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기괴괴공모전 수상작품집
백해인 외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다섯 편의 기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탈피, 키스>

3년 전부터 갑자기 원인 모를 종기로 얼굴이 뒤덮여 버린 수희는 온갖 의학적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는 호전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점점 심해지기만 했다. 그것이 피부병이 아닌 저주라는 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수희의 일상은 무너지고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진 후였다. 이에 수희는 목욕탕을 찾아다니며 정성스레 목욕하며 자신은 소중한 존재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날도 평소처럼 늦은 시간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던 수희는 예전에 목욕탕에서 한번 본 적 있는 묘령의 여인에게 홀린 듯 '바토리의 축복'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녀와 같이 의문의 붉은 액체를 섞은 냉탕에서 목욕을 하게 된다. 그 후 수희의 피부는 거짓말처럼 회복이 되었고, SNS를 통해 알게 된 멋진 남자 이진과의 현실 연애도 시작하는데….


<수레바퀴 소리가 들리면>

평안도 어느 어촌 마을에서 건어물을 만드는 아비와 병든 어미의 자식으로 태어난 자매는 쌍둥이처럼 모든 것이 닮아 있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아비를 도와 일하거나 앞바다의 갯벌이나 뒷산으로 다니며 먹을 것을 구해야 했지만 자매가 함께여서 이겨낼 수 있었다.

아비는 오일장이 설 때 건어물을 내다 팔아 돈을 벌었지만 자매가 시장 사람들에게 잠깐 보여준 '그림자 인형극' 놀이가 더욱 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건어물 장사를 때려치웠다. 하지만 자매의 이야기로 번 많은 돈은 고스란히 아비의 노름 밑천이 되었고, 가족들의 배곯는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겨울밤, 장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자매와 아비 앞에 검은색으로 온몸에 두른 정체불명의 남자가 앞을 막아서는데….


<가지치기>

가려워 긁었더니 생긴 왼팔의 상처 사이로 크게 부푼 부분이 생겼고, 얼마 후 그곳에서 머리카락 같은 빽빽한 털이 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을뿐더러 의사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도 몰라 병원에 가지 않고 참고 지내는 사이 그 '불룩한 부분'은 나날이 커져 '나'의 얼굴과 똑같은 '얼굴'이 되었다. '얼굴'은 깜짝 놀라 지르는 내 비명을 따라 비명을 질렀고, 내 표정도 따라 했다. 그렇게 그것이 커지고 꿈틀거려 더 이상 긴 상의로 가릴 수 없게 되자, 나는 왼팔에 돋아난 '얼굴'을 떼어내기로 결심하고는 '얼굴'의 목부분에 식칼을 밀어 넣는데….


<비어 있는 상자>

정훈은 무리한 투자와 사업 실패로 빚을 지고 쪼들렸지만 남들에게 보여지는 화려한 삶을 포기하지 못해 허세를 부리다가 끝내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인력사무소를 기웃거리게 된다. 하지만 별다른 기술이 없는 정훈은 매번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날도 역시 공치게 되어 막막해 하던 중 사람들을 실어 나르던 승합차 뒤에 멈춰 서는 한 검정 승합차를 발견하고는 일자리가 급한 마음에 그 차로 다가가 자신을 써달라며 적극적으로 어필한다. 결국 그날의 일자리를 얻어 차에 탑승하게 된 정훈은 마음이 들떠 승합차 뒤 칸에 실려 있는 길쭉한 상자에서 '슈우', '쌔액' 하는 수상한 소리가 나는 것을 듣지 못하는데….


<무미의 끝>

고등학교 시절 게임밖에 모르던 학생이었던 어진은 담임의 주선으로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던 지혁에게 방과 후 공부를 배우게 되었다. 지혁과 서로 친목을 쌓아가며 공부에 재미를 붙인 어진은 20대에 대기업 취업에 성공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저녁, 늦은 식사를 하고 있던 어진의 집으로 수신인 불명의 상자가 퀵 서비스로 배송되었다. 최근 주변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기에 조심해야 됐지만, 어진은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상자를 뜯어 안에 들어 있는 편지를 읽고 마는데….



이 책은 2023년 '기기괴괴공모전'에서 수상한 이상야릇하고 기이하고 기괴한 이야기들이 최우수상부터 차례대로 실려있는 기담 모음집이다. 각기 다른 작가의 작품들이어서 그런지 확실히 작품마다 개성과 분위기가 뚜렷하게 달랐다.


개인적으로 <가지치기>와 <비어 있는 상자>가 가장 흥미로우며 재미있었다.

<가지치기>는 처음엔 『기생수』나 얼마 전 읽었던 『인면창 탐정』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근원을 모르는 '얼굴'이라는 존재가 실재하면서 '나'를 점차 잠식해 나가는 부분이 섬뜩했다. 장자의 '인간인 내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인간인 나로 변해 있는 것일까'가 아닌 '내가 진짜 '나'인가 아니면 '얼굴'이 '나'이고 지금 생각하는 '나'는 단지 기생하는 '얼굴' 중 하나일 뿐이지 않을까'라는 애매모호하고 흐릿한 의식의 경계 속에서 잘라내는 '얼굴'이 무엇일지 그 끝을 상상하기 무서워지는 이야기였다.


<비어 있는 상자>는 외형적인 것에 집착하는 현실 세태를 공포스럽게 비꼬아 이야기하고 있다. 상자에 든 내용물이 처음엔 충격적이었지만 그 이후 전개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해 읽어나가는 동안 조금은 느슨해지고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이야기는 끝부분에 이르러 누구도 예상 못 한 갑작스런 섬뜩한 반전을 주며 결말 뒤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꼴이 그렇게 되어도 정신을 못 차리는 '그것'들의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의 모습은 어떤지 살펴보게 했다.


<무미의 끝>은 무섭다기보다는 심리적으로 기분 나쁜 역함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약간은 형이상학적이며 기이한 차원의 의식을 지닌 지혁에 대한 시선은 섬뜩함과 역함에서 동정과 연민으로 바뀌어 갔다. 그는 왜 그렇게 변해야만 했을까. 그리고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반면 개인적으로 <탈피, 키스>와 <수레바퀴 소리가 들리면>은 소재와 이야기면에서 조금은 흔하고 평범하다 느껴졌으며, 이야기 전개에 물음표가 달리는 부분이 제법 있어 취향이 아니었다.


아무튼 이렇게 각기 다른 기괴하고 기묘한 이야기들은 흥미와 재미뿐만이 아닌 현실에 대한 비판과 반성도 하게 했다. 또한 끝을 밝히지 않은 열린 결말로 누구나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섬뜩한 상황 그 이상을 상상케 함으로써 이야기를 더욱 소름 끼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젊은 작가들만의 완숙되지 않고 정형화되지 않은 아이디어에 기반한 번뜩이고 개성적인 기괴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참신하고 기이한 이야기와 호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적극 이 책을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