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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양들의 축연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엘릭시르 / 2024년 3월
평점 :
<집안에 변고가 생겨서>
고아인 무라사토 유히는 다섯 살 무렵 가미쿠탄 지방의 권세가인 단잔 가문으로 들어가 자신보다 두 살 많은 후키코의 시중드는 일을 맡는다. 유히는 시중 외에도 후키코의 게임이나 대련 상대가 되며 후키코에 대한 동경의 마음을 키워나갔다.
중학생이 된 후키코는 유히에게 명령해 비밀 책장을 만들었는데, 거기는 가문의 어른들이 인정하지 않을 법한 책들로 채워졌다. 유히는 호기심에 비밀 책장에 들어 있는 책들을 읽어보았고, 급기야는 후키코의 비밀을 엿본다라는 생각에 짜릿함까지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키코에게 발각되었지만 후키코는 유히를 벌하지 않고 오히려 비밀 책장 속의 책들을 빌려주며 감상을 나누기도 했다.
그 무렵 단잔 가문의 후계자였던 후키코의 터울 많은 오라버니 소타는 행실이 좋지 못해 집안에서 쫓겨난다.
세월이 지나 대학에 입학한 후키코는 '바벨의 모임'이라는 독서 모임에 가입해 활동한다. 그녀는 여름방학 동안 모임에서 개최하는 다테누마에서의 1박 독서 모임을 무척 고대했다.
그러나 모임 이틀 전, 집에서 쫓겨났던 소타가 저택을 습격해 많은 고용인들을 죽이는 만행을 저지른다. 하지만 후키코와 유히의 협공으로 소타는 오른손이 잘린 채 도망갔고, 가주인 할아버지 단잔 인요는 그날부로 소타가 죽었다고 공표했다. 그러한 사정으로 후키코는 결국 독서 모임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일 년 후, 소타의 일주기를 준비하던 저택에서 후키코의 고모 마미코가 오른손이 잘려 나간 채 주검으로 발견되는데….
<북관의 죄인>
어머니의 죽음으로 자신이 센닌바라의 권세가 무쓰나 가문의 전 당주 고이치로의 사생아임을 알게 된 우치나 아마리는 무쓰나 저택을 찾는다. 현 당주 고지는 아마리에게 위로금을 제시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거절하고 그곳 별관인 북관에서 선객을 돌보며 살기로 한다. 선객은 모종의 이유로 당주가 되지 못한 무쓰나 가문의 정통 후계자이자 아마리의 이복 오빠인 소타로 였고, 아마리는 그의 하녀이자 감시자가 되었다.
북관은 출입구가 항상 자물쇠로 채워져 있고 모든 창문은 철창으로 되어 있는 일종의 감옥 같은 곳이었다. 철저히 외부와 단절 당한 채 북관에서 하녀로 일한 지 3개월, 고지는 아마리가 행선지를 밝히는 조건으로 외출을 허용했다. 그 사실을 안 소타로는 아마리에게 별난 물건들의 대리 구매를 부탁함과 동시에 북관의 비밀과 소타로가 북관에 갇히게 된 이유를 이야기하는데….
<산장비문>
야시마 모리코는 야가키우치의 깊은 산속에 위치한 무역상 다쓰노 가몬의 별장 '비계관'의 별장지기로, 고용주가 언제 방문해도 불편해하지 않도록 별장을 관리하는데 항상 노력과 정성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녀가 별장에 고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쓰노의 아내가 죽었고, 슬픔에 젖은 다쓰노는 아내를 위해 지은 비계관을 일 년이 지나도록 찾지 않았다. 그럼에도 야시마는 자신의 모든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별장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며 손님이 찾기를 기다렸다.
눈이 녹지 않은 초봄의 어느 날, 곰이 근처에 있는지 비계관 주변을 살피던 야시마는 근처 절벽 밑에서 부상당한 채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는 청년 오치 야스미를 발견하고 비계관으로 데려와 치료해 준다. 다음날 실종된 오치를 찾는 수색대가 별장에 들러 오치의 행방을 묻지만 어찌 된 일인지 야시마는 오치를 본 적이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오치의 물건이 별장 주변에서 발견되자 수색대는 야시마의 배려 하에 비계관을 거점으로 오치의 수색을 시작하는데….
<다마노 이스즈의 명예>
고다이지에서 가장 전통 있는 오구리 가문의 외동딸 스미카는 가문의 후계자이기에 가문의 왕으로 군림하는 할머니에게 모든 생활을 통제 당했다.
스미카의 열다섯 번째 생일날, 할머니는 생일 선물로 동갑의 여자아이 다마노 이스즈를 전담 시녀로 붙여주셨다. 처음 둘 사이엔 어색하고 딱딱한 기류만이 흘렀지만, 스미카의 아버지가 이스즈에게 진정으로 스미카의 편이 되어 스미카와 사이좋게 지내달라고 말한 뒤 이스즈는 스미카의 할머니 앞에서는 우직하고 순종적이며 예의를 차렸지만 단둘이 있을 때는 스미카에게 순종적이면서도 다정한 친구이자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스승이 되었다.
세월이 지나 스미카는 엄하고 완고한 할머니를 겨우 설득해 대학에 진학하며 이스즈와 함께 자유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형님이 살인을 저지르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데릴사위인 아버지는 가문에서 쫓겨났고, 스미카는 집으로 강제 소환돼 살인자의 핏줄이라며 저택 한구석에 감금되어 철저하게 죽음을 향해 사육당하는데….
<덧없는 양들의 만찬>
대학 내에 버려지고 황폐한 온실에 한 여학생이 길을 잃고 들어왔다. 여학생은 그곳에서 버려진 한 권의 일기를 발견하고는 조심스럽게 읽어나갔다. 첫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바벨의 모임은 이렇게 소멸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오데라 마리에는 졸부인 아버지가 회비를 주지 않아 '바벨의 모임'에서 제명된다. 체면 때문에 딸을 대학에 보내기는 하지만 취미에까지 돈을 낭비할 수 없어 회비를 주지 않았다는 아버지에게 마리에는 '바벨의 모임'은 아버지가 줄을 대고 싶어 하는 명문가 자제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에 아버지는 화를 내며 마리에에게 돈다발을 건네주며 회장에게 회비의 몇 배에 해당하는 돈을 쥐여 주며 모임에 다시 가입하라고 한다.
예상대로 '바벨의 모임'의 회장은 마리에를 상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마리에의 가입 부탁에 '바벨의 모임'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가지게 된 다른 의미를 알려준다.
한편 아버지는 집안의 요리사인 마부치 아저씨를 해고하고 굉장한 실력을 갖춘 추냥이라는 특별한 요리사 나쓰를 고용한다. 나쓰가 만든 요리는 확실히 굉장했지만, 그녀는 집에 고용된 요리사이면서도 연회가 끝난 뒤에는 반드시 별도의 보수를 요구했고, 그녀가 연회를 위해 구입하는 식재료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에는 아버지와 삼촌이 저지른 짓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고 그것은 '바벨의 모임' 회장이 했던 말과 겹쳐져 환상과 현실 사이의 벽을 허물게 된다. 그리하여 마리에는 아버지를 부추겨 나쓰에게 머리로 즐긴다는 아미르스탄 양을 요리하도록 시키는데….
"바벨의 모임이란 환상과 현실을 혼동하는 덧없는 자들의 성역입니다. 너무나 단순한, 혹은 너무나 복잡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 우리 모임에 모여들지요. 말하자면 우리는 같은 지병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은 유일하게 『흑뢰성』을 읽었었고, 그 작품이 너무 재미있었기에 그것과 비슷한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예상하고 책을 펼쳤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 작품은 진정 내 취향의 소설은 아니었다.
이 소설은 다섯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단편소설집이다. 각 작품은 독립적이지만 '바벨의 모임'이라는 독서모임이 공통적으로 언급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벨의 모임'이 무언가 특별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는 동안 무섭다거나 궁금하다거나 긴장감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참신하게 미친… 혹은 미쳐가는 여자들의 환상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고백담을 보고 있으려니 정신적 피곤함과 불쾌감과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블랙 유머라는데 어디에서 유머의 포인트를 집어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책을 다 읽고 덮고 나서도 해소되지 않는 이 찝찝함과 당황스러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돈 내산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