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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를 알면 장수한다 - 35가지 유전자 이야기
설재웅 지음 / 고려의학 / 2022년 2월
평점 :

유전자, DNA 정도까지는 어느 정도 익숙하지만 유전체 각인, 인간 유전체 사업 등의 단어들은 언제 듣더라도 복잡하게 느껴지고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일상에서 그런 용어들을 접할 경우가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단어들에 대해 느끼게 되는 일종의 거부감(?)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까닭에는 우리가 이러한 내용들은 우리의 일상생활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괜히 머리 아프게 알려 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만약에 누군가가 내게 와서 셰익스피어 문학 전집을 원문으로 전부 읽을 것이냐, 아니면 인간 유전체 사업에 대한 2시간짜리 강의를 들을 것이냐고 묻는다면 잠깐의 고민에 빠지겠지만 아마 망설임 없이 셰익스피어 쪽을 선택할 정도로 유전과 생명공학은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간과한 것은, 이미 유전자에 대한 수많은 내용들이 우리가 즐겨보는 매체들 속, 특히 영화 속에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 이 말을 듣게 된다면 바로 의아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뭐가? 내가 언제 그런 짜증 나고 속 터지는 내용이 담긴 영화를 봤다고?'
거기에 답변을 주자면, <엑스맨>이라는 제목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듯하다. 비록 판타지적인 요소가 더해져 있긴 하지만, 기본적인 내용은 돌연변이, 즉 아무런 특이점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난 독특한 특징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영화에서는 엑스맨을 유전적 변형이 일어난 초능력자로 표현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우리 몸의 돌연변이는 크게 체세포 돌연변이와 생식세포 돌연변이로 구분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체세포는 우리 몸에 있는 대부분의 세포를 말한다. 만약 일상생활에서 흡연으로 인해 발생한 발암물질이 폐 세포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암세포가 되었다면, 이때 생긴 폐 세포의 돌연변이를 체세포 돌연변이라고 한다.
이것은 자녀에게는 전달되지 않고 단지 본인의 폐 세포에만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생식세포는 정자, 난자를 의미한다. 생식세포 돌연변이란 정자, 난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암물질이나 방사성 물질에 노출되는 것 등을 통해 생식세포 즉 정자나 난자에 돌연변이를 일으킨 것으로 이것은 자녀에게 전달이 된다.
그리고 정자의 DNA가 난자의 DNA보다 훨씬 더 많은 복제 주기를 거치므로 복제 오류에 의한 유전자 돌연변이는 모계보다 부계에 기원하는 것이 흔하다고 한다.

영화 <인크레더블>은 초능력 히어로 가족의 이야기로 막내인 아기 잭잭의 여러 가지 초능력은 부모에게서 유전된 가족력이다. 가족력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부모와 자녀가 여러 면에서 닮았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부모와 자녀가 닮은 이야기는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야구 선수 이종범의 아들이 2020 도쿄올림픽 야구팀 국가대표가 되어 3번 타자로 활약했고, 연예인 강호동의 아들 역시 강호동과 비슷한 외모와 체격을 가진 골프 선수 유망주로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올림픽 체조 도마 황제 여홍철의 딸 여서정 역시 2021년 개최된 도쿄올림픽 도마 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했다.
가족력은 만성질환 유전학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는 이러한 가족력과 유사하게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미래 질병 예측도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그것 외에도 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 <어바웃 타임>에서는 시간 여행을 하는 능력이 주인공 집안의 남성에게 물려져 내려오는 내용이 나온다. 그 부분에서도 부계유전에 대한 내용들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영화에서 주인공 팀이 시간 여행으로 불행한 가족의 일을 바꾸는 이야기가 나온다. 바뀐 현실에 만족하면서 집에 돌아온 팀은 자신의 딸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른 아이로 바뀌어 있는 것에 놀란다. 이에 자신의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에서 정확한 정자와 정확한 순간이 들어맞아야만 예전의 그 아이가 태어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즉 임신을 통해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확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주위에서 형제자매 중 비슷한 경우도 있지만 정반대의 모습과 성격을 갖는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는데, 첫째는 감수분열에서의 멘델의 분리 법칙과 독립의 법칙이고 두 번째는 감수분열에서의 교차와 재조합이다.

이렇게 책에서는 영화를 통해 35가지 유전자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우리는 무심코 유전자에 대한 내용들을 지나쳐 보내면서도, 또 여러 곳에서 이러한 내용들을 마주하게 되면서도 유전자에 대한 내용에 막연한 이질감만을 느껴왔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평소에는 모르고 지나쳤던 영화 속의 유전과 유전자에 대한 이야기들을 통해 유전과 생명과학이라는 주제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이 책의 내용들은 어렵다는 생각이 들 만큼 깊지도, 그렇다고 해서 너무 얕지도 않아 누구든지 흥미로 쉽게 펼쳐서 가볍게 읽어내고 유의미한 지식을 얻어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 표지에 관한 것이다.
보통 표면과 내용물이 부조화를 이룬다면 겉만 번지르르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책은 오히려 내용에 비해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지는 표지에, 제목에도 센스가 부족한 듯하여 아쉽게 느껴졌다.
내용뿐만 아니라 속지도 올컬러에 재질도 일반 잡지책의 두꺼운 속지 재질로 되어 있어 너무 좋다.
이 책은 생명과학과 유전에 대해 흥미를 유발하고 재미있고 쉽게 설명되어져 있는 책이니 꼭 읽어보라고 한 사람씩 붙잡고 설득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을 진심으로 강. 력. 추. 천.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