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
캐런 조이 파울러 지음, 서창렬 옮김 / 시공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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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엔가 미국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공공장소든 으슥한 곳이든 낮이든 밤이든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총기 폭력은 전염병처럼 번져 나가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그것을 보며 다른 작가들처럼 총격 사건 가해자를 넘어 가해자의 가족들이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이 저지른 일을 맞닥뜨렸을 때 가질 생각과 그 후 그들의 생활에 닥칠 변화가 궁금해졌다고 한다.

그 생각이 가지를 뻗어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대통령들 중의 한 명인 링컨을 암살한 존 윌크스 부스와 그 가족에게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는 존 윌크스 부스에게 자신의 관심이 가는 것은 싫었기에 그를 최대한 중심에 두지 않고 그의 가족에 관한 일을 쓰기로 했다고 한다.


영국 출신의 셰익스피어 연극배우 주니어스 브루터스 부스는 1822년 아내 메리엔과 미국의 메릴랜드 주 벨에어 근처의 삼림지대로 건너와 그들의 뿌리를 내린다. 그곳에서 그들은 10명의 아이들을 낳고(그중 네 명은 일찍 죽는다) 20여 년 가까이를 살지만, 그들의 집과 아이들의 존재는 모두가 다 아는 동시에 비밀에 부쳐져야 할 존재였다.

그 이유는 훗날 그들이 볼티모어로 이사를 간 후에 드러나는데, 그곳으로 쳐들어온 아버지의 본처 애들레이드에 의해 밝혀진 아버지의 이중 결혼 때문이었다. 이 사실은 부스 가족을 생애 처음으로 그들이 직접 잘못한 것도 아닌 아버지의 잘못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비난받고 모욕 받고 괴롭힘당하게 했다.


살아남은 아이들 중 준과 에드윈, 존은 연극배우인 아버지를 따라 배우가 되었는데, 아버지는 에드윈을 그의 후계자로 마음에 둔 듯했고 실제 에드윈만이 배우의 길로 들어선 그의 아들 중 가장 성공한다.


자신의 미래는 장미빛이리라 믿던 에이시아와 존 사이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에이시아가 자신은 무언가 큰일을 이루어낼 수는 없겠지만 소박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부스라는 이름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하는 반면, 존은 무게감 있고 영향력 있는 자신만의 족적을 남길 거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생각은 훗날 그들의 인생에서 그대로 실현된다.

그런 존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세인트티머시 학교의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존이 북부인의 태도를 버리고 강한 남부인의 특질을 가지게 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그가 가족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일을 저지르는 시발점이 된 듯하다.


그리하여 존은 그렇게 정립된 자신만의 그릇된 신념을 행동으로 관철하며 남은 가족들을 가족에 대한 사랑을 부정하게 만들며 사람들 속에서 고립되는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데….



소설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우면서도 답답한 인물이 로절리였다. 한순간도 걱정을 끼친 적이 없는 자식이었던 로절리의 삶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희생만 요구되는 너무나도 답답하고 초라한 삶이었다. 희생을 해도 누구도 감사하지 않고 그녀의 감정은 누구도 존중하지 않았다. 거기에 길들여진 그녀는 스스로의 삶에 만족했을까?

저자는 이 책의 등장인물 중 로절리가 가장 허구적인 인물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존의 잘못된 신념과 판단과 행동으로 인해 그의 남은 가족은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 사랑하는 아들과 형제를 부정해야 했고, 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해서는 안 되었다. 사람들에 의해 존 자신은 비열한 협잡꾼에 난폭한 주정뱅이가 되어버렸고, 가족들은 모두 비열하고 음침한 독사 같은 인간이 되어 버렸다. 온 나라는 그들을 하지도 않은 기행과 악행을 저지르는 인두겁을 쓴 벌레만도 못한 존재로 매도하고 모욕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부스 가족들이 겪은 고통들을 담담하게 읽어 내려가자니, 비록 존이 미국이 사랑하는 위대한 인물을 죽였지만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연좌제를 적용하여 법에 의해서가 아닌 개인적인 분노 표출의 표적으로 그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이 정당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존 윌크스 부스는 그저 역사 속 위대한 인물을 죽인 역사에 박제된 평면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소설을 끝낸 지금은 저자의 절제된 문체에도 불구하고 존 윌크스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부대끼며 과거를 살았던 입체적인 인물이 되어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책은 벽돌책으로 두꺼웠지만 읽다 보니 롤러코스터 같은 부스 가족들과 링컨의 서사에 소설이 짧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했다. 역사가 스포 그 자체이지만 결말을 알든 모르든 부스 가족들의 삶은 너무나 파란만장하고 가족애는 아름답고 희생적이며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언뜻 보면 상관없을 것 같지만 미국의 역사와 서서히 톱니바퀴를 맞추기 시작하며 정해진 역사의 시간 속으로 흘러가는 부스 가족의 삶을 통해 작가의 상상력이 재창조한 역사의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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