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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대디, 플라이
가네시로 가즈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예춘추사 / 2023년 7월
평점 :
마흔일곱 살의 평범한 샐러리맨 스즈키 하지메는 특별히 바라는 것 없이 그저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함께 20여 년간 만들어 놓은 평범하면서도 규칙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삶의 전부이고 행복인 사내였다. 특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 하루카의 행복은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계속되리라 여겼던 스즈키의 행복한 일상은 어느 한순간 무너져 내리고 만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똑같은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도착한 스즈키는 여느 때와 똑같지 않은 불 꺼진 캄캄한 자신의 집 모습에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그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하루카가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는 아내 유코의 메모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 길로 병원에 달려간 스즈키는 심하게 폭행당한 처참한 몰골의 딸 하루카를 봤지만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스즈키에게 담당의사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하루카의 부상이 별것 아닌 것처럼 이야기했고, 폭행 가해자의 학교 교감과 선생이라는 남자들 역시 하루카가 하교 후 폭행 가해자를 따라갔다가 사랑싸움이 일어났던 것뿐이라며, 가해자는 미래가 창창한 학생이니 문제를 확대시켜 앞길을 망치지 말라며 은근한 압력을 가했다. 또한 사과를 하는 가해 학생 이시하라에게서도 진정한 반성의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 후 겨우 일상의 모습만 유지하고 있던 스즈키를 완벽하게 무너뜨린 일이 발생했다. 점심시간 식사를 하러 간 가게에서 우연히 이시하라가 3연승에 도전하는 고교 복싱 챔피언이라는 뉴스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텔레비전에 나온 이시하라는 운동밖에 모르는 순진무구한 학생을 연기하고 있었다.
스즈키는 분노를 느끼고 이시하라를 단죄하리라 결심했다.
다음날 스즈키는 즉시 자신의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 부엌에서 칼을 하나 챙겨들고 이시하라의 학교로 찾아갔던 것이다. 한참을 헤매다 물어물어 겨우 찾아간 학교에서 스즈키는 우연히 한무리의 남학생들과 맞닥뜨렸고, 예상치 않은 상황에 당황한 나머지 그들을 향해 칼을 꺼내들며 이시하라를 데려오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 중 한 명에게 제압당하며 기절한 스즈키는 정신을 차린 후 자신이 학교를 잘못 찾아왔음을 알게 되었고, 이시하라를 찾는 이유를 묻는 남학생들에게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남학생들은 딸을 위해 살인이 아닌 진정한 복수를 하지 않겠냐며, 스즈키에게 그들의 무리 중에서 싸움의 달인이라는 박순신에게 트레이닝을 받을 것을 제안하는데….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는 재일교포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조총련계 초·중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에서 스즈키의 스승이 되는 학생 박순신은 한국인이 아닌 재일조선인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야기는 문체가 간결하여 가독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7월 9일부터 9월 1일까지 약 두 달에 걸쳐 일어난 일들이 날짜별로 전개되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 쉬웠다.
소설은 평범하고 어찌 보면 무기력하기까지 한 중년 가장 스즈키가 딸의 폭행 사건을 계기로 우연히 만난 『레벌루션 No.3』에 나왔던 '더 좀비스'의 도움을 받아 변화하고 성장하며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나가고 복수를 하는 이야기이다.
폭력과 복수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청소년 소설이라 그런지 너무 무겁거나 암울하지 않은, 어찌 보면 다소 유쾌하고 통쾌한 분위기와 전개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때론 유머러스한 장면 묘사와 대사가 등장해 정말 재미있게 술술 읽혔다.
그런데 너무 의아했던 것이 폭력 사건인데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아무리 무기력한 가장이라도 딸의 몰골을 보고도 그것을 그냥 아이들 사이의 흔히 있는 다툼의 결과로 받아들여 그냥 넘어가려 했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차라리 경찰이 뇌물을 받아 사건을 허술하게 무마하려 해서 아빠가 복수에 나선다는 전개였으면 조금 더 설득력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하긴 그렇게 되었다면 이야기가 좀 더 무거워졌을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스즈키가 싸움의 고수 박순신의 도움을 받아 단기간에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성장과 변화는 스즈키뿐만 아니라 스즈키를 훈련시키는 박순신에게도 일어난다. 스즈키와 함께 하는 동안 재일조선인으로 받았을 차별 때문에 날을 세우던 박순신은 마음을 여는 긍정적 변화를 보여준다.
그리고 소설을 읽는 동안 삼류 학교에 다닌다지만 '더 좀비스' 자체는 누구보다 일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갈 만큼 통쾌한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은 짜릿하고 재미있는 소설인 동시에 유쾌한 감동을 주는 소설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