 체질이 된거야. 그러니 암과 친구처럼 지내고 받아들여야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SNS에서는 대부분 좋은 것만 올린다. 있어빌리티라는 말이 괜히 생겼을까? 그런 탓에 팔로우 수가 몇명인지, 좋아요가 얼마나 눌러졌는지를 마치 인기의 척도인냥 착각한다. 최근에 나는 블로그에 댓글창과 좋아요 누르는 창을 닫았다. 조회수도 잘 확인하지 않는다. 그냥 블로그는 내 삶의 기록일 뿐이다. 쇼펜하우어 역시 타인의 인정 욕구가 인간을 가장 불행하게 만든다고 했다. 타인의 기준에서 벗어나 자기 가신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해방이라고 했다. 이 말에 정말 동감한다. 나의 단편적인 것만 본 사람이 어떻게 나를 규정할 수 있겠는가? 50년 넘게 경험한 나 조차도 나를 잘 모르겠는데 말이다. 우리가 염려하고 불안해한 이유의 거의 절반은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까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타인의 견해에 가치를 두지 말아야 겠다.
나이가 들면서 불필요하게 사람을 만나는 시간을 줄이려고 한다. 현대인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 한다. 나 역시 그렇다. 핫지만 쇼펜하우어는 고독을 두려움이 아닌 성숙과 내면적 풍요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 자신 안에 충분한 세계가 있으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고 한다. 공허함을 내면의 성숙함으로 채워야하는데, 타인에게 의지하거나, 물질적인 것에서 만족을 찾으려하니 삶이 더 공허해지는 것 같다.
우리의 온각 걱정, 근심, 안달과 성화, 불안과 긴장 등은 대부분 타인의 견해와 관계 있는 것이라고 한다. 남의 견해에 대해 반박하지 말 것을 권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불합리한 것들을 하나하나 설명하여 고치려고 한다면 969세까지 살았던 므두셀라 만큼 오래산다 해도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므두셀라의 1/10도 못 사는 짧은 인생인데 타인의 생각을 고쳐보겠다고 열 올릴 필요가 없다는 거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는 쉽지만, 사람을 바로잡는 것은 어렵다는 말을 명심했야겠다.
이 책은 스트레스의 근원을 철학적인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주는 책이다. 철학적인 내용이라 그 뜻을 이해하느라 여러번 읽어야하는 문장도 있었다. 손안에 잡히는 작은 사이즈의 책이었지만 책 한권들 다 읽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시간내어서 필사도 해 보고 싶어지는 책이다.
“삶은 괴롭지만, 그 괴로움을 아는 순간부터 우리는 자유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