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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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사는 마술사 제니 마턴은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정기 시장에 무대를 만들어 거리에 다니는 행인들을 상대로 마술 공연을 펼친 뒤 그들에게서 관람비를 받아 어머니와의 생활을 꾸려나갔다.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해 그녀와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남자도 있었지만 제니는 그에게서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해 그의 구애와 그의 모친의 협박에도 꿋꿋하게 청혼을 거절했다. 제니로서는 그런 남자와 가정을 이루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마술을 계속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연에 찾아와 자신을 R이라고 소개한 남성으로부터 40달러를 줄 테니 대규모 마술 공연에 함께 가 마술사의 비법을 알아내라는 제안을 받는다.

그 마술 공연은 다름 아닌 당시 뉴욕에서 크게 인기를 얻고 있던 마술사 마하트마의 공연이었고, 그는 인도 여신 크리슈나의 세계에 다녀온다는 내용을 공연의 테마로 삼고 있었다. 공연을 본 제니는 마하트마가 펼친 마술의 속임수를 간파해 R에게 말했고, 이에 R는 크게 만족하여 자신의 본명이 로버트 핑커턴임을 밝히고는 제니를 자신이 운영하는 <핑커턴 사설탐정 회사>에 고용한다.


로버트는 당시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심령주의, 그중에서도 40여 년 동안 유령이라는 불가사의한 존재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며 돈을 벌어들인 폭스 자매의 속임수를 간파하여 그들의 실체를 폭로하는 임무에 제니를 투입한다. 그 임무를 위해 제니는 헤이즐 바월이라는 과부로 위장하였고, 바다에 빠져 죽은 그녀의 가상 남편 헨리의 유령을 만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폭스 자매가 여는 교령회에 참석한다.

제니의 정확한 임무는 교령회에서 영매 마거릿 폭스가 영혼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나는 '딱딱' 소리의 진실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눈여겨봐도 '딱딱'소리의 진실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교령회 말미에 관객 중에서 뽑힌 '딱딱'소리 진실 판정단 중의 한 명이 마거릿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려 했고 이를 본 제니가 그를 퇴치하며 마거릿의 신뢰를 얻는데 성공한다.


마거릿을 위기에서 구해준 것을 계기로 개별 교령 상담에 초대받은 제니는 개별 상담실에서 마거릿과 둘이서만 가상의 남편 헨리의 유령을 부르게 된다. 하지만 그 어떠한 '딱'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마거릿은 뜬금없이 한 군인이 제니와 대화하기를 원한다며 헨리의 외모를 시민전쟁에 참여한 북군의 복장을 한 남성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시나리오 상 헨리는 무역업에 종사하던 남자로 대서양에서 실종된 것으로 되어 있었기에 그 남자는 헨리가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북군으로 징집되었다가 전사한 사실을 아는 제니는 폭스 자매의 진실에 대해 처음과는 다른 의혹을 가지게 되는데….



이 소설은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아들 조나탕 베르베르의 첫 소설로 실존했던 인물 폭스 자매와 그 실체를 고발하는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다. 물론 소설 속에서 그들을 조사했던 핑커턴 탐정회사 역시 실존 회사이며 탐정회사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스웨덴의 <시큐리타스 AB> 보안회사에 인수되어 사업부로 운영되고 있다.


소설은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비슷한 유쾌한 문장력과 거침없는 이야기 전개를 보여준다. 또한 챕터가 시작할 때 제니의 아버지가 남긴 『마술의 길』이나 로버트가 준 『핑커턴 지침서』의 일부 내용이 나오고 난 뒤 소설의 내용이 나오는 점은 각 챕터 사이에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일부 내용을 보여주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 『행성』과 형식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표지의 무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여인들에게서 풍기는 섬뜩한 분위기와 심령이라는 주제, 그리고 약간 무거운 느낌의 제목 때문에 꽤 심각하고 오컬트적 요소가 강한 소설이라 짐작하며 책을 펼쳤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이야기는 추리, 첩보 소설에 가까웠고 당시의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독립적이고 개성 넘치며 자기주장이 강함과 동시에 능력 있는 주인공 제니의 활약을 보여주며 다소 유쾌하다고까지 느껴질 정도로 속도감 있고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또한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하고자 하지만 무언가 엉성하여 들키는 상황들과 그것을 헤쳐 나가는 제니의 모습들이 은근히 읽는 재미를 더한다.


제니를 포함한 모두가 줄곧 알기를 원하는, 아니 독자들 또한 궁금해하는 '딱딱'소리의 진실이 끝부분에 가서 밝혀질 때에는 정말 짐작조차 못했기에 허무하게까지 느껴져 허탈감마저 들었다.

소설에서 결국 폭스 자매의 진실이 밝혀지지만 정작 대중들은 그들이 진실이라 여겨왔던 것을 부정당하는 것을 거부하며 그토록 맹종을 보이던 대상에게조차 분노를 쏟아내는 세뇌당한 집단 광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허를 찌르는 반전이 있으니 과연 폭스 자매의 진실은 무엇일까?


소설은 실제 인물과 사건을 기반으로 쓰여졌지만 실제와는 다른 결말을 보여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작가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도저히 신예 작가의 소설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촘촘하게 잘 짜여진 플롯을 통해 당시 온 세상을 둘러싸고 있던 심령주의라는 거대한 시류에 맞서는 제니의 모험과 활약을 경험해 보길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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