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0엔 보관가게
오야마 준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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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얼마간 멀미와 싸워가며 출퇴근길에 꿋꿋이 읽어내려갔다. 처음 네이버와 YES블로그 등에서 서평단을 모집하는 글을 봤을 때 부터, 내가 좋아하는 잔잔한 분위기의 책이 아닐까 굉장히 기대가 높았던 책이었는데...

 예상은 맞기도 했고, 한 편으로는 그렇지 않기도 했다.




 이렇게 말하는 저는 입구에 매달려 그저 한가로이 바람에 흔들흔들 휘날릴 뿐입니다. 그래도 영업 중인지 아닌지 손님에게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요. 그래요, 저는 포렴이에요. 주인의 파트너라고 자부합니다.

 첫 장을 읽자마자 굉장히 신선하게 느꼈던 점은 서술방식이었다. 보관가게의 영업을 알리며 흔들리는 포렴, 보관가게에 맡겨진 자전거, 가게 내의 장식장, 어릴 적 보관가게의 기적을 믿고 다시 찾아온 손님 나미, 마지막으로는 고양이 '사장님'까지. 각각의 장에서는 이들의 시점에서 이야기의 중심에 위치한 가게사장 도오루를 바라볼 수 있었다.


 어느 누구의 시점에서도 도오루의 모습은 한결같았다. 눈이 보이지 않지만 목소리 만으로 충분히 사람을 구별해 낼 수 있었고, 물건을 맡기고자 찾아오는 사람들의 일에 불필요하게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물건과 관련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때면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는 한다.

 "정말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책을 들자마자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는 문구이다. 비록 앞이 보이지는 않아도 도오루는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세상보다 더욱 많은 것을 보고 있음을, 책을 읽어나갈 수록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책을 보고 있는 나마저도 주변에 이런 가게가 있다면 들러서 속상한 마음을 전부 털어놓고 싶을 정도였으니, 가게를 한 번이라도 이용해본 사람들은 오죽하랴. 비록 처음엔 가게의 시스템을 이용해 100엔만으로 필요없는 물건을 처분하고자 하는 악의적인 행동도 제법 많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보관가게는 단골들을 중심으로 한적하고 편안한 가게로 점차 굳어져간다.


 그렇다고 책이 마냥 잔잔하지만은 않은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뒤의 이야기들과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도오루가 처음 보관가게를 시작하게 한 의문의 남자 이야기가 허무하게 끝나는가 싶더니, 뒤에서 우리는 이야기의 결말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인물과 기존 보관가게의 손님이 만나며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말도 없이 사라진 누군가의 이야기를 의외의 인물로부터 듣기도 한다. 

 이처럼 초반에 조금 두루뭉술, 허술하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하나하나 채워져 나가는 것을 볼 때의 그 충족감이란... 분명 가볍게 읽어내려갔던 처음과는 달리, 책장을 넘길수록 조금씩 책에 빨려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쥐 할아버지는 한참 후에야 입을 열더니, 비밀을 밝히기라도 하듯 점잔을 빼며 말했다.

 "나는 양이오."

 헐, 대박 사건! 쥐가 아니라 양이었어?  

 또 한가지, 원문의 표현이 도대체 어땠는지 알 방법이 없지만 번역이 참으로 재미있다. 집사(시츠지:しつじ)와 양(히츠지:ひつじ)의 일본어 발음 차이로 인한 오해가 생기는 장면인데, '대박 사건' 처럼 최근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는 말을 넣어 유쾌함을 가미해주는 효과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문득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이 떠올랐다. 실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해서 마치 이웃의 일마냥 친근감도 느껴지고, 그렇기 때문에 고민을 해결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다만 한 가지. 열린 결말보다는 확실하게 딱 떨어지는 결말을 좋아하다보니 마지막이 조금 아쉬웠다. 아니, 아쉬웠다기보단 궁금했다. 아주 오랜 세월을 그 자리에서 함께 살아온 도오루와 고양이 '사장님', 그리고 그 오랜 세월동안 그들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떠나보내지 못했던 비누 아가씨. 마지막 에필로그 이후, 그들에게는 도대체 어떠한 일이 생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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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 히어애프터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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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출퇴근길에 좋아하는 책을 읽는게 유일한 낙이 되었다. 그마저도 멀미때문에 오래 들여다보지 못하고, 애초에 정신을 차려보면 곯아 떨어져있기 일쑤지만...


 전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다음으로 손에 든 것이 에쿠니 가오리와 함께 일본의 여성 3대작가로 불리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 책이었다. 아마도 무거운 가방안에 조금이라도 가벼운 책을 가져가고 싶은 내 무의식이 선택한 결과이겠지만... 덕분에 두 작가의 문체나 분위기를 확연하게 비교할 수 있었다.

 스위트 히어애프터는 온천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던 도중, 갑작스런 전복사고로 남자친구와 자신의 내장 일부를 영원히 잃게 된 주인공 사요코의 이야기이다. 초반부터 주인공의 배에 쇠 막대기가 꽂히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책이라니, 책을 펴자마자 얼마나 흠칫했는지 모른다.
 사고로 즉사한 남자친구 요이치와는 달리, 사요코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헤매게 된다. 어릴 적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인도로 겨우 생명을 되찾게 된 그녀의 눈에는, 어째서인지 유령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고 후 사요코의 삶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그 어디에도 요이치의 흔적이 가득하지만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져다 준 공허함, 그토록 바랐던 요이치와의 아기가 생기지 않았다는 또다른 절망감.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 사이에서 사요코는 삶의 의지, '얼'을 잃어버리고 만다.

 160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이야기였기에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진행이 된다. 이렇게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사요코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단골 바의 주인인 신키치, 사요코가 우연히 보게 된 유령의 아들이자 그녀의 소중한 친구가 된 아타루, 그리고 먼저 떠나버린 아들 대신 사요코를 딸처럼 아껴주는 요이치의 부모님까지.

이제 됐어요, 혼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갈래요.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요. 지금의 자신에 만족해요. 어떻게든 될 거고, 이렇게 사는 기분도 나쁘지 않아요. 인생이란 안 그래도 애매모호한 일이 많고 명확하지 않은 것들로 가득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능한 한 그런 부분을 줄여 가고 싶어요.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챙겨 볼까 하는 욕심은 이제 넌더리가 나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하루라도 더 살 수 있는 것, 그것이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한 가지 소망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모두의 보살핌 덕분에 사요코는 조금씩 공허함과 절망에서 벗어나고, 삶의 의지를 찾아간다. 그리고 주어진 현재에 만족하는 법을 알아간다. 스위트 히어애프터는 그 모든 과정을 따라가던 나 마저도 치유가 되는, 그런 책이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접했던 적이 없어서 이 한권으로 작가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엔 부족하지만, 작가의 표현력에 여러 번 감탄했다.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는 사건을 잔잔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서술해 나가는 전개 방식은 에쿠니 가오리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호흡을 적절하게 끊어가며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필력, 그리고 자꾸만 시선이 가는 예쁜 표현까지.
 왜 사람들이 요시모토 바나나 라는 작가에 열광하고, 왜 일본의 여성 3대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었는지 이 한 권 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갓 대학에 입학했을 무렵이었던가. 혼자서 일본어를 더 공부하고 싶어서 가볍게 읽을만한 일본 원서를 추천받았을 때, 모든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추천해 주었던 책이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이었다. 당시에는 고민만 하다 읽지 못했는데, 이렇게 작가의 책을 접하고 나니 왜들 그렇게 추천해 주었는지 알것도 같았다. 어려운 단어 하나 없이 이렇게 편안하고 예쁜 글을 쓸 수 있으니.
 조만간 요시모토 바나나의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구절을 마지막으로 이번 리뷰를 마친다.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세상이 되었지만, 인간이 살아 있음은 한없는 자비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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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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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블로그에 독서 리뷰를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읽고싶은 목록을 쭉 적어내려갔던 포스팅에서 후배에게 이 책을 추천받았다. 그 전부터 에쿠니 가오리라는 작가의 이름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음에도 왜 이 작가의 책은 한번도 접하지 못했는지 모를 일이다.

 2014년도에 추천받았음에도 1년이 넘는동안 계속 다른 책들에 우선순위를 두느라 읽지를 못했다. 아마 책 두께 자체가 얇다보니 굳이 지금 읽지 않아도 언제든지 읽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 인도어(indoor)적인 내 성향과 전혀 맞지 않는 일을 하며 쌓인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라 힐링이 필요했다. 그 때 눈에 들어온게 바로 이 반짝반짝 빛나는. 책 제목만 봐도 잔잔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느낌이라 저절로 손에 들게 되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 독서취향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책이기는 했다. 참 이상하게도 나는 영화는 '심야식당'같은 잔잔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주제에 책은 표현이 서정적이면서도 동시에 큰 반전을 가져다 주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일본 작가가 츠지무라 미즈키인것만 봐도 말 다했지.


 하지만 내 취향과는 별개로 순수하게 감탄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알코올 중독인 아내와 호모 남편, 그리고 남편의 남자애인. 듣기만 해도 헉 소리가 나오는 이러한 소재들을 가지고 에쿠니 가오리는 잔잔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여느 부부와 같은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닌 만큼 초반의 쇼코와 무츠기는 굉장히 감정충돌이 잦은 편이었다. 특히 언제 터질지 모르는 쇼코의 위태위태한 감정이 보고있는 나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시점이 교차하며 진행되는 이야기를 차례차례 따라가는 동안, 특별한 계기 없이도 알 수 있었다. 형태는 다를지언정 두 사람 사이에도 서로를 향한 애정이 있다는 것을.

 쇼코와 무츠기의 관계는 다른 사람들이 규정해놓은 프레임 안에서는 굉장히 비상식적이고 이상한 것이다. 하지만 그랬기에 오히려 그 한정적인 프레임을 뛰어넘어 남들은 해낼 수 없는 영역에 도달한 것은 아닐까. 남자와 여자라는 성별의 격차를 뛰어넘어 온전히 플라토닉적인 사랑을 완성하고, '사람'과 그 사람의 모든 것까지 포용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이 책에도 나를 깜짝 놀라게 했던 반전적인 요소가 하나 있었다. 남편 무츠기의 생일날, 깜짝 선물이라며 준비한 쇼코의 선물이 정말이지 상상 이상이었더랬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관계를 쌓아가던 두 사람을 중심으로 서서히 고조되어오던 긴장감과 위기가, 설마 그런 식으로 종말을 맞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처음에는 참 어안이벙벙했다. 내가 예상한 방향과는 전혀 다른 결말에, 작가의 의도를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책을 덮고 천천히 생각을 해보면 책 속에서 숨쉬며 살아가는 두 사람과 곤의 모습에서, 책 중간중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예뻤던 표현들까지. 책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책의 제목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정말 모처럼만에 마음이 평온해지는 기분이었다.



p.s/ 하지만 내일은 왜 월요일인걸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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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6 - 시오리코 씨와 운명의 수레바퀴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부 6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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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6권부터는 지금까지 이상의 파란이 기다리고 있을 모양이다. 일본에서 올해 12월 무렵에 발매 예정이라니, 내년 여름쯤에는 한국에서도 정발본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지난 비블리아 고서당 5권까지의 리뷰에서 예측했던 6권 정발시기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분명 한국의 느린 번역속도에 불평했던 것 같은데,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느새 6권이 나와있었다. 부랴부랴 사놓고 정작 상황이 따라주지 않아서 읽은건 굉장히 최근의 일이지만...ㅠㅠ



 한 권에서 다양한 작가의 다양한 책을 다루던 5권까지와는 달리, 6권의 전체 내용은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으로 길게 이어진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일종의 에피소드 방식처럼 보이던 기존과는 다른 전개를 보니, 슬슬 비블리아 고서당도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듯한 느낌이다.

 6권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을 이야기하자면 고우라와 시오리코의 관계를 빼놓을 수가 없다. "아 그래서 대체 언제 사귈건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답답했던 옛날과 비교하면 애정표현도 나름...나름 늘어났고... 결과적으로 정신없는 사건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서로 상대방을 생각하고 있었고, 그걸 표현할 수 있는 사이로 발전한 것만으로도 어디인가 싶다.


 하지만 6권은 그런 두 사람을 축복하거나 기쁘게 바라볼 틈조차 주지 않는다. 첫 프롤로그부터 고우라가 무언가의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는 장면으로 시작하더니, 본편에서는 이전에 불태워버리는 척 몰래 숨겨놓았던 시오리코의 '만년' 초판본의 행방에 대한 쪽지를 받는다. 이 만년 사건을 시작으로 한 6권은, 숨조차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이 흐른다.

 또 다른 '만년'의 존재, 그 책을 둘러싼 사람들의 추억과, 그 속에서 밝혀지는 전혀 예기치 못한 연결고리까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마지막 반전.

 최근 퇴근이 늦어져서 책을 읽다가도 깜빡 잠이 들기 일쑤인데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에는 피로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스릴 넘치는 반전이 이번에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5권까지의 경험을 통해 나 나름대로도 이것저것 추리해보려고 했지만,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사건이 해결되어 얼떨떨할 정도였다.

 동시에 작가의 역량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그냥 평범하게 흘려보냈던 대사나 인물들의 행동이 전부 마지막 반전을 위해 계획된 것이었다니. 실제로 취미생활을 통해 글을 써보기도 했기 때문에, 그런것을 아무런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나가는 작가의 능력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이제 또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이 책의 가장 미스테리한 존재인 시오리코의 어머니, 지에코와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며 조만간 완결이 날 것 같은데... 7권은 그냥 정식 발매를 기다리지 말고 일본 원서를 구매해서 읽는게 훨씬 나을지도 모르겠다.

 책 내용과 전개는 정말 흠 잡을 데 없었지만, 번역과 편집 문제때문에 이해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ㅠㅠ 5권까지 읽은 뒤 감상문을 쓸 때, 마지막까지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서술 트릭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알고보니 인물 이름을 오역했기 때문이란 걸 들었을 때 얼마나 허무했던지.

 그런데 그런 일이 또 벌어졌다.

 소설이라는게 워낙 담고 있는 텍스트의 숫자가 많다보니 완벽한 번역을 하는 것이 무척 힘든 일이라는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인물 이름과 같은 대명사를 오역하는건 조금 아니지 않은가ㅠㅠ 게다가 똑같은 문단이 중간에 하나 더 섞여들어가서 얘 왜이러지?? 왜 했던 대사를 또하지?? 라며 당황하는 바람에 그동안 쭉 읽어오던 흐름도 끊기고...집중도 안되고...

 안되겠다 싶어서 항의를 하려고 들어간 블로그에서 잘못 번역되거나 필요 이상으로 생략된 부분이 내가 눈치챈 것 이상으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그냥 허무했다. 오랫동안 학수고대하며 기다려왔던 작품인데, 한두번도 아니고 곳곳에서 번역의 허술함이 눈에 띈다니ㅠㅠ...


 많이 좋아하고 애정이 깊은 작품인 만큼, 다음 7권 번역에는 조금 더 신경을 써주셨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이런 불편은 사소하게 느껴질 정도로 다음편이 굉장히 기대가 되는 작품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책을 주제로 하는 작품인 만큼 나도 고우라의 입장이 되어 다양한 책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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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계량스푼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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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의 순수함이란 때론 가장 무서운 것이다, 라는 것을 가슴깊이 깨닫게 해준 책이 아닐까.


 이 책은 초등학교 4학년이라는 아주 어리고 순수한, 그러나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초등학교 2학년 시절, 두려움 때문에 피아노대회 무대에 나서지 않으려는 소꿉친구 후미를 도우려 하던 도중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덕분에 후미는 무사히 피아노 대회를 마칠 수 있게 되지만, 주인공의 어머니는 주인공의 능력을 '무서운 능력'이라 칭하며 다시는 사용하지 않아줄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 학교에서 키우던 토끼가 잔인하게 잘려나가고 학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하필이면 그 사건을 처음 발견한 것은 주인공의 친구 후미. 많은 독서 덕분에 아는 것이 많고, 항상 모두에게 친절하고 붙임성이 좋던 후미는 그 사건을 계기로 PTSD 증상을 보이며 완전히 마음을 닫아버린다. 주변 사람들의 어떠한 말에도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맞추지 않는 후미의 눈은 아무것도 비추지 않은 채 공허하게 비어있다.

 주인공은 소중한 후미를 이렇게 만든 토끼 살해사건의 범인, 이치카와 유타에게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여 벌을 주고자 결심한다. 그러던 중 주인공이 능력을 사용하는 것을 우려한 어머니를 통해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먼 친척 아키야마 교수를 만나게 되고, 교수와 함께 이야기를 하며 이치카와 유타에게 어떤 벌을 줄지 조금씩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 책의 주된 내용이었다.


 조건게임제시능력. 말 그대로 ~하지 않으면 ~ 하게 될 것이다. 라는 내용을 통해 능력을 사용한 상대가 자신의 말에 그대로 따르게 하거나, 그러지 못할 경우 벌을 받게 하는 아주 간단한 이론이다. 물론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야 하고, 한번 사용한 상대에게는 다시 사용하지 못하는 등 제약조건도 많다. 책의 대부분은 이 게임의 조건을 설명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솔직하게 말하자면 책의 중반부에는 그리 쉽게 몰입할 수가 없었다.

― 분명 이전에 읽었던 작가의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에서도 이런 비슷한 감상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쯤되면 작가의 특성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


 하지만 아키야마 교수와의 대화에서 굉장히 눈에 띄는 것은 주인공이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이었다. 어른이 되어 다양한 일을 겪어온 아키야마 교수는, 주인공이 이치카와 유타를 벌함으로써 벌어질 일들에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아이이기에 책임감을 느끼고, 고뇌하고, 마음 한 구석에서 자신을 콕콕 찔러오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이 때 까지만 해도 몰랐었지. 아이의 이런 순수함을 믿다가 결말 부분에서 거하게 뒤통수를 맞을거라곤.

 

 아무튼 아키야마 교수의 앞에서는 ―도무지 아이의 생각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이 고민하고, 학교생활을 하면서는 후미에 대한 미안한 감정과 걱정으로 감정이 북받혀 오르는 제 나이 또래의 모습을 보이는 주인공을 보면서 나 또한 고민을 해보지 않을수가 없었다.

 내가 주인공이라면 이치카와 유타에게 어떤 벌을 주고자 했을까?


 참 어려운 문제였다. 그도 그럴것이, 이치카와 유타의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토끼를 그렇게 만든 것에 아무런 죄책감도 없었고, 그 무엇에도 반성을 하는 기색이 없었다. 가장 두려워하는 것으로 벌을 주고 싶었지만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거기에 아키야마 교수는 '돈'이라는 힌트를 주고, 이 힌트는 책의 결말에 정말 막대한...아주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정말 다시 생각해도 소름이 끼칠 수 밖에 없는 반전...

 비록 지금까지 읽은 것은 두 권 뿐이지만, 초반에 질질 끌리는 듯한 느낌이 있음에도 츠지미야 미즈키의 책을 도무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런 반전들 때문일 것이다. 한 번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에서 당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굳게 먹고 나름대로 추측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작가는 완전히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나를 놀라게 한다. 


 책 속에는 원래는 토끼세공이 달린 세 개의 계량스푼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원래는 후미의 것이었던 이 계량스푼 중 하나를, 후미는 주인공에게 선물로 준다. 사실 후미의 토끼사랑을 알 수 있는 토끼모양의 세공 말고는 특별히 하는 역할이 없었기에 이 책의 제목이 어째서 '나의 계량스푼'인지 궁금했는데...

 책을 읽고 난 뒤로는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사건 이후로 주인공의 손에 모두 들어온 세 개의 계량스푼은, 주인공에게는 부적이 아니었을까. 자신 때문에 후미가 마음을 닫아버렸다는 죄책감과, 반드시 복수를 해주고 말겠다는 자신의 각오를 모두 담은. 아키야마교수와의 상담 도중 수도 없이 느꼈던 공포에도 불구하고 결심을 하게 해주었던 마지막 방어선 같은. 그런 느낌의 부적 말이다.


후미의 손가가 태양빛을 받아 가느다란 무지갯빛을 띠며 빛났다. 눈부신 빛이 걸을 때마다 조금씩 변화했다. 짤랑짤랑 소리를 내면서, 아키야마가 건넨 계량스푼이 그 손 안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문장 자체도 굉장히 예뻤지만, 나는 마지막 장면의 이 부분이 세상을 외면하던 후미의 마음이 조금씩 빛을 다시 찾아가는 것을 묘사한듯한 기분이 들었다. 주인공이 모든것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었던 이 계량스푼이, 이번에는 이것을 다시 손에 쥔 후미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기를.



 내 책 읽는 순서가 엉망징창이라 아직까지는 볼 수 없었지만, 이 책은 츠지미야 미즈키의 츠나구, 얼음고래 등 다른 작품의 스핀오프 격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다른 작품속에서 활약하던 주인공들, 심지어는 주인공의 소꿉친구 후미조차도 소설속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고.

 이 작가에게 이렇게 매력을 느끼고 단단히 꼬리를 잡힌 이상, 다음 재미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으며 이 책 속의 인물들의 과거 이야기를 하나하나 찾아가는 것에서 찾아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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