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경계
야쿠마루 가쿠 지음, 남소현 옮김 / 북플라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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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출판사에 근무하는 남자친구 코헤이와의 결혼을 간절히 바라는 아카리는 자신의 생일날 시부야의 유명 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했다는 코헤이의 문자를 받고 특별한 이벤트를 기대하며 행복한 꿈에 젖는다. 하지만 약속 당일, 약속시간이 다 되어 담당 작가로부터 급하게 부탁받은 일 때문에 약속을 취소해야겠다는 코헤이의 전화를 받게 된다. 이에 아카리는 레스토랑은 나중에 가도 되니 잠깐이라도 만나자고 코헤이에게 애원하지만 코헤이는 바쁘다며 급하게 전화를 끊어 버린다.

서운하고 화가 난 아카리는 그대로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마침 문득 생각난 유명 케이크 가게에 가고자 방향을 바꿔 스크램블 교차로 앞에 섰다. 신호가 바뀌어 수많은 인파가 길을 건너는 가운데, 아카리는 우연히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젊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갑자기 그가 방향을 틀어 아카리 쪽으로 다가오며 가방에서 도끼를 꺼내 순식간에 아카리를 향해 휘둘렀다.


갑작스러운 무차별적 공격을 당한 아카리는 계속해서 가해지는 고통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그대로 죽게 되는가 싶던 순간 어디선가 갑자기 남자를 제지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큰소리와 함께 아카리의 눈앞에 나이 든 남자의 창백한 얼굴이 나타났다. 그 남자의 입가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떨렸고, 아카리는 그 말을 반드시 들어야 할 것만 같아 혼신의 힘을 다해 기어가 남자의 입가에 귀를 갖다 댔다.

"약속은 지켰다고… 전해줘…."

결국 아카리를 구하려던 남성은 죽고 아카리는 구사일생 목숨을 구하지만 그 사건은 아카리에게 크나큰 몸과 마음의 상처를 남김과 동시에 자신을 구하고 죽은 남성에 대한 죄책감과 부채감을 남긴다.


성인 잡지에 실리는 유흥업소 기사를 쓰는 프리랜서 무명 기자 쇼고는 시부야역 앞 스크램블 교차로 묻지마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에는 사건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우연히 범인 케이치가 사건 발생 일주일 전까지 근무했다는 회사 사장의 인터뷰를 보고 케이치가 자라온 환경이 자신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는 케이치에게 흥미를 느낀다. 쇼고는 케이치를 더 자세히 알기 위해 구치소에 찾아가 면회하고 그의 과거에 대해 조사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쇼고는 자신이 케이치의 과거를 알아내서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를 깨닫는데….



소설은 묻지마 살인 사건의 생존 피해자 아카리와 그녀의 남자친구 코헤이, 가해자 케이치의 과거 행적을 파헤쳐 나가는 삼류 기자 쇼고 이렇게 세 사람의 시점에서 교차 서술된다. 그 과정에서 '인생에서 진실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묻지마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개인의 일탈이 아닌 가정폭력과 학대, 주위와 사회의 무관심으로 연결, 확대하여 지금도 누군가의 관심과 손길을 바라고 있을 소외된 이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첫 부분부터 발생한 끔찍한 사건으로 인해 책을 펼친지 얼마 되지 않아 소설에 훅 빠져드는 몰입감과 가독성이 장난이 아니었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안타까운 상황이 너무나도 잘 전해져 미스터리 추리 소설임에도 읽는 내내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려 살짝 당황스러웠다.


소설은 어머니의 학대로 인한 트라우마를 가진 가해자가 어머니에게 복수하고 싶어 하는 욕망과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에게서 버림받았다는 분노와 증오를 동시에 가지고, 자신의 분노의 칼날의 끝을 타인에게 겨누어 타인의 행복과 목숨을 빼앗음으로써 도미노처럼 발생하는 타인들의 불행을 이야기하고 있다.

가해자의 불우한 과거가 정상참작 요소라는 점이 잠깐 언급되었을 땐 불행한 인생을 살았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남을 공격해도 될 면죄부로 작용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왜냐하면 사회와 부모에 대한 불만과 원망을 가진 사람들 모두가 죄의 경계를 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인간이기에, 인간이고 싶다면 지켜야 하는 그 경계를 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저마다의 고민과 불행을 안고 살아간다. 남들이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 배부른 투정일 수 있어도 그것이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인생, 아니 생사를 결정할 만큼 커다란 고민과 불행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인생을 탓하고 원망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그것을 바꾸려고 노력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스스로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되는 것이다.


"약속은 지켰다고… 전해 줘…."

아키히로는 누구와 무슨 약속을 한 것일까?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아키히로가 마지막으로 남긴 그 한마디를 전해 그를 기억하고 그의 죽음을 애도할 사람을 찾는 여정을 떠나는 아카리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 심신에 새겨진 상처를 극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사건을 파헤쳐 나가는 쇼고 역시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


사회파 미스터리 추리 소설임에도 사회에 대한 비판보다는 인물들의 심리에 집중했기에 개인적으로 소설에 더 깊이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소설을 덮은 후에도 계속 가슴이 뭉클하며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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