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다자이 오사무 지음, 장현주 옮김 / 새움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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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남자의 열 살 전후의 유년 시절의 사진, 성장하여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진, 마지막으로 나이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가장 기괴한 모습의 사진, 이렇게 세 장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사진들에서 기묘하고 이상하고 으스스함을 느꼈고, 마지막 사진에서는 그 느낌이 점철되다 못해 사진을 봤음에도 얼굴이 생각나지 않고 그저 기괴하다 못해 섬뜩하고 불쾌함만을 느낄 뿐이었다.


일본 도호쿠 시골의 부잣집에서 태어난 오바 요조는 어린 시절부터 남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의 상황에 잘 적응하지 못해 지옥에 있는 것처럼 괴로웠고, 오히려 자신을 부러워하는 남들이 행복해 보여 부러웠다.

자신의 행복의 관념과 세상 사람들의 행복의 관념에 대한 차이에서 오는 불안감으로 인해 요조는 인간으로서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우울감과 신경과민을 숨기며 오로지 천진난만함을 가장하여 익살스러운 괴짜가 되었다.

그는 학교에서도 우수한 성적과는 다른 이미지의 익살을 연기해 낮은 품행 점수를 받으며 장난꾸러기로 보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의 본성은 그런 장난꾸러기와는 완전 정반대였다.


요조는 어린 나이에 집안의 하녀나 하인에게 범해졌음에도 그 추악하고 잔혹한 범죄를 누구에게도 호소하지 못하고 힘없이 웃으며 참았다. 어차피 인간에게 호소하는 것은 쓸데없으니 그저 참으며 계속 익살을 부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요조에게는 인간들이 서로를 불신하는 가운데 태연하게 살며, 서로 속이는데 누구 하나 상처를 입지도 않고, 서로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맑고 밝고 명랑한 불신으로 가득 찬 세상이었다. 그것은 더욱더 그가 인간을 두려워하며 익살로 자신을 숨기게 만들었다.


공부를 잘했던 요조는 동북의 어느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먼 친척 집에 맡겨졌다. 그는 타향의 낯선 사람들 앞에서 몸에 밴 익살로 물오른 연기를 펼치며 전보다 심해진 인간에 대한 공포를 숨겼다. 그렇게 자신의 정체를 완전히 은폐할 수 있게 되었다고 안심한 순간, 백치 같다고 생각해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던 다케이치라는 학생으로부터 가장된 익살을 간파당하면서 불안과 공포를 다시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요조는 다케이치의 옆에 달라붙어 환심을 사려 노력하는데…….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보내왔다고 고백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요조.

요조는 자신이 본질적으로 인간의 삶, 행복한 삶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지만, 그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익살을 떤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없었기에 항상 공포와 불안감을 느끼는 주인공 요조는 이웃 사람의 괴로움의 성질, 그 정도를 전혀 짐작하지 못한다. 요조는 다른 사람의 실제적인 괴로움, 그저 밥을 먹으면 그걸로 해결할 수 있는 괴로움이야말로 가장 심한 고통이라 밝히며, 다른 사람의 평범한 일상이 자신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것임을 말한다.

하녀와 하인들의 가증스러운 범죄에도 '인간에게 호소하는 것은 쓸데없다'라고 인간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고 참으며 익살을 부리는 것을 선택한다.

그렇게 그는 삶의 순간순간마다 스스로에 대한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리고 처 요시코 사건의 상처로 인해 모든 것에 자신감을 잃고 다른 사람을 끝없이 의심하며 공포에 떨며 세상에서 영원히 멀어진다.

"신에게 묻는다. 신뢰는 죄가 되는가?"

죄의식과 불안과 인간에 대한 공포, 그리고 허위로 가득 찬 세상과 배신이 만연한 삶.

결국에 요조는 인간실격이 되며 완전히 인간이 아니게 된다.


다자이 오사무는 요조의 처절한 삶의 모습을 통해 불합리한 현실 세계에서 오직 인간답게 사는 방법은 인간실격이 되는 것뿐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비로소 평온함을 느끼니 행복도 불행도 없을 따름이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책을 읽으면서 요조의 처절한 투쟁과 고통이 가슴에 와닿으며 다자이 오사무가 느꼈을 인간 본성에 대한 의문과 삶의 번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아마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었기에 작가의 의도가 좀 더 깊게 와닿았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역시 책을 읽을 때는 번역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는 독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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