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 히어애프터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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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출퇴근길에 좋아하는 책을 읽는게 유일한 낙이 되었다. 그마저도 멀미때문에 오래 들여다보지 못하고, 애초에 정신을 차려보면 곯아 떨어져있기 일쑤지만...


 전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다음으로 손에 든 것이 에쿠니 가오리와 함께 일본의 여성 3대작가로 불리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 책이었다. 아마도 무거운 가방안에 조금이라도 가벼운 책을 가져가고 싶은 내 무의식이 선택한 결과이겠지만... 덕분에 두 작가의 문체나 분위기를 확연하게 비교할 수 있었다.

 스위트 히어애프터는 온천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던 도중, 갑작스런 전복사고로 남자친구와 자신의 내장 일부를 영원히 잃게 된 주인공 사요코의 이야기이다. 초반부터 주인공의 배에 쇠 막대기가 꽂히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책이라니, 책을 펴자마자 얼마나 흠칫했는지 모른다.
 사고로 즉사한 남자친구 요이치와는 달리, 사요코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헤매게 된다. 어릴 적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인도로 겨우 생명을 되찾게 된 그녀의 눈에는, 어째서인지 유령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고 후 사요코의 삶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그 어디에도 요이치의 흔적이 가득하지만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져다 준 공허함, 그토록 바랐던 요이치와의 아기가 생기지 않았다는 또다른 절망감.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 사이에서 사요코는 삶의 의지, '얼'을 잃어버리고 만다.

 160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이야기였기에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진행이 된다. 이렇게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사요코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단골 바의 주인인 신키치, 사요코가 우연히 보게 된 유령의 아들이자 그녀의 소중한 친구가 된 아타루, 그리고 먼저 떠나버린 아들 대신 사요코를 딸처럼 아껴주는 요이치의 부모님까지.

이제 됐어요, 혼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갈래요.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요. 지금의 자신에 만족해요. 어떻게든 될 거고, 이렇게 사는 기분도 나쁘지 않아요. 인생이란 안 그래도 애매모호한 일이 많고 명확하지 않은 것들로 가득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능한 한 그런 부분을 줄여 가고 싶어요.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챙겨 볼까 하는 욕심은 이제 넌더리가 나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하루라도 더 살 수 있는 것, 그것이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한 가지 소망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모두의 보살핌 덕분에 사요코는 조금씩 공허함과 절망에서 벗어나고, 삶의 의지를 찾아간다. 그리고 주어진 현재에 만족하는 법을 알아간다. 스위트 히어애프터는 그 모든 과정을 따라가던 나 마저도 치유가 되는, 그런 책이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접했던 적이 없어서 이 한권으로 작가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엔 부족하지만, 작가의 표현력에 여러 번 감탄했다.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는 사건을 잔잔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서술해 나가는 전개 방식은 에쿠니 가오리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호흡을 적절하게 끊어가며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필력, 그리고 자꾸만 시선이 가는 예쁜 표현까지.
 왜 사람들이 요시모토 바나나 라는 작가에 열광하고, 왜 일본의 여성 3대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었는지 이 한 권 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갓 대학에 입학했을 무렵이었던가. 혼자서 일본어를 더 공부하고 싶어서 가볍게 읽을만한 일본 원서를 추천받았을 때, 모든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추천해 주었던 책이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이었다. 당시에는 고민만 하다 읽지 못했는데, 이렇게 작가의 책을 접하고 나니 왜들 그렇게 추천해 주었는지 알것도 같았다. 어려운 단어 하나 없이 이렇게 편안하고 예쁜 글을 쓸 수 있으니.
 조만간 요시모토 바나나의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구절을 마지막으로 이번 리뷰를 마친다.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세상이 되었지만, 인간이 살아 있음은 한없는 자비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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