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헤르츠 고래들
마치다 소노코 지음, 전화영 옮김 / 직선과곡선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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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오이타현의 작은 바닷가 마을로 홀로 이사 온 키코에 대해 주민들은 그녀가 유흥업소 여자고 야쿠자에게 쫓기고 있다는 등의 근거 없는 억측을 진실처럼 이야기했고, 마침 키코의 집 마룻바닥을 수리하러 온 집수리 업자 무라나카는 키코에게 단도직입적으로 그 소문에 대해 물어본다. 이에 화가 난 키코는 무라나카가 바닥을 고치고 있는 동안 나가 있기로 하고 집을 뛰쳐나온다. 그러고는 평소 힘들 때 그랬던 것처럼 안상을 생각하며 그를 떠올린다.


주인공 키코의 엄마는 게이샤이자 첩이었던 할머니를 원망했고 자신은 번듯한 남자와 결혼해 정상적이고 행복한 가정을 꾸릴 거라 다짐하며 살았지만 키코를 낳은 후 결혼은 실패로 끝났다. 엄마는 자신의 우울한 삶에 대한 분풀이를 키코에게 했고, 그렇게 어린 키코에게 폭력을 휘두른 후에는 안아주는 것을 반복했다.

엄마의 감정의 결핍은 의붓아버지와 재혼함으로써 채워졌지만, 키코에 대한 학대는 의붓아버지의 폭력까지 더해졌을 뿐만 아니라 강도도 더욱 심해져 어린 키코를 항상 외롭고 힘들게 했었다.


키코는 고등학교를 졸업 후 독립할 계획을 세웠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의붓아버지가 루게릭병으로 쓰러지며 그 계획이 좌절되고 만다. 엄마는 키코에게 키워준 보은을 강요하며 다른 전문가의 손길은 거부한 채 의붓아버지의 간병을 오롯이 키코에게 떠맡겼다.

자신의 삶은 포기한 채 3년간 의붓아버지의 간병에 헌신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여전한 폭력과 욕설과 원망뿐이었고, 이에 완전히 지쳐버린 키코가 삶의 끈을 놓으려 할 때 기적처럼 키코에게 구원의 손길이 뻗쳐졌다. 그리하여 키코에게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는데….


새로운 삶을 시작한 2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모든 것을 버리고 이사 간 마을에서 키코는 자신의 아픈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아이를 만나게 된다. 그저 예쁘장한 중학생인 줄 알았던 아이와 우연한 만남을 거듭하는 동안, 그 아이가 지독한 신체적·정신적 학대와 방임의 환경에 처해져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심지어 아이의 보호자는 번듯한 이름 대신 아이를 벌레라고 불렀다.

이에 키코는 아이에게 '52헤르츠 고래'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이의 진짜 이름을 알기 전까지 '52'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러고는 아이를 진정으로 위해주고 보호해 줄 사람을 찾아 아이와 함께 아이가 이전에 살았던 곳을 찾아가는데….




이 소설은 작가 마치다 소노코의 첫 장편소설로 2021년 일본 서점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고, 2024년 영화화가 결정된 작품이다. 작가 이름이 다소 생소하여 찾아봤더니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인기를 끌었던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의 작가이다.


소설 제목 '52헤르츠 고래'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라고 한다.

원래 고래는 주로 10에서 39헤르츠 높이로 노래하는데, 52헤르츠 고래는 소리가 높아서 그 노랫소리가 다른 고래한테는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무리를 지은 동료들이 아무리 가까이에 있어도 52헤르츠 고래의 소리는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아 다른 고래들은 그 고래를 그냥 지나친다고 하니 얼마나 외로울까?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도 52헤르츠 고래처럼 사회에서 살아가지만 실은 사회 속에서 고립되어 있다. 자신을 알아봐 달라고, 자신을 도와 달라고, 그들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한 신호를 계속 보내지만 누구도 들을 수 없고 누구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면 누구에게나 들릴 수 있는 그 소리를 들은 누군가가 나타났을 때 비로소 그들은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52헤르츠의 소리를 내는 이들에게만 구원이 아닌 그 소리를 듣고 구원의 손을 내민 이들에게도 또 다른 구원이 된다는 것이다.


소설은 주인공 키코가 학대받은 아이 52를 만나며 52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중간중간 키코의 서사와 교차하며 보여준다. 또한 학대를 당한 그들뿐만이 아닌 다른 형태의 52헤르츠 소리를 내는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그리하여 언뜻 보면 흔한 학대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인 듯하지만 내용은 결코 식상하지 않은 탄탄하고 신선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전개된다.

소설은 주인공이 잘 먹고 잘 살았다는 동화 같은 해피엔딩이 아니라 그 동화 같은 해피엔딩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 52의 진짜 이름이 알고 싶으면 소설을 읽어 보시길. 그따위로 학대해 놓고 이름은 또 왜 그리 예뻐서 눈물 나게 하는지….


일방적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닌 구원하고 구원받기 위해 서로가 노력하고 변화하는 모습들이 큰 감동이었다. 우리 모두가 주변 어딘가에 있을 52헤르츠 소리에 귀 기울이고, 또한 도움이 필요하다 생각될 때는 52헤르츠 소리라 할지라도 용기를 가지고 내어보는 것이 어떨까?

너무나 묵직한 감동과 따뜻함의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이야기였다. '일본 서점 대상 수상작은 뭔가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

아직 읽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꼭 읽어볼 것을 강력 추천한다.





*내돈내산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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