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 간 의사 - 영화관에서 찾은 의학의 색다른 발견
유수연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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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영화를 볼 때 영상과 줄거리, 주인공들의 멋짐 외의 부수적인 것에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보는 편이에요. 의학이나 법률 같은 전문적인 분야를 다루는 영화는 직접적 언급이나 묘사가 되어 이슈가 되지 않는 이상 숨어있는 의미를 파고들어 감상하진 않아요. 대부분 그렇지 않나요? 😅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의사라는 직업 특성상, 영화에서 질환이나 질병이 나오면 조금 더 집중해 볼 뿐만 아니라 굳이 질병이 아니더라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면이나 상황을 보고 의학 지식과 관련지어 상상의 나래를 펼쳐 새로운 해석을 도출해 영화를 좀 더 확장하여 감상하고 즐긴다고 해요.

저자는 그러한 독특한 시선을 이 책을 통해 독자들과 나누고자 하고 있어요.

이 책에는 질병을 다루고 있는 영화 외에도 의학 소재 영화라고 특정 지어질 수 없는 수많은 영화들이 작가의 색다른 시각으로 소개되고 있어요.



《헤어질 결심》은 제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선뜻 보기가 망설여지는 영화였는데, 저자 역시 여러 편견과 불안으로 남들보다 늦게 이 영화를 봤다고 해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영화를 보기 전 불안은 기우에 불과했던 아주 놀랍고도 흥미로운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 영화가 단순한 범죄 스릴러 로맨스 영화가 아닌, 주인공 장해준의 불면증에 초점을 맞추어 '운디네의 저주'라고도 불리는 '호흡 중추 자동능 장애'를 재해석한 의학적 작품이라는 해석을 내놓았어요.


'운디네의 저주'는 16세기 활동했던 연금술사 파라켈수스에 의해 창조된 존재인 물의 정령 '운디네'에서 유래한 증상입니다. 이는 '잠들었을 때 숨쉬기 힘든 상태'를 말하며, 심하면 깨어 있을 때도 숨쉬기 어려워한다고 해요. 원인은 다리 뇌와 숨 뇌에 위치한 호흡 중추에 이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해요.

'운디네의 저주'가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프랑스 작가 장 지로두의 <운디네>라는 연극을 통해서인데, 이 연극 속에서 운디네는 자신을 배신한 연인 한스에게 저주를 내렸고 이후 운디네는 자신을 배신한 남자에게 저주를 내리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바다 건너 중국에서 온 여주인공 송서래를 운디네와 같은 존재로 보았고, 남주 장해준은 그런 존재의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녀를 잃고 불면의 저주를 얻어 어떠한 의학적 도움도 소용없는, 영원한 불면의 고통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존재가 된다고 보았어요.



다크 판타지 괴수물인 줄만 알았던 《진격의 거인》 또한 저자는 의학적 시선에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어요. 저자는 주인공 '에렌 예거'가 거인에게 잡아먹히면서 거인 능력이 발현되는 부분에 흥미를 가지고 다음과 같은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바로 같은 민족 안에서 '척수액' 섭취를 통해 거인으로 변신하고 힘을 이어받는다는 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슈케나지 유대인'에게서 나타났던 유전병인 진행성 퇴행성 뇌질환 '프리온병'의 전달과 비슷하다는 견해입니다.


그런데 역사상 유전이 아닌 '식인'으로 '프리온병'이 발병한 적이 있는데, 바로 파푸아뉴기니 섬에서 보고되었던 '쿠루병'이라고 합니다. 이에 팁을 얻은 저자는 《진격의 거인》의 작가가 작품 내의 거인 능력 전승 방법을 사체를 먹었던 '쿠루병'에 대한 내용을 참고해서 설정하지 않았을까 하는 견해 또한 내놓고 있어요.



제가 정말 재미있게 봤었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도 이 책에 소개되고 있어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며 단순히 '조로병'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역으로 만든 젊어지는 가상의 병이 주인공의 평범하지 못한 인생과 안타까운 사랑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사용되었다라고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저자는 이 영화를 보며 현대의 의료진이 현실 속에서 벤자민을 만난다면 '시간이 거꾸로 가는 신비한 사람'이라는 결론보다는 적절한 진단명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고, 그리하여 초기에는 '조로병' 진단을 내리고 노인기에 어린아이의 외모로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소아 치매'의 진단과 검사가 시행되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말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조로증과 소아 치매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답니다.



이 외에도 작가는 《스틸 앨리스》같은 질병과 관련된 영화나 《듄》, 《기생충》, 《300》, 《탑건:매버릭》, 《토르》 등과 같은 의학과는 전혀 연관이 없거나 의학이 부각되어 나타나지 않은 영화들을 예리하고 날카로운 의사의 시선으로 의학과 흥미롭게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어요.

그 설명은 전문적인 지식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가십지를 읽듯이 쉽고 재미있게 풀이되어 있어 읽는 내내 '오호~!'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순식간에 읽어 내려갈 수 있었어요.

물론 각 영화에 대한 설명이 10페이지 내외 정도이므로 잠깐의 시간이 날 때 한 편씩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어 무척 좋았답니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에 수록된 영화 포스터나 참고 사진이 컬러였다면 훨씬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에요.


이 책에 실린 영화 중에 아직 보지 못한 작품들이 절반 정도 되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 영화들을 이 책의 저자의 시선으로 감상해 보려고 합니다. 분명 제가 여태껏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감상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거라 확신해요.

여러분도 이 책을 읽고 의학적 관점에서 영화의 숨겨져있거나 드러나있는 이야기를 감상해 보는 건 어떠세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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