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그리면 거짓이 된다
아야사키 슌 지음, 이희정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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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는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밤 난조 고즈에의 집에서 시작된다.

고즈에는 샤워를 얼른 마치고 나와 머리를 닦으며 텔레비전을 켰다. 모든 채널이 태풍에 대한 속보를 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처참한 몰골의 건물과 함께 귀에 익은 마을 이름이 들렸다. 다른 채널로 돌려도 똑같았다. 피해 건물은 '아틀리에 세키네'로 건물 내에서 토사에 휩쓸린 것으로 보이는 대학생 강사 다키모토 도코와 난조 하루토를 수색 중이라고 전했다.


'아틀리에 세키네'를 운영하는 세키네 미카는 홋카이도의 산골 마을에서 자식이 많은 집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의 애정은 아들들에게 집중되어 있었기에 여덟 명의 아이 중 일곱째인데다 병약하고 얌전한 여자아이였던 미카는 거의 투명 인간 같은 존재였다.

그런 미카가 다섯 살 봄, 막내 삼촌이 깜빡하고 두고 간 화보집을 우연히 보고는 미술에 눈을 뜨게 된다. 그 뒤로 미술 교사였던 삼촌에게 그림 지도를 받고 학교의 미술 시간에 두각을 보이며 도내 미술 대회를 휩쓸던 미카는 중학교 2학년 때 병에 걸린 삼촌이 본가로 돌아오면서 삼촌의 원조로 삿포로의 미술 학원에 다니게 되며 본격적인 미술교육을 받게 된다. 미카는 아틀리에의 선생님들에게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는 칭찬을 들으며 도쿄에 있는 미술 분야 최고의 국립 대학교에 합격한다.


그러나 대학교 입학 후 미카는 곧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틀리에 선생님들도 인정했듯 자신은 천재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대학교는 미카 자신이 조금 우수한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특별한 존재들이 많음을 가르쳐 주었다.

이에 미카는 그림으로 인정받고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기 위해 '도쿄 인피니티 아트 어워드'에 응모하지만 2학년 때 딱 한 번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것을 제외하고는 수상하지 못했다. 결국 4년간 그랑프리 수상을 목표로 노력했지만 좌절했고, 졸업 후엔 보험 삼아 따두었던 교원자격증으로 사립 고등학교의 미술교사가 된다.


그렇게 무난하고 평온한 삶을 보내던 미카에게 대학교 때부터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청혼을 했지만, 그가 청혼할 때 무심코 한 말 한마디에 미카는 미술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했다.

미카는 청혼을 거절하고 학교를 그만둔 뒤 모아둔 돈과 퇴직금으로 아틀리에를 연다.


그러던 어느 날 아틀리에로 학원비를 낼 수 있을까 의심조차 드는 후줄근한 차림의 다키모토 가족이 방문했고, 견학을 마친 다키모토 씨는 만족해하며 자신의 딸 도코를 학원에 보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딸 도코를 천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미카는 그들이 부모이기 때문에 도코에게 과장되고 허황된 기대를 걸고 자신들이 걷지 못한 예술가의 길을 딸이 대신 걸어가 주길 바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곧 미카는 그것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녀가 도코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가진 경외감은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아무에게도 가져본 적 없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녀가 존경해 마지않는 화가 다이호 슈메이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조차도 그렇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4년 반 후 학원에 다니는 난조 고즈에의 오빠 하루토가 갑자기 아틀리에에 등록했는데, 보습학원과 영어학원만 다녔다는 하루토는 도코에 버금가는 천재였다. 사진으로 착각할 만큼 치밀한 하루토의 묘사는 미카가 존경하는 화가 다이호 슈메이의 특징과 다름없었다.

이렇게 빛을 뿜어내는 두 명의 천재를 마주하게 된 미카는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쏟을 수 있을 만큼의 행복을 느끼는데….



소설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총 4부로 되어있다. 각 부의 화자는 세키네 미카와 난조 고즈에, 다카가키 게이스케와 다키모토 도코로 각각 다르다.


소설은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이야기 곳곳을 흠뻑 적셔놓았다. 소설을 읽고 있으면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나조차도 붓을 들고 그들의 열정에 따라 스케치북 위에 색을 입혀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술에 있어 타고난 천재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것이 서툴고 부족하고 결여되어 있는 도코와 노력에 의해 천재가 된 하루토, 그리고 그들을 이끌며 자신의 꿈과 행복을 찾은 미카, 만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평범한 재능 때문에 엄마의 반대로 미술을 포기해야만 했던 고즈에, 도코와 하루코에 대한 열등감을 악의로 표출했던 다카가키 게이스케, 그들은 전부 미술을 통해 인생을 살아가고, 인생을 표현하고, 인생을 사랑하고, 깨달음을 얻는다.


소설을 읽으면서 타고난 도코의 천재성에는 감탄과 경외감만 들었지만 하루토에게는 존경심이 들었다.

도코가 천재임은 의심할 바 없지만 그보다 진정한 천재는 하루토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남의 재능을 시기하지 않고 그저 '자신도 잘 그리고 싶으면 잘 그릴 때까지 그린다'라는 단순한 진리를 실천한 하루토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닮아야 하고 닮을 수 있는 천재가 아닐까?

하지만 끝에 가서 도코는 자신의 중요한 것을 잃은 후에 진정한 천재로서의 빛을 발한다.

그 감동의 이야기는 책으로 꼭 직접 읽어보길 바란다.


이야기는 분명 미술이라는 소재를 둘러싼 천재들의 재능과 서로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그 사랑을 아름다운 미사여구로 치장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 사랑이 진실로 아름답게 느껴지고 더 애틋한 것 같다.

미카 선생님과 도코, 하루코의 소중한 인연과 서로를 채워주면서 충만하고 완벽해지는 그들의 삶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과 동시에 행복하고 따뜻해짐을 느꼈다.

"네가 그린 그림이라면 나한테는 거짓이 아니야."

그들의 내일의 모습은 어떨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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