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의 것들 이판사판
고이케 마리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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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여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이야기 <얼굴>은 혼자 살던 모친이 자택에서 홀로 죽은 뒤 유품을 정리하러 고향에 내려간 구니히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도쿄로 돌아가는 날 주위의 풍경이 그리워 농로를 따라 잠시 걷다가 문득 주변이 고요해지며 구니히코는 언짢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러고는 멀리서 자신 쪽으로 기이하게 확확 다가오는 낡은 기모노에 양산을 쓴 여인과 맞닥뜨린다. 지나쳐 갈 때 갑자기 뒤로 젖혀지는 양산에 밑으로 드러난 반야면을 쓰고 있는 여인. 순간 구니히코의 머릿속에 옛 기억의 단편들이 떠오르는데….


두 번째 단편 <숲속의 집>에서 '나'는 15년 전 산장 근처에서 일어난 버스 사고로 목숨을 잃은 친구 미사키와 그녀의 아버지 쓰치야 씨 생각에 상실의 슬픔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공포와 불안으로 깊은 숲속에 있는 쓰치야 씨의 작은 산장에 오는 것을 망설였다. 그러나 이번엔 굳게 마음먹고 미사키의 오빠의 부인 아유미 씨에게 연락해 산장 이용을 허락받는데….


<히카게 치과 의원>에서는 바람난 남편과 이혼 후 외사촌이 사는 지방 도시로 이주한 가스미는 과자를 먹다 벗겨진 크라운을 치료하러 치과를 찾아 낯선 도시를 헤매다가 '히카게 치과 의원'이라는 오래된 치과를 발견하고 들어가서 치료를 받는데….


그리고…

남편 조노우치 아키라의 사십구재를 마친 1주일 뒤, 외출에서 돌아온 '나'가 길고 어둑한 복도에서 예전에 자살한 오스트리아인 망령 조피의 모습을 목격하게 되는 <조피의 장갑>.

프로그램 제작사를 운영하는 다키타에게 자신의 심령 특집 프로그램을 위해 심령현상에 밝은 사람이나 무서운 경험을 한 사람의 소개를 부탁한 연출자 미스즈와 그 이야기가 나오는 <산장기담>.

피처럼 진한 저녁놀을 보면 어린 시절 정신이 이상한 남자에게 납치될 뻔했던 기억과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것과 이웃으로 살며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비밀을 삼키며 살았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미에코의 이야기 <붉은 창>.



일본 소설계에서 여러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호러 분야에서만큼은 독보적인 존재로 '호러 소설의 명수'라고 불리는 고이케 마리코의 소설을 『이형의 것들』로 처음 접했다.

소설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결코 원색적이거나 가볍지가 않다. 슬그머니 척추를 따라 올라오며 천천히 전율하는 공포를 느끼게 하는 정교하고 섬세한 표현들로 인해 호러 소설도 고급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느끼게 하는 중독적인 공포였다.


<산장기담>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접해본 방식의 충격적 전개를 주는 강렬한 이야기지만, 나머지 단편들에서 이형의 것들을 맞닥뜨리는 인물들은 이 세상에 발을 걸치고 있는 저세상의 것들을 호들갑스럽지 않게 받아들이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렇게 이형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에 그들과 인간의 공존은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소설을 다 읽은 뒤에도 공포가 내 몸에 흐르는 피에 아로새겨진 듯 불현듯 스멀스멀 되살아나 이형의 존재가 내 주위에 실재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잔잔하지만 강렬하고 아름다운 호러 소설 『이형의 것들』에 한동안 빠져 지낼 것 같다.

고이케 마리코의 또 다른 호러 소설이 국내에 빨리 출판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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