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이상해
헤이란 지음 / 사유와공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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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이상해,

헤이란 지음, 사유와공감

나이들어 겪는 질환들이 예후가 좋지 않거나 본인이나 가족들에게 힘든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도 특히 치매는 치료제가 없는 질환으로 약을 복용하더라도 더 이상 나빠지지 않으면 다행인거고 대부분은 점점 더 상황이 악화된다. 나이들어 건강하게 잘 살다가 치매 걸리지 않고 깨끗하게 죽는 것이 복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 책은 치매에 걸려버린 저자의 외할머니로 인해 가족이 겪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외할머니의 치매를 알고 난 이후로 저자는 엄마와 통화기록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증상이 복잡하고 심각해지자 용건만 간단히 끝내던 전화가 하소연과 한숨이 섞인 채 길어졌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전화로 바뀌어 갔다고 한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니 가족들 모두에게 걱정, 불안, 공포였으리라.

내가 알던 사람과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리는 게 치매이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해도 편안히 계시던 외할머니가 갑자기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눈빛이 돌변하며 어떤 사람도 밀쳐버리는 무시무시한 괴력을 지닌 분으로 변해버리거나, 평생 들은 적도 입에 담아본 적도 없을 '신박하고 자극적인 욕'을 삽시간에 출력해 내는 '신통한 어휘력'을 보였다고 했다. 저자의 표현이 어떤 상황인지 너무 생생하게 그려졌다. 더군나다 외할머니게게 욕 먹는 사람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평소 원한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근거 없고 출처 없는 천하의 몸쓸 놈이라니 당황스러움 보다 무섭게 느껴졌을 것이다. 저자의 아버지는 장모님이 감정을 많이 숨기며 살아서 그런 것 같아 안쓰러워 하셨단다. 어느날 외할머니는 아빠에게 욕을 뿜어내셨는데, 서운해 하는 아빠의 모습과 당황해하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진다. 정말로 감정을 삭히고 살아서 내재되어 있던 속내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표출된 걸까? 저자의 말처럼 출처를 알 수 있다면 퍼즐 맞추듯 풀어나면 좋으려만 알 수 없는 속내와 망상이 묘하게 어우러져 가족들을 힘들게 했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은 외할머니이지만, 외할머니와 4대가 함께 살며 지나온 삶의 이야기는 가슴 뭉클하다. 치매 걸리지 않아야 한다며 부지런히 일을 끝내놓고 의무감처럼 민화투를 치시던 모습, 정남향 집에서 가만히 햇빛 쬐며 화초처럼 앉아 계시던 모습, 그렇게 친절하지도 않고 무심한 듯 무뚝뚝한 듯 계시던 어르신의 모습에서 갑자기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가 오버랩되었다. 정정하게 살아계시다가 뇌출혈로 갑자기 돌아가셔서 황망하기 그지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까운 미래의 우리 부모님 혹은 나의 노년기는 치매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절실하게 들었다. 늙어가는 것도 서러운데...그래도 저자의 기억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외할머니의 따슷한 추억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훗날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이상하다고 말하는 딸도 외증조할머니를 추억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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