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메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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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의 자살 시도 끝에 끝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해 요절해 버린 비운의 천재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사실 그의 삶부터가 나의 취향은 아니었다. 정신세계가 그렇게 고독하고 암울해서 자살시도를 거듭할 만큼 삶에 대한 의지가 없고 피폐한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 나 또한 우울해질 것 같아 읽을 기회가 있어도 굳이 읽기를 거부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용기를 내어 『인간실격』을 읽게 되었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소설을 관통하는 작가의 익살과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고뇌로 인해 그가 가졌던 삶에 대한 불안과 번뇌에 공감하며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에게 매료되었다.

나는 그저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는 『인간실격』에 드러난 것처럼 삶을 방조하고 삶에 염증을 느끼며 자기혐오로 점철된 작가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세계는 오로지 우울하고 시니컬한 작품이 대부분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달려라 메로스』에 실린 작품들은 다자이 오사무의 자기혐오라는 단어와는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 적당한 유머를 보여주고 타인에 대해서 무관심하지 않은 측은지심도 보여주는 한편, 일상적인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들려주는 등 과연 이 작품들이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들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민음사>에서 출간한 『달려라 메로스』는 <달려라 메로스>를 포함해 크게 13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 제목이기도 한 <달려라 메로스>는 일본 교과서에도 실린 유명 작품이라고 해서 기대를 많이 하며 읽었다. 적당한 유머와 교훈을 가지고 있는 이 소설은 정말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다른 작품들과도 느낌이 달랐다. 역시 끝부분에 (옛 전설과 실러의 시에서.)라는 첨언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순수한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읽다가 웃음을 터뜨린 부분이 있었는데, 메로스가 왕을 죽이러 느릿느릿 왕의 거처로 갔다가 어이없이 붙잡혀 왕에게 처형을 당하게 되자 여동생의 결혼을 치를 수 있게 처형까지 사흘간의 말미를 부탁하며 세리눈티우스의 의사는 묻지도 않은 채 그를 인질로 잡으라고 하는 부분이었다. 설상가상 자신이 오지 않으면 그 친구를 목 졸라 죽이라니….

졸지에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한밤중에 인질로 왕성에 끌려오는 세리눈티우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예전에 우리 아이가 나랑 이야기하다가 뭔가 억울했는지 "진짠데, 왜 안 믿어줘요? 형의 목을 걸고 맹세할 수 있어요."라고 했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웃음이 터졌었다. 옆에서 어이없어하던 큰 아이가 왜 자신의 목을 거냐고, 걸고 싶으면 니 목이나 걸라면서.

메로스도 왜 굳이 오랫동안 만나지 않은 친구를 본인 의사도 묻지 않고 인질로 걸었을까?

결국 <달려라 메로스>가 말하고자 하는 약속에 대한 믿음과 신의와 신뢰에 대한 교훈을 극대화하기 위해 친구의 목숨을 건 것이겠지?



또한 이 책에서는 일본의 옛날이야기 네 개를 엮어 들려주고 있다.

옛날이야기 중 한 개인 <혹부리 영감>은 13세기 전반에 성립된 설화집인 『우지슈이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약간의 디테일만 빼고 우리나라 전래동화 <혹부리 영감>과 흡사했다. 그래서 우리나라 <혹부리 영감>에 대해 찾아보니 역사는 확실하지 않지만 조선 중기 강항의 『수은록』에 <혹부리 영감>은 일본의 유명한 이야기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조선어독본』에 지속적으로 수록되면서 우리나라 대표 동화가 되었다고 한다.


<우라시마 씨>는 우라시마가 아이들이 골리고 괴롭히는 거북을 구해 바다에 놓아준 적이 있는데, 그 거북이 은혜를 갚겠다며 다시 나타나 그를 용궁으로 데려가는 이야기이다. 며칠간 용궁에서 생활한 후 고향이 그리워 돌아왔더니 고향의 모습과 사람들은 모두 없어져 허허벌판뿐이었는데다, 열지 말라던 용궁의 선물인 조가비를 여는 순간 우라시마 본인은 삼백 살의 노인이 되어버린다는 이야기이다.

그토록 친절을 베풀어놓고 용궁의 선녀는 왜 보물이 아닌 어찌 보면 저주의 선물을 주었을까? 이건 일반적인 시선이고 다자이 오사무는 그것이 결코 우라시마에게는 불행이 아니었다고 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권선징악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 <카치카치산>. 그런데 이 이야기에 대해서도 다자이 오사무는 역시 익살스러운 풀이를 하고 있으니 책에서 확인해 보길 바란다.

<혀 잘린 참새> 역시 원래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자이 오사무식 유머와 특유의 말투로 그만의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이 밖에도 <만원>이나 <황금 풍경>, <아, 가을>, <축견담>, <도쿄 팔경> 등은 다자이 오사무 본인의 이야기를 적은 소설인 것 같아 읽는 내내 주인공에 다자이 오사무를 대입해 읽어내려갔다. 특히 <도쿄 팔경>은 <인간실격>처럼 그의 인생의 제법 긴 단면을 이야기하면서도 <인간실격>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헤어지겠습니다."로 시작하며 순수했던 화가 남편이 인정받고 성공한 후 속물적인 인간이 된 것을 비판하는 <여치>에서 다자이 오사무는 아내의 입을 빌려 그녀의 남편만이 아닌 그러한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처음부터 시니컬한 『인간실격』을 접하기 꺼려진다면, 재치 있는 유머와 자전적 수필 같은 소설, 옛이야기의 다자이 오사무식 해석 등으로 구성된 종합선물세트 같은 『달려라 메로스』를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분명 다자이 오사무의 매력에 눈뜨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선물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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