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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 ㅣ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3
나카노 교코 지음, 조사연 옮김 / 한경arte / 2023년 3월
평점 :
『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은 <한경 arte>의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지만 나에게는 이 시리즈의 책 중 첫 번째로 접하는 책이다.
책을 접하기 전에는 막연하게 역사적 장면을 그린 명화들을 역사와 결부시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책이라고 짐작했었다. 하지만 막상 책을 펼치니 그런 명화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책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명화들은 한스 홀바인이나 폴 들라로슈, 대니얼 메이턴스, 반 다이크 등의 위대한 화가들이 그린 왕의 초상화를 위주로 왕과 관련된 이야기를 가십거리처럼 흥미 위주로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으며, 그 이야기를 따라 영국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역사적 사건 위주의 이야기였다면 자칫 딱딱하고 지루하게 흘러갔을 이야기가 역대 왕들의 숨겨진 치정이나 치부, 그들을 둘러싼 음모 등을 위주로 가감 없이 이야기되어 흔히들 재미있어하는 막장 드라마가 귀여운 애교 수준으로 보일 정도로 영국 역사가 너무 재미있게 이야기되고 있다.
이 책은 장미 전쟁을 끝으로 대가 끊긴 요크 왕조 이후에 영국 왕실을 새롭게 이어나간 튜더 왕조, 스튜어트 왕조, 하노버 왕조의 이야기를 위주로 하노버에서 개명한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를 거쳐 지금의 윈저 왕조에 이르기까지의 왕가의 민낯을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다.
튜더 왕조는 117년 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 재위를 이어나갔지만 후대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헨리 8세, 앤 불린, 제인 그레이, 엘리자베스 1세 같은 스타들을 배출했다. 헨리 7세가 튜더 왕조의 문을 열고 아들 헨리 8세를 거쳐 그의 아들, 딸인 에드워드 6세,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가 순서대로 왕위를 차지한 후 튜더 왕조는 문을 닫는다.
헨리 8세는 여섯 차례 결혼했으며 왕비였던 이를 둘이나 처형시킨 왕이었다. 처형된 왕비는 두 번째 왕비였던 앤 불린과 다섯 번째 왕비였던 앤 불린의 사촌 캐서린 하워드였다.
앤 불린은 아들에 집착하는 헨리 8세에게 아들을 낳아 주겠다고 호언장담하며 첫 번째 왕비 아라곤의 캐서린을 쫓아내고 왕비에 올랐지만 결국 훗날 엘리자베스 1세가 되는 여아만 낳았던지라 헨리 8세의 분노와 증오를 받게 된다. 그리하여 헨리 8세는 앤과 그녀의 친족에게 간통죄와 근친상간 죄를 뒤집어씌워 교수형에 처한다.
그런데 이때 유럽을 지배하던 합스부르크가에서는 삼촌과 조카, 사촌끼리의 근친혼이 흔했을 뿐만 아니라 후일 스튜어트 왕조에서도 사촌 남매간의 혼인이 있었는데 그것이 죄목이 되었다니….
하지만 캐서린 하워드의 경우는 진짜로 바람을 피워 목이 잘린다.
결국 헨리 8세는 세 번째 왕비였던 제인 시모어에게서 얻은 에드워드 6세 외에는 아들이 없었고, 에드워드 6세는 선천성 매독으로 몸이 약해 일찍 죽고 만다. 이 에드워드 6세가 『왕자와 거지』의 모델이 된 왕이다.
미혼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를 마지막으로 튜더 왕조는 끝나고, 엘리자베스 1세의 유언대로 그녀의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메리 스튜어트의 외아들인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6세가 다음 영국 왕인 제임스 1세가 된다. 그러나 그의 아들 찰스 1세 때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 찰스 1세는 전제, 국가 배신 등의 죄로 처형당하고 영국은 왕정을 포기하고 공화정을 선택한다.
하지만 약 10년간의 청교도의 지배하에서 국민들은 피로감을 느꼈고, 이에 영국 의회는 1660년 왕정복고를 선언한다. 이렇게 해서 찰스 1세의 아들 찰스 2세가 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찰스 2세는 '유쾌한 왕'이라고 불리며 국민들에게 인기가 꽤 높았는데, 죽기 전에 국교회가 아닌 가톨릭 신부의 병자성사를 받음으로써 가톨릭으로 개종했던 것이 들통나 국민들에게 배신감을 안겨다 주었다.
그는 25년간의 통치 기간 중 애첩을 통해 50명에 가까운 자식을 낳았으나 정비와의 사이에 자식이 없었던 관계로 정비가 낳은 아이에게만 왕위 계승권이 주어지는 전통에 따라 찰스 2세의 남동생 제임스 2세가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위 첫 번째 사진의 왼쪽에서 두 번째 소녀 복장을 하고 있는 아이가 제임스 2세이다)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왕은 앤 여왕이다. 앤 여왕은 튜더 왕조의 엘리자베스 1세와는 달리 결혼은 하였으나 아이를 낳지 못하고 죽음으로써 스튜어트 왕조는 단절되고 만다.
앤 여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스튜어트 왕조를 열었던 제임스 1세의 딸이자 찰스 1세의 누나인 엘리자베스 왕녀가 낳은 딸 조피 왕녀가 유일한 계승자가 됐지만 그녀는 앤 여왕보다 두 달 앞서 팔순의 나이로 병사한다.
이에 조피의 세 아들 중 장남인 하노버 선제후 게오르크가 영국의 왕 조지 1세로 등극하게 되면서 독일계 하노버 왕조가 열린다.
빅토리아 여왕은 하노버 왕조에서 64년이라는 가장 긴 재위 기간을 지낸다. 그녀는 자신과 사촌지간인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가의 앨버트와 결혼하며 실크 새틴으로 만든 하얀색 드레스를 입었는데, 이때부터 신부가 순백의 드레스를 입는 전통이 생겼다고 한다.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는 진심으로 사랑하며 서로에게 충실했는데, 그들은 결혼 기간 중 9자녀를 둘 만큼 사이가 좋았다.
이렇게 여러 자녀를 둔 빅토리아는 후에 딸들을 유럽 전역의 왕가에 왕비로 시집보냈을 뿐만 아니라 왕가에서 아들의 신부를 데려왔기에 유럽 왕가에 그녀의 손자가 40명, 증손자가 37명이 되는 등 '유럽의 할머니'로 등극하게 된다. 처음으로 할머니가 되었을 때가 빅토리아가 서른아홉 살이 되었을 때라고 한다.
그녀의 남편 앨버트 공은 평생 몸이 건강한 편이 아니었는데 장남 에드워드의 불량 행동으로 불만을 토로한 케임브리지 대학에 갔다 온 후 세상을 떠난다. 이에 남편에게 많이 의지했던 빅토리아 여왕은 심한 충격을 받았고, 남편의 죽음을 방탕한 아들 에드워드 탓으로 돌리며 심하게 몰아세워 모자 관계는 불화가 끊이지 않고 극을 향해 치닫는다.
그렇기 때문일까. 빅토리아 여왕 장례식에서 에드워드 7세는 '건배'를 외치며 웃었다고 하니 어머니 빅토리아 여왕에 대한 앙금이 깊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왕조명도 아버지 앨버트의 고향 이름을 따서 작센코브르크고타로 바꾼다.
에드워드 7세는 아름답기로 유명했던 왕비 알렉산드라만 제외하고 다른 여인들을 사랑했으며, 그가 가장 사랑했던 마지막 공식 정부 앨리스 케펠의 증손이 현 찰스 3세의 애인이었다가 재혼 상대가 된 커밀라 볼스라고 한다.
왕들의 개인사에 맞춰 영국 역사를 이야기하니 굳이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내용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며 그와 관련된 이야기와 역사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구열과 지식 추구 욕구가 활활 불타오른다고나 할까 아니면 고상하고 고귀하게만 보였던 왕족의 민낯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나 할까.
이 책은 세계사를 처음 접하거나 어려워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미 세계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흥미를 유발하고 충분한 재미를 선사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 하고 스펙터클한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시리즈의 다른 왕조 이야기들은 또 얼마나 재미있을지 기대가 된다. 다음 왕조 편이 나오기 전까지 이전에 출간되었던 왕조들을 찾아 읽어봐야겠다.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