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화성 탐사선을 탄 걸리버 - 곽재식이 들려주는 고전과 과학 이야기
곽재식 지음 / 문학수첩 / 2022년 7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726/pimg_7114282153498330.jpg)
구세대들에게는 너무나 당연시되던 문과와 이과의 구분이 요즘 세대들에게는 의미 없어진 지 오래다. 아이들의 교육과정은 문과와 이과의 구분없이 공통 과목을 교육받으며 단지 자신의 흥미와 필요에 의해 선택 과목을 결정할 뿐이다.
이 책은 말도 안 되는 인간의 이분법적 구분의 오류를 지적하며 고대부터 전해지는 문학의 걸작들 속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과학과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을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이걸 이렇게 볼 수도 있네?"였다. 정말 감탄사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이 책에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여러 이야기들 속에 담긴 과학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내었다. 심지어 현대의 이야기라서 과학에 관한 내용들이 포진해 있는 것도 아니고, 가장 오래된 것은 『길가메시 서사시』나 『일리아스』처럼 수천 년이 지난 이야기도 있다. 그러한 이야기들 속에서조차 과학을 찾아내는 작가의 통찰력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중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은 『수호전』과 『일리아스』에 대한 내용이다.
『수호전』은 송나라 시대 양산박에 모인 108명의 두령들의 이야기이다. 『수호전』은 독특한 특징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그건 주인공인 108 두령들에 대한 설명만 주야장천 늘어놓는다는 것이다. 각각의 두령들이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고, 어떤 능력을 지닌 이들이며, 또 어떤 연유로 범죄자가 되어 관군에게 쫓기던 끝에 양산박에 도착하였는가 등등. 이 정도까지 늘어놓은 다음에는 그다음 두령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원래부터 이러한 형식이었던 것은 아니고, 전해지면서 이러한 형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소설의 전개 과정인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기나긴 발단 단계 끝에 이제 전개가 보이나 싶으면 '컷!'과 함께 막을 내리는 셈이니 기괴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특징을 『수호전』의 배경이 되는 송나라의 사회 상황에서 찾고 있다. 송나라는 상당한 경제 발전을 이루면서 문화 발전을 이루었다. 이러한 변화들이 있었기에 당시 사람들은 다양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졌고, 그중에서 도적들에 관한 이야기가 모인 것이 『수호전』일 거라는 이야기다.
요즘도 그렇지만 어떤 사건에 대하여 발단 부분에 관한 소문만 무성할 뿐, 대부분 지금 어떻고, 발단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에는 많은 관심이 없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좌우지간 송나라의 발전 과정이 어떻게든 『수호전』의 내용에 영향을 미치기는 했을 것이다.
송나라의 발전을 보여주는 예시 중에는 시계가 있는데, 지금 사용하고 있는 시계를 생각한다면 실망이 크기는 할 것이다. 정확한 작동 원리는 알 수 없지만 이름과 기록된 책의 내용으로부터 미루어 보았을 때, 물로 물레방아 또는 바람개비 등을 회전시켜 매시간마다 나무 인형이 북을 치게 하는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비록 그 사이의 간격이 크기는 해도 해의 높이 등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것보다는 훨씬 정확하면서도 편리하였을 것이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726/pimg_7114282153498331.jpg)
철기는 예전부터 전쟁의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우리나라도 고조선부터 시작해서 철제 무기를 사용하였고, 특히 고구려의 기록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고구려에 대하여 떠올려보면 여러 가지가 떠오를 수 있는데,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릴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철갑을 두른 말들일 것이다.
고구려는 말까지 갑옷을 입었다는 기록이 있고, 실제로 그 갑옷이 여럿 발견될 정도로 철제 병기를 많이 이용하였던 것 같다.
그런 고구려에 어이없는 이야기가 하나 전해진다. 고구려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던 쇄갑(鎖甲)과 섬모(銛矛)가 있는데, 이들이 과거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이 이야기에 대하여 바람에 휩쓸려 벌레나 작은 물고기가 비와 함께 내리는 경우는 있어도, 무거운 쇄갑과 섬모가 이처럼 내려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솔직히 하늘이라고 해도 구름 위는 둘째치고, 롯데월드타워 꼭대기에서만 떨어져도 갑옷과 창은 커녕 탱크도 형체조차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추락한 장소에 웬만한 초가집 두세 개는 들어가고도 남을 구멍이 생기는 것은 덤이고 말이다.
철제 무기들은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역사와 함께했고 지금도 별반 다를 바는 없다. 저자는 『일리아스』의 명장면 중 하나로, 헥토르가 마지막 출전을 할 때 헥토르의 아들이 헥토르의 투구를 보고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을 꼽는다. 이러한 명장면 속에는 전쟁으로 인해 생기는 슬픔도 담겨 있다.
『일리아스』의 배경이 되는 트로이 전쟁은 헬레네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를 따라가며 발생하였다. 이때 헬레네가 건너갔다는 전설이 서린 바다가 '헬레스폰토스'로, 현재에는 다르다넬스 해협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2017년부터 다르다넬스 해협에는 치낙칼레 대교라는 다리가 건설되고 있는데, 완공된다면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가 된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예시를 들며 과거에는 전쟁의 상징이었던 바다 위에 21세기의 기술로 평화와 경제 발전을 위한 구조물이 드리워지고 있다고 했다. 또한 이 다리의 완공으로 철은 무기로써의 가치보다 오랫동안 나뉘어 살고 있었던 사람들을 이어주는 평화와 공존의 재료로 쓰는 게 더 어울린다는 점을 알려주는 교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며, 철제 무기는 모두 사라지더라도 만나기 힘들었던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만나게 해줄 철기는 오래오래 남아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이 외에도 『화성 탐사선을 탄 걸리버』는 『천일야화』, 『오 헨리 단편집』 등 누구나 읽어봤을 고전 속에 나타난 과학기술과 그 발전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이야기를 읽을 때 그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면서 이야기의 배경이나 이야기에 반영되어 있는 요소들은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은 이렇게 사람들이 무심코 넘어갔던 부분에 담겨있는 숨어있는 과학에 관심을 갖게 해 좀 더 폭넓고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어른들뿐만이 아니라 청소년들도 꼭 한번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