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숙녀 신사 여러분
유즈키 아사코 지음, 이정민 옮김 / 리드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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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유즈키 아사코는 단편 「포켓 미, 낫 블루」로 이 소설에도 등장하는 '올요미모노'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그 후 '야마모토 슈고로상'이나 '고등학생 나오키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는 이외에도 다섯 차례에 걸쳐 '나오키상' 후보에 오르는 필력을 과시했다.

내가 작가의 작품 중 유일하게 읽어 본 『버터』는 실제 연쇄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그것을 취재하는 여성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미각과 식욕을 극도로 자극하는 음식에 관한 묘사가 일품인 소설이었다.

그래서 작가의 단편 소설집은 어떠한 매력을 지닌 소설일지 무척 궁금했다.


이 책은 월간 문예지 『올요미모노』에 발표되었던 7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원고지 매수가 가장 적은 문학상에 골라 응모했다가 얼떨결에 유서 있는 출판사의 권위 있는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지만 후속 작품이 계속 퇴짜를 맞으며 의기소침해진 주인공에게 출판사를 세운 소설가의 동상이 말을 걸며 벌어지는 이야기 「Come Come Kan!」, 큰 인기를 끌었던 연애 소설의 작가가 오랜만에 소설의 배경이자 드라마의 로케 현장이었던 호텔을 찾아 자신의 추억 속에 갇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동상이몽 「둔치 호텔에서 만나요」, 통근용 급행열차의 여성 전용 칸에 난입한 주인공이 여성 전용 칸은 오히려 남녀평등을 가로막는 것이라며 그 칸에 타고 있던 여성들과 대치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용사 다케루와 마법 나라의 공주」, 불륜 커플을 위한 명소라고 입소문을 탄 회원제 이탈리안 창작 초밥집에 건물주의 어머니의 허락을 받았다며 회원이 아닌 아기 엄마가 초밥과 술을 마시러 들어오면서 야릇한 분위기가 급반전을 이루는 이야기 「아기 띠와 불륜 초밥」.

코로나19 사태를 핑계로 스스로를 격리하며 여러 여성들과 외도를 벌인 자신의 아들과 이혼을 선언하고 어린 손자를 데리고 고향에 내려간 며느리와 그들을 쫓아온 시아버지의 동거 이야기 「서 있으면 시아버지라도 이용해라」, 성형외과 대기실에서 감명받아 읽은 소녀소설들의 공통점이 주인공의 성공이 노력이 아닌 부자들의 자발적인 후원 때문이었다는 결론을 얻고는 자신의 평생을 보장해 줄 부자 후원자를 찾아 나서는 아코의 이야기 「키 작은 아저씨」, 독신 여성을 위한 여자아파트 1층에 문을 연 카페에서 개점 이틀째 벌어지는 좌충우돌 이야기 「아파트 1층은 카페」.

어느 것 하나 흥미를 끌지 않는 이야기가 없었다.



이야기들은 여느 단편들처럼 빠르게 진행되며 현실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면서도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고 있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문제들을 너무 무겁지 않게 다루고 현실을 풍자하면서도 현실과 적당히 타협할 줄도 안다.


이야기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공감이 가지 않았던 이야기는 「아기 띠와 불륜 초밥」과 「키 작은 아저씨」였다.

「아기 띠와 불륜 초밥」에서는 불륜 커플 초밥집에 드러나지 말아야 할 엄마이자 아내인 아기 엄마가 모습을 드러내 당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자 불륜 현장의 분위기가 반전을 맞이한다.

하지만 불륜녀들이 엄마이자 아내인 아기 엄마에게 공감하고 자신과 같이 불륜을 저지르는 불륜남들을 비난하는 장면에서 어이가 없었다. 본인들은 뭐가 떳떳해서? 그리고 그곳이 불륜을 위해 분위기 잡는 공간인 것을 모르고 들어가 앉았었나? 불륜을 저지른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입다물고 반성하기를.

하지만 입안에 군침이 고이게 하는 이야기 속 맛깔스러운 초밥 묘사는 최고였다.


또한 「키 작은 아저씨」가 '키다리 아저씨'의 또 다른 해석인 것까진 좋았지만, 주인공 아코가 '이건 이래서 안 하고, 저건 저래서 못하는' 등 자신에 대한 투자나 노력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거액의 자산을 양도받게 되는 이야기에서 과연 무엇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당혹스러웠다. 차라리 대학원생 가미오카가 후원을 받았다면 공감이 갔겠지만.


개인적으로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단편은 「둔치 호텔에서 만나요」이다. 유머러스하면서도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 추억을 미화한 주인공을 보며 애잔함마저 느꼈다. 특히 호텔에서 만난 우스이와의 대화가 동상이몽의 현장이라고 밝혀지는 반전에서는 앞장으로 넘어가 다시 한번 장면들을 되짚어 보며 실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또한 모든 존재와 사실들이 기분 좋은 충격과 반전의 연속이었던 단편이다.


전체적으로 작가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는 현실의 이야기들을 톡톡 튀는 발상으로 초현실적으로나 해학적으로 재미있게 풀어내 사회의 고정관념과 상식을 가차 없이 깨부수며 독자들로 하여금 유쾌, 상쾌, 통쾌함을 안겨다 준다. 기발한 발상의 7편의 이야기들이 어떤 이야기는 공감과 재미를, 어떤 이야기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지만 전혀 지루할 틈이 없이 전개되고 있다.

가볍지만 진중하고 재미있지만 의미를 두며 읽을 소설을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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