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양장본) -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Memory of Sentences Series 1
박예진 엮음, 버지니아 울프 원작 / 센텐스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대중화되면서 상품이나 문화 콘텐츠 등 생활 곳곳에서 페미니즘적인 요소들이 크게 늘어났다. 도서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닌데, 서점에 가보면 페미니즘을 주제로 하는 책들이 접근성이 좋은 곳이나 상단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게 페미니즘이 대세가 되며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자기만의 방』을 저술한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자주 거론된다.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를 페미니즘과만 연관 짓는 것은 그녀의 극히 일부만 이해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녀는 영국 최초의 페미니스트일 뿐만이 아니라 당대 가장 훌륭한 모더니즘 작가이자 '의식의 흐름'이라는 소설 기법의 선구자라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렇듯 그녀와 그녀의 작품들은 문학사에서 독보적이고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막상 그녀의 작품들을 호기롭게 접했을 땐 작품의 난해함에 당황하곤 한다.

이에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점은 울프가 자신만의 의식의 흐름의 기법으로 적었기에 당연한 것이라며, 어렵게 다가오는 문장들이 있다면 이해하려고 매달리지 말고 문장을 의식의 저편 너머로 그저 관조해 보라고 조언하고 있다.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를 포함한 13작품 속에서의 인상적인 문장들을 영어와 한국어 번역 두 가지 버전으로 보여주며 작품에 대한 쉬운 설명을 더해 독자에게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과 생애를 느껴보게 하고 있다.



"여성들이 수백만 년 동안 방 안에만 앉아 있었기 때문에, 이제 벽에 여성들의 창조력이 모두 스며들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방 안의 벽돌과 시멘트가 여성들의 창조력을 받아들이는 것이 한계에 다다를 정도이므로, 이제 여성들은 펜과 붓을 사업과 정치에 써야 할 것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대표작 『자기만의 방』에서 성 불평등의 본질을 지적하며 가부장적 남성 중심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울프는 이 책에서 여성이 글을 쓰려면 두 가지 조건 즉, 경제적 자립을 가져다줄 '돈'과 시·공간적 자유를 의미하는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울프가 제시한 두 조건들은 문학에서뿐만이 아닌, 다른 모든 분야에서 노력하는 모든 이들의 자아실현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임을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생을 무엇과 비교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마치 시속 80km로 튀어 나가는 지하철 속에서 휩쓸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다른 한쪽 끝에 하나의 핀도 없이 착륙하는 것처럼! 신의 발밑에 완전히 맨몸으로 던져지는 것과 같아요!"


『벽에 난 자국』은 버지니아 울프의 의식의 흐름 문학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여성 서술자가 전개 내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서술하고 있다.

형태가 없는 서술자의 의식과 흐릿한 시·공간의 경계가 생소하고도 낯설지만 오히려 이러한 과정이 읽는 이로 하여금 내적 고찰과 현실 세계의 연결을 촉발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한순간이라도 올랜도가 자신의 책상에서 글을 쓰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그 소명에 이보다 더 적합한 여성은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올랜도』는 울프가 열렬히 사랑한 여성 작가 비타색빌웨스트를 모델로 한 부분적인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올랜도의 요술 같은 성전환인데 이것은 어쩌면 성별의 제약 없이 다양한 삶을 자유롭게 살아 보고 싶어 했던 울프의 바람을 투영한 것이 아닐까? 울프는 이 소설을 통해 역시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한 뒤 차별하는 가부장적 남성 중심 사회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이 외에도 이 책은 『3기니』, 『출항』, 『등대로』 등 버지니아 울프의 각 작품들 속에서 의미 있는 문장들을 뽑아 엮고 있다. 그 문장들은 내용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문장들 사이에는 울프 작품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나 이어지는 줄거리를 간단히 첨부하고 있기에, 짧은 문장들을 몇 페이지 읽었음에도 버지니아 울프 작품 한 권을 온전하게 읽었을 때보다 훨씬 더 명확하게 정리되고 이해가 되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은 요즘 핫한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지만 그 난해함에 좌절했던 사람들이나 이미 작품을 읽어본 사람들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이 책을 통해 작품을 간단하게 이해하고 정리하는 것은 물론, 발췌된 문장을 반복해서 읽어 머릿속에 그 문장을 판박이처럼 새기고 기억해 내 문학적 감성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들었으면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