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조금 공부되는 만화
노재승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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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시가는 학생들이 막연하게 많이 두려워하는 작품들이다.

아무래도 중간중간에 현재는 쓰지 않는 단어들이나 어려운 한자어들이 나오는 것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차라리 이상의 '날개'를 읽는 것이 더 속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의식의 흐름 기법을 방불케 하는 탱탱볼 같은 정서에 고전시가 저자들에 대한 정신과적 분석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작품들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딱 까놓고 보면 고전시가 자체가 그렇게 어렵다고 볼 수는 없다. 남아 있는 고전시가 중에서 실제로 학교에서 다룰 만한 것들은 한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들 또한 거의 다 천편일률적이고 토시 하나 정도씩만 고친 수준이라, 당시에 저작권법이 존재하였다면 소송에 걸려서 배상금만 왕창 물어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시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수능까지 넓게 잡고 보더라도 고전시가는 여러 가지 큰 맥락 상의 주제들의 대표작들만 잘 알고 있다면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는 것을 넘어 나오면 아예 반가울 수준이다.


그러나 수업 시간에 고전시가를 다루면 교사들도 막상 진도를 나가야 하는 입장에서 한 작품을 가지고 오랜 시간 학생들을 붙잡고 이해를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안 그래도 1차적으로 거부감을 가진 상태의 학생들은 2차로 빠른 속도의 수업 진도라는 충격이 더해지며, 결과적으로 "난 고전시가와 안 맞아"라고 하면서 고전시가를 마냥 어렵게만 생각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철의 <관동별곡>과 같은 작품도 정작 내용은 전혀 어렵지 않은데 시가 아니라 단편 소설 같은 길이에 지레 겁을 먹는 것이다. 그렇기에 쉽고 간단하게 고전시가를 접하고, 큰 흐름만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고전시가는 금세 나름 해 볼 만한 작품들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래도 조금 공부되는 만화 - 고전 운문편』은 학생들에게 드높아 보이던 고전 운문에 대한 벽을 허물고 좀 더 재미있고 알기 쉽게 고전 운문을 접하도록 안내하는 책이다.


이 책은 책의 표지에 커다랗게 그려져 있는 박삼술 할아버지가 주인공이다. 작가는 학생들과 공감할 수 있는 다른 젊은 캐릭터도 생각해 보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교과 진도를 나가야 하는 일선 교사들의 비애를 표현하기 위해 고집스럽고 후진 것 같으면서도 기이한 힘을 가지고 있는 노인이 영화 《부산행》이나 《미션 임파서블》, 《취권》의 내용과 같은 극단적 상황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물론 작가가 제일 잘 그릴 수 있는 캐릭터였다는 점도 있지만.



책의 내용 중 제일 처음 나오는 <구지가>는 고대 가요 중 유리왕의 <황조가>와 함께 학생들이 가장 먼저 접하고, 또 가장 자주 접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두 작품 모두 작품 자체만으로도 이해를 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배경 설화 같은 것들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더욱 쉽게 이해하고, 더욱 오래 기억에 남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눈과 머리에 쏙 들어오는 임팩트 있는 그림과 설명이 필요한 것이다.



<정석가>는 고려가요의 대표작 중 하나로, '딩아 돌하 당금에 계샹이다'라는 후렴구로 유명한 작품이다.

고려가요는 솔직히 <정석가>, 정서의 <정과정>, <가시리> 세 개만 알면 거의 다 안 것이라 싶을 정도로 많은 작품을 다루지는 않기에 오히려 <정석가>의 중요도가 높다고 볼 수도 있지만, 반복되는 후렴구를 제외하고 본다면 작품의 길이 자체도 그다지 길지도 않을뿐더러, 한 번 제대로 된 설명을 듣고 이해하고 나면 다음에 다시 보는 게 반가울 정도다.



성삼문은 조선 전기 시대의 문인으로도 유명하지만, 단종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건 사육신 중 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렇기에 성삼문의 시조는 작품의 글자 그대로를 해석하느냐, 아니면 단종에 대한 충절로 이해하느냐의 선택이 가능하기에 처음 접할 때에는 '하나로도 벅찬데 해석을 두 가지나 알아야 해?'라는 생각과 동시에 참을 수 없는 귀찮음이 몰려온다.

그렇지만 실제로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게, 성삼문의 시조를 해석할 수 있으면 다른 시조에서도 '아, 이 부분은 충절'과 같은 식으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성삼문의 시조는 짧고 간단하지만 도움이 되는 관문과 같은 것이고, 그 관문만 잘 넘으면 나름 수월해진다.


이 모든 것을 억지로 외우려고 하지 않고 여유롭게 만화로 즐기면서 나도 모르게 학습이 이루어지게 하는 책이 바로 『그래도 조금 공부되는 만화 - 고전 운문편』이다. 웃으면서 책장을 넘기다 보니 어느새 고전 운문에 대한 지식이 저절로 쌓여버렸다.

고전 운문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학생들에게, 그리고 취미로 고전 시가를 읊기를 원하는 성인들에게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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