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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여관 미아키스
후루우치 가즈에 지음, 전경아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8월
평점 :
소설은 계절에 맞지 않게 늦더위가 계속된 9월 어느 날, 한 젊은 커플이 뜨거운 태양에 그대로 노출된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차 안에 다섯 살 난 딸을 방치하고 게임 센터에서 놀러 가 방치된 소녀가 열사병으로 목숨을 잃는 것으로 시작한다. 소녀는 몽롱해지는 의식 속에서 언젠가 엄마와 단둘이 갔던 깊은 산속 맑고 푸른 호수를 떠올렸다. 그리고 아빠에겐 비밀로 하고 다시 오자는 엄마와의 약속을 떠올린다.
그렇게 죽어가는 소녀를 오직 호박색 눈을 가진 검은 고양이만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자신을 탓하며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10대부터 20대 초까지 탤런트로 활동하다가 30대가 된 지금은 같은 기획사에서 총괄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미사, 어린 시절 외조부모에게 자신을 맡기며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한 엄마를 기다렸지만 결국 재혼하며 자신을 버린 엄마에게 받은 상처로 자신에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며 삶의 목적도 의욕도 없이 살아가는 기요토, 도쿄 출신이지만 도쿄 도내에서 유일하게 낙후된 촌마을 출신이라는 열등감을 가지고 평생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이용당하고 배신당한 유카코.
중학교 시절 미식축구부의 주니어판인 플래그풋볼 클럽에서 즐겁게 활동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미식축구부에 들어갔지만 감독 겸 고문인 시오노 선생의 고된 훈련과 질책으로 여름방학 합숙소에서 도망쳐 나온 겐토, 뜻하지 않은 임신으로 경력 사칭이 되어버려 계약 해제 통보를 받고 애인조차 위해를 가한 소노코.
각자의 마음속에 무거운 짐을 안고 방황하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깊은 산속 검은 숲을 배경으로 서 있는 '여관'에 도달하게 된다.
그 여관에서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무섭게 아름다운 오너, 다갈색 머리의 경박하고 프로 의식 없어 보이는 호텔 보이, 묘하게 사람을 깔보는 듯하는 통통한 프런트 여직원, 2미터에 가까운 큰 키에 피부와 머리가 하얗고 오드아이인 아일랜드 출신 요리장 팡구르가 손님들을 맞이한다.
이야기는 시작부터 학대와 방임으로 죽어간 소녀의 이야기를 말하며 무겁게 시작한다.
그리고 시종일관 무겁고 침울하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유지되며 손님들은 여관에서 현실과 꿈과 환상의 모호한 경계를 경험한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도 결코 보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마다 푸른 호수와 학대로 죽은 소녀와 오후 네 시를 알리는 괘종시계, 거기서 나오는 각기 다른 고양이 형상이 등장한다. 오너는 그 고양이 형상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해주는데 그것은 손님들 각자의 사연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정작 중요한 여관 직원들에 대한 사연은 말해 주지 않는다. 단지 그들이 모두 보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을 만나러 가려고 여관에서 일하며 수련하는 것뿐이라는 사실만 말해준다. 도대체 무슨 수련을 어떻게 한다는 것일까? 보고 싶은 사람은 그냥 보러 가면 되는 게 아닐까?
여관은 마음속에 무거운 짐을 안고 방황하는 손님들을 끌어들인다. 이 소설은 악인을 벌주는 이야기가 아니기에 그 손님들이 결코 악인일 필요는 없다. 손님들은 단지 나약한 인간이기에 어리석고 약하고 애달픈 사연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여관이 손님들에게서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손님에게서 숙박료로 받아 가는 각기 다른 형태의 대가일 뿐인 것일까?
그렇게 궁금증을 키워가는 여관 직원들의 목적은 마지막에 가서야 밝혀진다.
아니 오너의 사연과 목적이 밝혀진다고 해야 올바른 표현이겠구나. 오너의 목적이 밝혀졌을 때 그 차가운 얼굴 뒤에 감춰진 누구보다 따뜻하고 희생적인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런데 나머지 세 명의 사연을 밝히지 않은 것은 후속작을 기다리라는 작가님의 빅 픽처일까?
『고양이 여관 미아키스』는 오싹하고 등줄기가 서늘하고 섬뜩하지만 끝내 감동을 안겨주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