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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의 여름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5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612/pimg_7114282153443586.jpg)
시즈오카 현 옛 '미래 학교' 터에서 발견된 여아의 백골 시체가 자신의 손녀일지도 모른다고 확인을 요청한 요시즈미 다카노부의 의뢰를 받아 변호사 곤도 노리코는 대리인 자격으로 미래 학교 도쿄 사무국을 방문했다. 노리코가 책임자나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을 부탁했음에도 노리코를 맞이한 다나카라는 여성은 자신의 지위나 직함은 밝히지 않은 채 노리코에게 적의를 가지고 쌀쌀맞은 태도로 자신들과는 관계없는 일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정말 관계가 없고 그들은 모르는 일인 걸까?
한 달 전 노리코는 텔레비전을 켜둔 채로 딸 아이코의 어린이집 신청서를 작성하던 중 텔레비전에서 들려온 어떤 단어에 반응해서 고개를 들었다. 화면에서는 단체 시설 부지에서 여아의 백골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자막과 함께 해당 장소를 비추는 영상과 참고 자료 영상에 이어 뉴스 캐스터의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미래 학교'.
옆방에서 남편과 딸의 노는 소리가 크게 들려 노리코는 서둘러 텔레비전 음량을 높였다. 뉴스를 멍하니 바라보며 자신의 잊혀졌던 기억을 떠올리던 노리코는 텔레비전 소리가 너무 큰 것 아니냐며 아이코와 함께 다가온 남편 에이지의 얼굴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화면을 가리키며 말을 꺼냈다.
"나, 여기서 지냈어."
노리코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 친구 유이의 어머니의 권유로 3년간 여름방학에 일주일씩 시즈오카 현에 있는 '미래 학교'의 배움터로 합숙하러 갔다. 노리코뿐만 아니라 동급생 중에 같이 갔던 다른 아이도 있었다. 일주일 동안 부모와 떨어져서 평소와 다른 환경인 자연 속에서 모두 함께 지내며 학교 공부 같은 것이 아니라 강가에서 놀거나 빙수를 먹고, 아이들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다양한 것에 대해 문답하며 스스로 사고하는 방식을 배우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래서 합숙하는 일주일 동안은 지루하기도 했고 그곳에서 친해진 친구들과 충돌하기도 했지만 헤어질 때는 눈물이 났었다.
그리고 그녀의 기억 속에 또렷한 배움터 학생이었던 미카와 시게루.
노리코는 그것이 그저 여름 한때의 추억일 뿐이었다 생각했었다. 의도적으로 숨기려고 한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에서 '미래 학교'의 이름을 다시 듣기 전까지 잊었다는 인식조차 없을 정도로 잊고 있었다.
그러나 백골 시체 뉴스를 다루는 텔레비전에서는 '신흥종교'라는 단어와 '미래 학교'를 연결해 논의했고, 남편조차 노리코의 설명을 들은 후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녀가 '미래 학교'의 여름 합숙에 참가했었다는 말을 하지 않도록 이야기했다.
그런 그녀에게 그녀의 직장인 야마가미 법률사무소가 오랜 기간 고문을 맡고 있는 작은 건설사 사장인 아라야 씨로부터 전화가 왔고, 아라야 씨는 자신의 지인인 요시즈미 씨가 '미래 학교'에서 발견된 시체가 혹시 자신의 손녀는 아닐까 걱정한다며 예전에 자신을 도와줬던 것처럼 요시즈미 씨도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노리코는 자신이 종교 문제의 전문가가 아니었기에 그 분야를 전문으로 다루는 다른 사무소를 소개하려고 생각했지만 정작 입으로는 승낙하는 말이 나왔다.
그렇게 해서 만난 요시즈미 부부는 자신들의 사연을 이야기하며 자신들은 단지 이번에 발견된 유골이 자신들의 손녀인지 아닌지 확인만 해줬으면 좋겠다고 의뢰한다.
"손녀의 이름은……."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612/pimg_7114282153443587.jpg)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한 이상적인 교육이란 어떤 것일까?
이 책에서는 아직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자주성을 키워주겠다는 목표로, 아이들을 부모들과 분리해서 그들을 관리하는 소수의 선생님들만 남겨둔 채 그들만의 조직을 만들고 아이들만으로 생활하게 한다. 누구 한 명이 뛰어난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잘할 수 있게 되고 모두 함께 커 나간다는 목표를 지향하면서.
그런데 그 목표가 아무리 이상적이더라도 과연 그 방법이 올바른 것일까?
아무리 이상적이고 아이들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여 아이들끼리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모들의 의사에 의해 선택된 것이지 아이들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성장기에 가족 간에 느껴야 되는 유대감을 가족이 아닌 아이들끼리 느끼게 하는 것만으로 완벽한 인격이 형성되고 행복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은 하나의 이념을 가진 이들만으로 움직이는 세상이 아니므로 서로 다른 이념과 사고방식을 받아들이고 절충하고 보완하며 살아가야 한다.
추구하는 생각과 이념이 이상적이라고 해서 그들만의 사회를 이루고 살아간다면 그 안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성장하여도 결코 그들의 테두리를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우리 사회가 바라는 조건이 아닌 그들만의 이상에만 맞추어 그들만의 조직에 적합한 인간으로 성장해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그들만의 조직에 남게 되고 그들만의 사회를 재생산하고 유지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할 뿐이다. 그들의 교육은 이미 미래지향적인 것이 아니고, 자신의 힘으로 세상과 부딪쳐 살아가게 하는 힘을 빼앗고 자신들의 폐쇄적인 사회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는 인간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런 교육이 과연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교육인 걸까?
아이들에게는 반드시 가정이 필요하다. 자신을 걱정하고 생각하는 부모의 존재가 아이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혹은 진짜 부모가 아니어도 가족이 되어줄 어른이 가까이에 있는 환경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자주성과 자립심을 키워주겠다고 굳이 아이들만의 세상을 따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정에서도 얼마든지 아이들이 스스로 살아갈 힘이나 학력이나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의 행복과 그들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다시 한번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소설은 상당한 분량임에도 사건의 진행과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에 따라 읽혀지며 가독성이 뛰어났다. 잔잔한 듯하면서도 충격적인 반전들이 소설에 군데군데 내재되어 있어 긴장을 놓칠 수 없었다.
자칫 다소 무거운 주제라 여겨질 수 있지만 읽고 나니 가슴 뭉클하고 내일을 향한 희망을 기대해 보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이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612/pimg_7114282153443588.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