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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 - 동물들의 10가지 의례로 배우는 관계와 공존
케이틀린 오코넬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1월
평점 :
흔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다'라는 말을 쉽게 내뱉고는 한다. 물론 이러한 말들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 볼 때에도 상당히 뚜렷하게 사회를 이루고, 또 이러한 사회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여태까지 확인된 바만 본다면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이성적인' 사고를 하고, 언어와 같은 능력들을 구현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동물들이 인간과는 달리 사회적이지 않다든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정도가 적다고 단정 짓는 것은 조금 섣부른 것 같다.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를 읽다 보면, 동물들에게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다양한 의사 표현부터, 어쩌면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는 수준의 '의식'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일상에서 잃어버렸던 소소하지만 중요한 부분들이 다시 일깨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으로는 인사 의례, 애도 의례, 여행 의례가 있다.
일상에서 인사는 사람들이 만날 때나 헤어질 때 등 여러 상황에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일상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고 일상과 가장 가까운 행위이다. 사람들은 이토록 자연스럽게 하는 행위이지만, 만약 그 행위의 주체가 사람이 아닌 다른 동물들이라면 인사가 당연한 행위일지를 묻는 질문에 섣불리 답하기가 머뭇거려진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동물들이 서로를 보고 정중히 고개를 숙이거나, 아니면 손(혹은 앞발 등)을 내밀어 맞잡는 것과 같은 모습을 상상하게 될 것이고, 금세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동물들이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쪽으로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사라는 행위는 놀랍게도 인간만이 아닌, 수많은 동물들이 행하는 행위에 포함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반려견을 기르는 사람이라면, 아니 매체에서 묘사된 개를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여러 마리의 개들이 서로의 엉덩이 냄새를 맡는 모습들을 보았을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개들의 입장에서는 인사와도 같은 것이다.
이 책에는 여러 동물들의 인사 양식들을 볼 수 있는데, 그중에는 서로의 입가에 코끝을 갖다 대는 코끼리의 인사 방식, 뿔을 맞대는 검은코뿔소의 인사 방식 등이 있다.
코끼리의 인사 방식의 경우, 연약하여 상처를 입기 쉬운 코끝을 상대 가까이에 대며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상대가 무엇을 먹었는지 냄새를 통해 확인하는 것으로 진화하는데, 그 확인을 통해 먹기에 안전한 음식을 파악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사람의 인사도 이처럼 처음에는 조금 더 실질적인 의미를 지닌 행위였다가 점차 단순한 행위의 연속으로 변한 것이다.
악수가 등장한 배경을 보더라도, 자신이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인들의 행동으로부터, 서로의 팔뚝을 잡아 소매에 숨기고 있는 무기가 있는지 확인한 로마 시대의 악수법, 손을 맞잡고 흔들어 숨기고 있는 무기 등을 떨어트리게 만들려고 했던 의도로 보이는 중세 기사의 악수법 등 여러 의미를 가지고 변화한 끝에 현대의 형식적이면서도 일상적인 인사법이 된 것이다.
이렇듯 사람들을 포함한 많은 동물들이 인사를 하는데, 도대체 어떤 이유가 있기에 인사라는 행위가 이토록 많이 행해지고 또 이어져 온 것일까?
책에서 말하는 인사의 목적의 세 가지는 가까운 친구들끼리 유대감을 다지고 새로운 친구를 환영하는 것, 긴장을 풀고 화해하는 것, 대장에 대한 복종과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인사 의례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친밀하게 행동하는 행위로, 서로 간의 믿음을 시험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이 책은 인사가 가지는 여러 의미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읽다 보면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인사라는 평범하고 간단하지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행위에 대해 자신이 얼마나 소홀했는지를 돌이켜 보며 반성하게 된다.
인사 의례가 만남에 대한 의사 표현이라면 이에 대한 정반대, 즉 헤어짐에 대한 의사 표현도 있을 것이다. 헤어짐 중에서도 더욱 슬픈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죽음이다.
동물들이 애도를 한다는 개념 자체가 다소 이질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예상외로 동물들이 죽음에 대해 보이는 태도는 어떤 부분에서는 인간과도 다를 바가 없다.
이 책의 저자가 목격한 모습 중에는 한 무리의 얼룩말 가족이 죽음이 임박한 가족의 곁을 지킨 것이 있다. 이들은 다른 얼룩말 무리가 떠나고 난 뒤에도 그 자리를 지키며 아픈 가족 곁에 있었고, 그 얼룩말이 죽고 난 후에도 그 사체를 두고 차마 떠나지를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밖에도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죽은 새끼 기린의 곁을 사흘 동안 지키는 기린 무리의 모습, 무리에서 서열이 가장 낮은 늑대가 죽었음에도 6주 동안 이를 애도하는 모습을 보였던 늑대들의 모습 등 사람들이 죽은 이를 기리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들을 통해 죽음에 대한 애도가 가지는 의미를 되짚어 보게 된다.
앞선 두 의례와는 달리 마지막으로 꼽은 의례인 '여행 의례'의 경우에는 그 내용 자체는 많지 않고, 또 그다지 의례라고 할 만한 것들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오히려 종교적인 이유에서의 성지 순례부터 경제적,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인한 이민 등 더 많은 사례를 보인다.
물론 동물들도 생존을 위해서든, 아니면 무리를 따라서든 이동을 하곤 한다.
회색 고래의 경우에는 러시아 바다에서 얕고 안전한 멕시코로 가 새끼를 낳고 새끼가 튼튼해지면 물의 온도는 낮지만 영양분이 풍부한 북극 바다로 다시 돌아가는데, 위성 추적 결과에 따르면 한 마리의 회색 고래가 22,530㎞를 이동한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하는 동물인 북극제비갈매기의 경우, 한 해에 70,810㎞를 비행한다고 한다.
이처럼 동물들이 이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위인데, 인간의 인위적인 개입으로 인해 그 길이 차단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인간이라고 여행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은 여행을 계획하기만 해도 행복해지며, 정기 휴가를 떠날 경우 심장병이나 심장 마비에 걸릴 확률도 줄어드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여행에 제한이 있었던 지난 3년이 떠올라서 여행 의례에 대한 부분이 더 기억에 남은 것 같다. 하루빨리 상황이 나아져 완전히 코로나19 이전과 다름없는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도 한껏 담긴 선택이다.
사람들은 종종 다른 사람들을 윤리적으로 비판할 때 '금수만도 못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를 읽다 보면 '금수'라고 부정적인 의미를 담아 부르는 동물들이 실제로는 인간과 의사소통이 안 되고, 인간보다는 이성적인 사고 능력이 적을뿐 인간과 다를 바 없는 감수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동물들의 모습을 통해 조금 삭막해진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잊고 살았던 여러 의례들과 그 가치들을 재발견하게 된다.
일상 속 지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쉼터와도 같은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책으로써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를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