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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게이하트 ㅣ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2
윌라 캐더 지음, 임슬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평점 :
플랫강 유역에 있는 작은 마을 해버퍼드의 루시 게이하트는 마을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자아이였다. 그녀의 외모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을 쏙 빼닮은 경쾌하고 거침없는 걸음걸이, 그녀만이 뿜어내는 독특한 명랑과 생명을 발하는 광채는 그녀를 더욱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녀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 심지어는 마을에서 가장 근엄하다는 램지 부인이나 마을에서 이름난 부잣집 안주인 고든 부인조차 루시를 좋아하고 그녀를 특별하게 여기고 대했다.
게이하트 씨는 루시를 귀히 여겨 언니 폴린과는 달리 응석받이로 키웠다. 루시가 어느 정도 자랐을 때 폴린은 게이하트 씨에게 루시도 자신을 도와 집안일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음악을 좋아하던 게이하트 씨는 피아노 앞이 루시의 자리라며 폴린의 발언을 묵살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를 졸업한 루시는 게이하트 씨의 뜻에 따라 시카고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루시를 가르치게 된 파울 아우어바흐 교수는 루시를 이뻐했고, 그녀에게 자신의 오랜 친구인 클레멘트 서배스천의 성악 공연에 꼭 가볼 것을 권유했다. 돈이 적고 원하는 것이 많았던 루시는 그의 공연에 가지 않았지만, 아우어바흐 교수가 루시에게 두 번째 공연 표를 끊어주며 루시는 자신의 인생을 바꾸게 될 서배스천을 마주하게 된다.
한편 같은 마을 출신에 루시보다 여덟 살 많은 부잣집 청년 해리 고든은 어렸을 때 루시를 스케이트장에서 처음 본 이후로 그녀를 마음에 쭉 담아두고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와는 달리 그녀를 배려하며 친하게 지낸다. 결혼할 때가 되자 해리는 훌륭한 신붓감들을 많이 만나봤음에도 루시같이 자신에게 짜릿함을 선사하는 여자는 없다고 생각하여 더 이상의 고민은 접어두고 루시를 위한 찬란한 미래를 계획하며 루시에게 청혼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하여 봄이 되어 오페라 주간에 맞춰 시카고를 방문한 해리는 일주일 동안 루시와 오페라를 보러 다니며 시간을 같이 보낸다. 그리고 마지막 날 밤 근사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며 루시에게 청혼을 하지만 루시는 상처 주는 말로 해리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청혼을 매몰차게 거절하는데….
일단 주인공 루시에 대한 약간의 개인적인 분노와는 상관없이 『루시 게이하트』는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가며 푹 빠져들어 읽게 하는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이렇게나 가독성이 뛰어나고 흥미진진한 고전을 접한 게 얼마 만인지. 고전이 고리타분하고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루시 게이하트』를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루시는 타고난 예쁜 외모에 약간의 재능을 가진, 그래서 자기애가 강하고 오만하고 철이 없는 인물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친절에는 감사할 줄 모르고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고, 아우어바흐 교수의 조언처럼 인생에 득이 될 조언들은 고리타분하다고 무시하고 마주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해리나 폴린 등 타인에게 상처 주는 것은 신경 쓰지 않으면서 도리어 자신이 그들에게 상처받은 피해자인 것처럼 행동해서 읽는 동안 화가 났다.
나는 루시와 서배스천의 사랑이 이해되지도 아름답다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아무리 절절하더라도 서배스천에게는 시카고의 날씨 때문에 떨어져 살고 있는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을 소설로만 봐야겠지만 그래도 불륜은 싫다.
읽는 내내 그저 해리가 안타까웠던 사람은 나뿐이었을까? 그 생각은 3부에 가서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아파한 해리의 모습이 드러나며 더 확고해졌다. 그냥 루시에게 얽매이지 말고 자신의 결정대로 행복하게 잘 살기나 하지.
총 3부로 되어 있는 이 소설은 짧지만 강렬하고 절제되어 있지만 절절한 3부 때문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마지막 부분에 묘사된 시리도록 차가운 겨울의 햇살은 남은 자가 인내하고 살아내야 될 외로운 여생을 나타내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팠다.
고전을 좋아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소설을 읽기 원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사랑과 인생의 타이밍을 생각하며 『루시 게이하트』를 읽어보길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