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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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캐러웨이는 웨스트에그에 있는, 화려한 두 채의 집 사이에 끼여서 더욱 초라해 보이는 집에 살았다. 그 두 집 중 그의 집 오른쪽에 있는, 마치 노르망디 시청을 본떠온 것만 같은 화려하고 웅장한 집이 개츠비 씨라는 인물의 소유였다.

닉은 비록 바로 이웃에 살았지만, 개츠비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은 것을 넘어서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가 아는 바라고는 고작 매우 부유한 인물이라는 것(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사교적으로 영향력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파티가 거의 끊이질 않았고, 그 파티에 참가하는 인물들 또한 매우 다양하며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었다) 정도였다.

그러니 그가 갑작스럽게 개츠비 씨의 초대를 받았을 때에는 황당해하면서 이해가 전혀 가질 않아 했다.


그러한 닉의 의문점은 의외로 빠르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해결되었는데, 개츠비 씨가 먼저 다가와 설명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소개하며 닉의 도움을 요청했다.

닉은 어떠한 일에서든지 개츠비 씨를 도울 수 있는 능력이 될 만큼 뛰어난 인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는 처음에는 이러한 부탁이 의아했으나 금세 자신만이 해줄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개츠비 씨의 부탁은 다름 아닌 닉의 사촌인 데이지와 만남을 가질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었다. 개츠비 씨는 데이지와 과거에 알고 지냈던 사이였으나 수년간 교류가 없었기에 닉을 통해 부탁을 하게 된 것이었는데….


개츠비는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낭만적이고 열정적이었다. 데이지는 개츠비가 생각하는 완벽하고 이상적인 존재가 아니었음에도, 그녀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위해 직진하는 개츠비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고 씁쓸하기만 했다. 그의 행동은 어떻게 보면 일방적인 집착, 그것도 무의미하다 생각될 정도로 과하면서도 허무한 집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츠비는 어떻게 보면 이 책에 나오는 그 누구보다도 성실한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또한 잘못한 바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특히 톰 뷰캐넌)에 비하면 성인군자와 다름없다고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힘들게 사는 모습에 측은지심이 들었다.


개츠비는 아등바등 노력을 하여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거의 모든 것을 이루어 내었지만, 그럼에도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얻지 못하고 이루어내지 못한 채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물질적 풍요로움의 추구가 마치 꿈이 실현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지만 실제적으로 그 화려함 뒤에 가려진 공허함과 절망을 드러내는, 즉, 물질과 정신의 부조화를 보는 것 같았다.

이것은 당시 1920년대의 미국의 수많은 사람들의 헛된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았고, 시대를 넘어서 현대인들의 모습도 일부 비추어지는 것만 같아 숙연한 기분마저 들었다.


『위대한 개츠비』가 한글 번역상 '위대한' 개츠비라고 번역되었지만 과연 그 'The Great'가 '위대한'으로 번역되어야 했을까?

이 책을 읽어보면 그 모든 것에 대한 물음표가 느낌표로 변할 것이다.

번역본은 원서의 정확한 내용과 느낌이 온전히 전해지지는 못해 원서가 가진 감동을 그대로 전하기가 힘든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번 새움에서 나온 『위대한 개츠비』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영어의 섬세한 묘미를 살린 원전에 충실한 번역으로 마치 원문으로 읽는 것 같아 그 가치를 한층 더 세세하게 느낄 수 있어 행복한 독서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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