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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 - 세상을 읽는 데이터 지리학
제임스 체셔.올리버 우버티 지음, 송예슬 옮김 / 윌북 / 2022년 11월
평점 :
학창 시절 내가 어렵게 생각했던 유일한 과목이 바로 지리였다. 지리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들은 하나같이 이해도 잘되지 않고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되는 과목이니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필사적으로 이해가 기초되지 않은 암기를 했었다.
그 후 고등학교 졸업한 뒤로는 지리 관련 책은 보지도 않았건만, 이 책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이라는 제목은 의아함과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자극하며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집어 들게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지도라고 하니 어불성설이라 생각했지만, 부제인 '세상을 읽는 데이터 지리학'을 보고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 하지만 읽으면서 놀라웠던 것이 '지리'를 어렵게 생각하고 싫어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의외로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지리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을 내용들인데다 주제들도 흥미로워서 어느새 페이지를 거침없이 넘기고 있었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와 같은 사람들은 지도를 단순히 지리적인 요소들을 표현하는 도구로만 이용하는 것이 아닌, 그러한 지리적 환경과 더불어 상호작용하며 존재하는 각종 요소들을 총체적으로 집합하는 매개체로 만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기술이 발달하고 지도를 만드는 기술이 더 발달하였음에도 훔볼트가 지도에 담아내려 했던 '하나의 거대한 총체'는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 잘게 나뉘어져 버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술의 발전이 지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담을 내용들이 더욱 많아져 하나의 지도에 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더 타당한 설명일 수도 있다.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기술들의 발전으로 인해 정보의 수집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쉬워졌다. 일례로 운동 앱으로 유명한 스트라바(Strava)에서는 2018년 사용자들이 어디서 운동을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지도로 표시하여 공개하였는데, 이로 인해 미국의 비밀 주둔기지가 드러나기도 했다.
정보를 제공한 미군들도, 그 정보를 바탕으로 지도를 제작한 스트라바 엔지니어 측도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이 예시에서 알 수 있듯이 데이터는 매 순간 사람들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불어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렇듯 불어나는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하여 지도를 제작하며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기쁨을 모두와 나눌 수 있기를 바랐다.
인터넷의 발달로 기록이 가능하게 된 것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마 이동에 관한 것들이라 생각된다. 물론 인터넷이 존재하기 이전에도 기록으로 남겨져 있는 내용들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이동과 같은 내용들을 기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영국이 부랑자를 강제 이동시켰던 시대의 기록을 보면, 어디로 가장 많이 이동하게 되었는지와 같은 정보들을 지도에 표기할 수 있다.
또는 과거 유럽 주변 지역들에 거주했던 이들의 정보를 취합하여, 스톤헨지를 건설했던 사람들이 실제로는 현재 영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직접적인 조상이 아닌 얌나야인이라는 사실과 그 당시 그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이 어디로 이동하였는지와 같은 정보들을 대략적으로나마 나타낼 수 있다.
그 외에도 과거 노예 무역 시기에 항해 내용들을 바탕으로 노예가 되었던 흑인 인구의 이동을 보았을 때, 예상외로 기록된 것의 절반가량의 노예가 브라질로 유입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고, 더 예상치 못하게도 카리브해에 있는 섬들이 그 영토는 다른 곳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작음에도 브라질 다음가는 노예 유입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관습과 문화와는 무관하게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진행했던 것이 바로 인구 조사이다.
한국 역사에서도 대표적으로는 조선 시대 태종 이방원의 호패법 실시가 있었고, 대한민국이 설립된 이후로도 어느 정도 안정화되자 출생 신고를 비롯한 주민등록 시스템이 1962년이라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구축될 정도로 과거와 현재를 모두 아울러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것이 인구 조사이다.
당연한 소리이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단순히 사람들이 어디에서 잠을 자는지 만을 두고 분석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외에도 사람들의 이동에도 중점을 두었는데, 그 예시로 미국의 주 분할이 있다.
미국의 주들은 다소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러한 경계들이 실제로 그 지역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생활권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의견이다. 저자들이 참고한 개릿 넬슨과 알래스데어 레이의 발표물에 따르면, 주들의 경계와 사람들이 생활하는 양상은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저자들은 불빛이 밝아지고 어두워짐을 2012년부터 2016년까지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도에 표시하여 국가별 변화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그 밖에도 여권 검사, 배기가스망, 강제퇴거, 어선 이동 경로 추적을 통한 불법 행위 적발 등 너무나 흥미로운 주제의 데이터를 표시한 지도 자료들이 책에 나와있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에는 뭔가 말장난 같아서 '술은 마셨지만 음주 운전은 안 했다는 건가?'라는 실없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막상 읽고 나니 책의 제목이 주제를 정말 잘 담아내었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자연스럽게 일상과 연결되거나, 조금 오랜 기간 점차 변화해서 알아차리지 못할 '보이지 않는' 정보들을 보이게, 그것도 단순히 거리감 있는 그래프나 표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 땅 자체와 연결 지어 보여주기에, 어떠한 통계 자료보다도 더 와닿는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 - 세상을 읽는 데이터 지리학』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도시, 국가 더 나아가 세계에 대하여 생각지도 못한 놀랄만한 사실들을 알아가는 기쁨을 누리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