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음도 언젠가 잊혀질 거야
스미노 요루 지음, 이소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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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그저 한없이 시시하게만 느껴지고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고등학생 스즈키 카야는 학교에서도 아이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 자신의 내면에 몰두하며 가만히 시간을 죽이는 데에만 몰두했다. 카야는 방과 후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으로 여러 가지를 시도했었고, 그 결과 지금은 집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 산 쪽으로 달리기하는 것을 루틴으로 하고 있다.

인적이 드문 산길을 따라 뛰어 올라가면 이제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버려진 녹슨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그 옆에 있는 대기실이 바로 카야의 달리기 골인 지점이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대기실에서 카야는 땀이 식을 때까지 자신만의 몽상에 빠져 감정을 정돈한 다음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열여섯 살 생일 전날 오후에도 카야는 변함없이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버스정류장까지 달렸고, 거기서 평소처럼 어떤 특별한 무언가가 자신을 데리러 와 줄지도 모른다는 몽상에 빠졌다. 그런데 그날은 너무 편하게 마음을 쉬게 해서인지 대기실에서 깜박 잠이 들고 말았고, 눈을 떴을 때에는 12시가 넘어 있었다.


정신을 차린 후 집에 돌아가기 위해 대기실의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암흑 속에서 믿기 힘든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허스키한 여성의 목소리.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잠시 고민하기도 했지만 이내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에 등줄기가 오싹해지며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냉정하게 자신을 다잡고는 대기실 안을 찬찬히 돌아다보았으나 어둠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공중에 떠있는 연한 녹색으로 빛나는 작은 물체 이외에는.

카야는 그것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그 결과 상대도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카야에게 보이는 빛나는 연한 녹색은 상대의 눈과 손발톱이었다.


그렇게 신체 일부만 눈에 보이는 미지의 여성과 조우하게 된 카야는 그날 이후 대기실에서 그녀와 계속된 만남을 가졌고, 대화를 통해 그녀가 카야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와 대화를 하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으나 중간중간 귀를 긁는 듯한 노이즈로 방해되는 단어들이 있었고, 그녀의 이름 또한 노이즈로 들리지 않자 카야는 그녀의 요청에 따라 그녀에게 치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렇게 카야와 치카는 차원과 공간을 뛰어넘는 아슬아슬한 만남을 이어갔고, 카야는 치카와의 만남을 통해 특별할 것 없는 자신이 치카와 만나는 목적과 시간의 의미, 그것을 넘어 카야의 세계와 치카의 세계 사이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어떤 관계의 법칙을 발견하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무미한 날들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그런데 그렇게 만남을 이어가면서 카야는 치카에 대해 어떤 것으로도 누르지 못할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 것을 깨닫게 되지만 그것을 애써 부정하고 감추려 하는데….



스미노 요루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독특한 제목의 소설 혹은 애니메이션은 다들 들어보거나 봤을 것이다.

이 소설은 바로 그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작가인 스미노 요루의 작품으로 센시티브한 감정 묘사가 주를 이루며, 작가 특유의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입을 완벽하게 이끌어내는 묘사와 스토리 전개로 인생과 사랑에 대한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무료한 일상을 살아가는 열여섯 살 소년 카야와 다른 세계의 소녀 치카가 신비롭고 환상적인 만남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사랑을 배워가고 사랑을 하는 모습은 순수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져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수줍고도 어설펐던 첫사랑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들의 만남은 어떠한 예고도 없이 부지불식간에 찾아왔다 홀연히 떠나간다. 그렇기에 더 간절하고 맹목적으로 바라게 되는 사랑이 아닐까.


그런데 소설은 그렇게 아름다웠던 사랑의 추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카야의 모습과 그의 내면의 성장을 보여주며 그런 아름다운 기억과 소중한 감정들이 쌓여 우리의 삶이 특별해지고 아름다워지니 지나간 순간에 집착하거나 그것을 잊는 것을 두려워하여 주저하지 말고 용기 있게 인생을 나아가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카야의 무심한듯하면서도 섬세한 감정선을 따라 방황과 성장, 사랑을 같이 경험하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을 두드리고 있는 사랑의 감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매일이 똑같은 일상이 지루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감정의 휴식처로 이 소설을 권하고 싶다.

독특하면서도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로맨스와 약간의 미스터리한 요소가 절묘하게 조화된 섬세하고 아름다운 이 소설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마법 같은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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