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상자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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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화차』를 소설이 아닌 일본 드라마로 접했기에 실제로 그녀의 작품을 온전한 소설을 접하는 것은 이 『인내상자』가 처음이다.

이 책은 여덟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소설집으로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소설이다.

여덟 편 모두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도피>와 <십육야 해골>, <비밀>이 인상 깊었다. 표제 소설인 <인내상자>는 많은 사람들이 서평으로 다루니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려고 한다.


<도피>에서 주인공 가스케는 본래 '히사고야'라는 음식점의 조리사로, 어린 나이에 고용되어 잔심부름과 청소부터 시작해서 주방 일을 배워 조리사가 된 인물이다. 그는 히사고야의 주인 덕에 자신이 처자식을 부양하며 살 수 있는 거라 생각하고 히사고야의 주인을 은인으로 생각했다.

주인의 지인인 오기야 도쿠베에가 중풍으로 쓰러져 오기야 주점이 곤경에 처하자, 주인이 히사고야의 네 명의 조리사 중 자신을 오기야로 보냈을 때도 은혜를 갚는다는 생각으로 감사히 그곳으로 출근했다.

그런데 도쿠베에가 쓰러지자 평소 오기야의 단골이자 안주인 오린에게 흑심을 품고 있던 유키치라는 젊은 사내가 가스케에게 오린의 곁에서 떨어지라며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며 위협을 했고, 급기야는 퇴근하는 가스케에게 칼을 휘두르까지 했다. 이에 가스케는 목숨에 위협을 느껴 고민 끝에 사무라이였다가 낭인이 된 고자카이에게 신변 보호를 부탁하는데….


<십육야 해골>에서 열다섯의 후키는 작년 말 대화재로 부모와 동생이 죽자 그녀를 맡게 된 외숙부의 소개로 '오하라야'라는 쌀가게에 취직하게 된다. 외숙부는 좋은 일자리라며 후키를 가게의 하녀로 취직시켰지만 실은 일하던 점원들조차 하나둘 그만두는 망해가는 가게였다. 기댈 곳 없는 후키는 그곳에서 열심히 일했고 그녀보다 두 살 많은 오사토라는 하녀와도 속을 터놓을 만큼 친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오사토는 후키에게 앞으로 기분 나쁜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일이 벌어져도 당분간은 참아야 된다며 그것에 대해서는 하녀장 오미치 씨가 얘기해 줄 것이라는 뜻 모를 이야기를 한다. 그런 이야기에 잠을 설친 후키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변소에 가고 싶어졌고, 한밤중 어두운 복도를 지나 변소에 갔다가 바로 눈앞에서 변소문이 닫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안으로 사라지는 새하얀 손끝과 옷소매.

아무리 기다려도 변소에 들어간 사람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기다리다 못해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기척이 없었다. 이에 문을 열어봤지만 변소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 문득 변소 발판 밑에서 무언가 올라와 후키의 얼굴 가까이 다가오는데….


<무덤까지>는 한 가족의 구성원 각자가 가지고 있는 비밀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가야 이치베에다나의 관리인 이치베에와 얼마 전 죽은 아내 오타키는 젊은 시절 아이를 가지려 노력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이치베에는 월번으로 근무할 때 발견한 미아인 오노부와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 남매 도타로와 오유키를 데리고 와서 거두었다가 그대로 의붓자식으로 들여 훌륭하게 키워냈다.

큰 딸 오노부는 얼마 전 결혼해 첫아이를 낳았고, 도타로는 술도매상에 취직해 수석 데다이까지 출세했다. 막내딸 오유키 역시 얼마 전 어머니 오타키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케닌 저택에서 신부 수업 겸 하녀살이를 하며 주인의 귀여움을 받았다.

그런 오유키 앞에 남매를 거둘 수 있는 여유가 생겨 이제는 데리고 가겠다며 15년 전 그들을 버리고 간 친모가 나타났다. 이에 오유키는 집에 놀러 온 언니 오노부에게 친엄마를 만났다며 15년간 숨기고 있던 비밀을 털어놓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왜 다들 미야베 월드 제2막 시리즈에 열광하는지 이해가 갔다.

『인내상자』는 우리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에도시대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과 동시에 가독성이 좋으며 이야기가 심하게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상상력을 무한대로 끌어올리며 작품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요소가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다.


특히 <십육야 해골>은 읽으면서 행간에 내포된 의미를 눈치챘을 때 전율이 일며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왜 오미치가 저주를 받은 주인을 제외한 고용인들조차 십육야에 밖에 나가지 못하게 했는지, 초대 당주는 정말 저주로 죽은 게 맞는지 의문이다. 십육야의 모습은 저주가 아닌 그저 죄책감으로 인해 오하라야에 내려오는 광기처럼 느껴졌는데, 마지막 장면은 나에게 『어셔가의 몰락』의 마지막 부분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도피>에서는 빨래하던 훈도시를 흔들며 인사할 정도로 다소 코믹하고 어리숙하다고 느껴졌던 사무라이 고카자이가 실은 유능한 고위직 장수였다가 주군의 광기로 핍박받아 어쩔 수 없이 낭인이 되어 숨어 다니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더 이상 그는 무능한 낭인이 아닌 어쩔 수 없이 본래의 자신을 숨겨야 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무덤까지>는 비밀을 밝힐 수 없는 상대에게 가족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비밀이 밝혀지고 입 밖으로 발설되어 현재의 행복이 사라져 버릴까 독자인 내가 조마조마해 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눈치는 채고 있지만 그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현재의 행복이 깨어질까 알고 있음을 드러내서는 안되는 상황. 그래도 오늘은 그들의 행복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데 안도감을 느끼는 모습에 오늘만이 아닌 그들의 영원한 행복을 기원하기도 했다.


이야기들은 범죄를 추리하는 이야기부터 감추고 싶은 인간의 비밀, 인간의 심리를 자극하는 이야기, 초자연적인 이야기, 인간의 비극을 다룬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또한 이야기들은 단편이라 늘어지는 것 없이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빠르게 진행되어 읽는데 지루할 틈이 전혀 없었다.

벌써부터 다음에 발간될 책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놀람, 슬픔, 경악, 공포, 측은지심 등 모든 감정을 한꺼번에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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