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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고 흐느끼고 견디고
신달자 지음 / 문학사상 / 2023년 9월
평점 :

미치고 흐느끼고 견디고, 신달자 묵상집, 문학사상
신달자님의 시간이 나왔다기에 너무 반가웠다. 무려 8년 만에 나온 신간이라고 한다. <미치고, 흐느끼고 견디고>는 그녀의 80년 생을 돌아보는 묵상집으로, 평생을 써 온 시 1000여편 중에서 182편을 싣은 <저 거리의 암자>와 동시에 출간되었다. 색상도 파란색과 보라색의 양장본으로 고급스럽게 디자인되어 있어서 책을 받는 순간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잘못하였습니다."
신달자님은 동향분이신데 중고등학교 때 엄청 많이 들어서 친근하게 느껴진다. 우울한 가정사로 인해 늘 한 손에 책을 끼고 다니면서 생각이 많았던 분이라고 들었다. 21세에 등단했지만, 학업과 결혼으로 펜을 잠시 놓았다가 서른에 첫 시집을 내었다. 세 아이를 낳고, 남편과 시어머니를 오랫동안 병수발 하며 생계를 꾸렸다. 남편을 24년동안이나 병수발을 하고 하늘나라로 보낸 후 본인이 유방암에 걸린다. 그토록 되고 싶었던 교수의 꿈은 이런 상황에서 50세가 되어서야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인생을 잘못했다는 말로 표현하다니! 감사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힘들고 힘든 상황의 연속이었지만 아이들을 키워 내야하니 강하게 모질게 버티었을 터인데, 잘못했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나 역시 남편의 몇번의 사업실패, 40대 중반에 유방암에 걸리면서 원망과 후회가 가득한 삶을 살았었다. 내가 실질적인 가장이었기에 아프다고 감정적으로 주저앉을 수 없었기에 더 열심히 일하면서 강하게 버티었다. 신달자님도 그랬을 거다.
뭐든 잘해보겠다고 참고 견디며 덤비는 과정에서 내 몸과 마음이 다치는 건 당연했을 것이다. 그런데, 주위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아프게 했으니, 주위 사람들에게 허리 굽히고 온문을 낮게 낮게 엎드리며 잘못했다고 고백하며 용서를 빈다는 거란다. 아! 천주교 신자이지! 내 탓이요, 내탓이로 소이다를 외치는... 팔순이 되고 보니 피가 얼 듯한 고독도, 눈알이 터질 듯한 슬픔도 없더란다. 이제 모든게 편안하니, 나와 함께 해 준 사람, 자연과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30년을 더 살면 나도 팔순이 된다. 나는 팔십년 인생을 어떻게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나도 신달자님처럼 겸손하게 조용히 엎드려 미안함과 감사함을 고백할 수 있을까? 사람이 있어서 이 세상의 사물과 풍경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었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삶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 보고 싶어 졌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게 인생이라고 하지 않은가? 아등바등 치열하게 살아온 30~40대를 넘기니 나도 조금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지금은 조금 더 편해졌으니, 앞으로는 더 마음을 내려 놓을 수 있겠지. <미치고, 흐느끼고 견디고>은 이 가을에 읽이 좋은 묵상집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