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나비를 듣다 울었다 - 그 소란한 밤들을 지나
정은영.생경.성영주 지음 / 몽스북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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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직접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

잔나비를 듣다 울었다, 정은영, 생경, 성영주 지음, 몽스북

이 책은 세 명의 이혼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 미술감독인 정은영 님, 과하게 솔직한 어린이와 살고 있는 상담자 생경 님, 잡지기자로 일하며 술 마시려고 운동한다는 성영주 님이 그 주인공이다. 프롤로그에서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으로 읽히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정말 그런 느낌이었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쓰여진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라 누군가의 일기장을 읽는 기분이었다.

정은영 님은 내가 재미있게 보았던 <처녀들의 저녁식사>, <광식이형 광태>의 감독이다. 독특한 재미가 있었던 영화였다. 영화가 감각적이어 감독도 밝고 유쾌한 사람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면에 이런 아픈 경험을 했는지 몰랐다. 저자가 숱한 이별을 경험할 때마다 누가 나를 기다리고 있기에 내 연애를 방해하냐며 결혼할 사람과는 죽음으로도 헤어지지 않겠노라 다짐했지만 결국 이혼했다. 이혼 후 1년을 가위에 눌리며 보냈고 다시 새로운 영역의 극지체험을 하며 3년을 지나왔다고 한다. 너덜너덜해진 저자를 무작정 지지해 준 분들 덕분에 버텨내었다고 한다.

밖에서는 호인이고, 사교적이고, 괜찮은 사람인데 집에서는 가정에서는 그닥 쓸모없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생경 님은 결혼한지 불과 반년만에 임신 5개월되었을 때 결혼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10년 전 즈음, 남편은 나에게 바라는 것이 너무 많다고 뭘 해줘도 성에 안찰거라고 악담을 했다. 글쎄, 내가 바라는 결혼생활과 달라서이지 않을까? 심지어 나도 직장을 다니는데 왜 나만... 그렇게 내가 지쳐가고 병이 들고 있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생경 님은 집에서 5분거리에 바다가 있는 바닷가 마을에 산다고 한다. 몇 년 전 내가 한참 힘들었을 때 제주살이가 하고 싶어서 인터넷 부동산을 뒤진 적이 있다. 후배가 1년간 연세를 내며 제주도 집을 얻어 거의 매주 제주도를 가는 것 보며 허파에 바람이 들었던 것 같다. 저자처럼 집에서 편하게 나온채로 파도 끝자락에 의자를 놓고 발목을 바다에 담근채 있어보고 싶었는데, 도보로 바다에 갈 수 있는 집들은 엄청나게 비쌌다. 심지어 오래된 옛날집들도 비쌌다. 나는 용기도 돈도 없었다. 한가로이 바다를 보며 멍 때리고 있을 여유가 내게 없다는게 지금도 여전히 슬프다.

이혼을 하면 모든 걸 혼자 결정해야 한다. 생각해 보니 나는 지금껏 남편과 상의한 것보다 혼자 결정한 일이 더 많았다. 튿히 아이 교육에 대해서는 모든 걸 혼자 처리해야했다. 사람에게 의존하며 기대며 상대적으로 결핍을 느끼고, 누군가를 미워하며 사느니 차라니 혼자 있으며 만족스럽게 사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보다도 나는 이혼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는 분들이 더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저자가 이혼하던 날 넘어질 뻔 했을때 길에서 저자를 일으켜 세운 나이든 여성분이 있었다. 그녀는 45년 걸려 이혼했다며 저자처럼 더 이른 나이에 할 걸 그랬다는 노년의 여성분의 고백처럼, 많은 사람들은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 오죽하면 아빠가 '너는 어릴 때부터 뭘 잘 못버리더니 왜 김서방을 어깨에 메고 힘들게 가냐'고 하셨을까? 결혼생활은 사랑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다.

바람을 피워 남편과 이혼했어도 시간이 지나면 내가 잘못했던 것들이 떠올랐다길래 처음엔 좀 의아했다. 귀책사유가 누구에게 있었든지 한 때는 죽고 못살 정도로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들이 아닌가. 나라고 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생경 님의 고백처럼,나 역시 나는 무턱대고 좋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고, 상대방만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남녀관계 특히 부부의 연은 단순히 서로에게 이익만 가져다 주는 관계가 아닌데, 계산기를 두드리며 잘잘못을 따지고 이건 아닌 것 같다며 최악이라 단정지었던 것 같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몇 발짝 물러나 있으니, 책임감 없다고 했던 그도 나를 만나 참 힘들었겠구나 싶다.

이혼 뿐만 아니라 누군가와 이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을 견디며 나를 찾아나가야 한다. 결혼을 하든, 이혼을 하든, 누군가와 이별을 하든 결국 내 삶을 온전히 내 스스로 지탱해야 한다. 내가 나를 감당하며 살아가는 건 누구나 다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잔나비를 들으며 훌쩍 거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게 다행이다 싶다. 간만에 감성적인 글을 읽으니 마음 한쪽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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