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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 올드 - 50대 아들과 80대 노부모의 어쩌다 동거 이야기
홍승우 지음 / 트로이목마 / 2024년 5월
평점 :
예전 <한겨레 신문>에서 연재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저 역시 너무나 좋아했고 여전히 좋아하는, 가족만화 『비빔툰』 홍승우 작가님의 만화 『올드(OLD)』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비빔툰』은 주인공 '정보통'이 '생활미'와의 신혼 첫날밤을 시작으로 임신과 출산, 육아를 거치며 진정한 가족을 이루고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예요. 반면 『올드』는 작가님 본인의 이야기로 50대의 나이에 80대의 부모님과 같이 생활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과 느낀 점들을 진솔하면서도 따뜻하고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는 만화랍니다.
작가님은 자녀들이 해외 유학을 떠나게 되자 중년의 나이에 갑작스레 기러기 아빠로 혼자가 되면서 잠깐의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시가 나는 법이죠. 사람 없는 휑한 집에서 적적함을 느끼며 혼자 잘 지낼 수 있을지 고민이 된 작가님은 대천에 사시는 부모님을 찾아가 같이 살자고 말씀드려 봅니다. 이에 항상 속전속결이시던 부모님이 다음날 바로 작가님 집으로 이사를 오며 50대 아들과 80대 노부모의 동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단순히 부모와 자식이 오랜만에 다시 같이 지내며 서로 맞춰나가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작가님의 아버지께선 시력과 청력이 무척 안 좋으신데다 치매를 앓고 계시고, 설상가상 오랜 기간 앓아오신 당뇨병도 있으셨기에 항상 주의 깊은 케어가 필요하신 상태였던 거예요.
그러한 부모님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잘 늙을 수 있는지, 그리고 갈 때 가더라도 어떻게 하면 잘 갈 수 있는지 등을 고민하는 작가님의 이야기를 보며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만화는 청력이 좋지 않은 아버지와 대화하기 위해 큰소리를 내다보니 그것이 버릇이 된 이야기, 아버지의 당 검사를 처음 해보던 날 서툰 나머지 아버지의 손끝을 벌집으로 만든 이야기, 어머니의 반복되는 이야기 레퍼토리는 전부 외우고 있어도 경청하는 일상의 이야기 등 부모님에 대한 배려와 이해로 다시 같이 사는 가족이 되어 가는 과정을 따뜻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의 말씀엔 웬만하면 무조건 따르고 이견이 없을 것 같던 작가님도 정치 이야기를 할 때는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며 어머니와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해요.
또 항상 든든할 것만 같던 어머니가 큰 실수를 저질러 막둥이인 작가님이 어머니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드려야만 할 때도 있었답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적응하며 급기야는 서로의 냄새에까지 적응한 행복한 모습이란…. 😂
이 만화는 작가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자꾸만 작가님을 기억에서 지워가는 등 치매를 앓으시는 아버지 모습이 많이 나오지만 병이나 죽음에 관해서 우울하지 않게 접근하고 있어요.
이 책이 질병과 죽음을 무겁지 않게 다룬다는 것은 저승사자를 쫓아내는 어머니의 모습 등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어요.
그렇게 심각하지 않게만 보다가 갑자기 정신없으신 아버지가 작가님에게 뜬금없이 벽 높은 곳에 못을 박아 달라고 말한 다음의 장면을 보고는 눈물을 왈칵 쏟을 수밖에 없었어요. 정말 작가님처럼 '아… 아버지!'하는 말이 절로 떠오르더군요. 😢 그리고 실제 작가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겠지만 말을 이루지 못했을 수많은 감정들이 전달되어 너무나 가슴이 아팠어요.
그렇게 책은 부모님과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뒷부분에선 유학 갔다 훌쩍 커서 돌아온 자식들과의 관계 변화나 자식들을 대하는 심정에 대해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식 겉 낳지 속은 못 낳는다'라는 말처럼 부모의 마음은 알아주지 않고 부모의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식을 바라보며 사리를 뱉어내는 작가님 모습에 매일매일의 저의 모습이 겹쳐 보여 너무나 공감이 갔어요.
『올드』의 이야기는 절대 과하거나 억지스럽지 않고, 말하고자 하는 바 또한 정도를 잘 지키기에 누구에게나 공감과 자연스럽고 건강한 웃음을 이끌어내는 것 같아요. 그것은 결코 특별한 경험이 아닌, 누구나 살아가면서 해봤을 평범한 경험들에서 비롯되기에 그런 것 같아요.
"C'est la vie."
작가님은 이 만화를 통해 그러한 일상과 경험들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혹은 인생에 끼치는 의미를 정리하여 어떻게 하면 우리의 인생이 좀 더 따뜻하고 밝고 알찰 수 있는지 알려주고 있어요. 그렇기에 꾸며내지 않은 일상의 이야기를 보며 지친 마음을 보듬으며 힐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올드』는 공감 어린 웃음을 많이 주었지만 저에 대해 돌아보며 깨닫고 반성할 기회도 주었어요.
저는 너무나 당연히 옆에 계시기에 하루가 다르게 약해지고 늙어가시는 부모님을 간과하고 지내고 있더군요. 저도 부모님처럼 저희 아이들에게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는데 왜 저는 부모님께는 참지 못했었던 걸까요? 또 왜 저를 향한 걱정의 말씀을 간섭이라 생각하고 짜증을 냈던 걸까요?
그런 일련의 일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후회가 잔뜩 밀려오더군요.
『올드』는 앞으로 이러한 후회가 없으려면 나이 든 부모님과 어떻게 지내야 하고 다 커버린 자식들과는 어떻게 관계를 형성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합니다. 그리고 작가님이 찾은 길을 보여주며 일종의 힌트와 따뜻한 위로와 위안을 건네고 있어요.
이 책은 단순한 만화가 아닌 살아가야 할 평범한 날들을 위한 이정표 같은 책이에요.
모두가 이 책을 읽고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와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