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흑백합
다지마 도시유키 지음, 김영주 옮김 / 모모 / 2022년 9월
평점 :
이 소설은 현재의 데라모토 스스무가 1952년 중학교 시절 자신이 썼던 여름 방학 일기를 보고 당시 아사기 아저씨의 초대로 롯코산에서 지냈을 때를 회상해서 쓴 이야기와, 1935년 아사기 씨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아이다 마치코라는 젊은 여성 이야기, 1940년에서 1945년까지 호큐 전차의 차장으로 근무한 어떤 인물의 관점에서 16살의 구라사와 히토미와 교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된다.
1952년 도쿄에 사는 14살의 데라모토 스스무는 아버지의 오랜 친구 아사기 아저씨의 초대로 여름 방학 동안 오사카의 롯코산에 있는 아사기 아저씨의 오두막 별장에서 지내게 된다.
'호큐전철'에 근무하는 아사기 아저씨는 주말을 제외하고는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고, 아저씨의 부인은 식사때를 제외하고는 식당 옆방에서 호큐 백화점에 납품하는 목재 완구를 만들었다. 아주머니는 치장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처럼 남편이 입던 바지 같아 보이는 헐렁한 바지만 입었다. 아사기 아저씨의 아들 가즈히코는 스스무와 동갑으로 영리하고 말재주가 좋은 아이였다.
별장에 도착한 다음 날 스스무는 가즈히코의 안내로 별장 주변을 산책했고, 주변의 수많은 연못들 가운데 하나인 호리병 연못을 보러 갔다가 구라사와 가오루라는 동갑 소녀와 마주친다.
이후 스스무와 가즈히코, 가오루는 같이 어울려 다니며 서로에 대한 우정과 애틋함을 키워나간다.
1935년 도쿄전력 전신인 도쿄전등에 다니는 데라모토 씨와 호큐전철에 다니는 아사기 씨는 두 회사의 경영자를 겸임하고 있는 고시바 이치조 회장을 수행하여 해외 시찰 여행을 다녔다. 시찰지 중 한 곳인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 베를린 유학 경험이 있어 지리나 독일어에 익숙한 데라모토 씨가 환전하러 간 사이, 아사기 씨는 짐을 챙기며 고시바 회장을 보필했다. 그때 조용하면서도 무뚝뚝하고 날카로운 눈빛의 젊은 일본 여자가 아사기 씨에게 말을 걸며 쪽지에 쓰인 독일어 해석을 부탁했다. 이것이 조용하지만 행동하는데 거침없던 20살의 아이다 마치코와의 첫 만남이며, 베를린에 머무르는 동안 그들의 인연은 끊어질 듯 말 듯 계속되는데….
개인적으로 소설은 반전 미스터리라기보다는 한여름 14살 청소년들의 풋풋하고 싱그러운 첫사랑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청춘 소설 같은 느낌이었다.
여태껏 봐왔던, 사건이 발생하고 그것을 추리해나가는 장르소설과는 다르게 진행되는 이야기에 살짝 당황하며 소설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정말 속고 싶고 제대로 뒤통수 맞고 싶은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속지 않아버렸다.
가장 큰 이유가 제목이 너무 정직했다. 『흑백합』이라는 제목에서 백합이 일본어로 어떠한 장르를 의미한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제목이 그것이 의미하는 장르와 정말 순수하게 진짜 백합이나 책 내용 중에 나오는 어떠한 것을 가리켜 사용되었을 거라며 중의적인 해석을 내리고 이야기를 읽어나갔다. 차라리 백합의 의미를 모르고 읽었다면 속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사기 씨의 서술을 통해서만 직접 등장하고 나머지 챕터에서는 직접적 언급을 배제하고 있는 아이다 마치코라는 여성이 분명 이 소설의 중요 인물이며 소설 전반에 영향을 끼칠 거라 추측해, 베를린에서 보여줬던 성격이나 특징, 나이를 통해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들의 그것과 비교하여 읽어가면서, 비록 불친절한 단서들과 착각을 유도하는 작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정체를 맞추어버려, 오히려 그 사실에 나 자신도 놀라 버렸다.
그래서 조금 씁쓸하면서 허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본격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살짝 잔잔한 동화처럼 느껴지는 소설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우정과 배려와 이해와 풋사랑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가슴에 스며들어 오히려 날씨가 추워진 지금에 딱 어울리는 소설인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 이 소설은 첫사랑의 추억을 회상하는 그 시절의 아름다운 청춘 로맨스 성장 소설로 기억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